프롬이 말하는 존재론적 인간관계와 소유론적 인간관계에 답이 있다. 상대를 내가 가진 이득을 챙기는 수단으로 생각할 때 나는 상대를 물건으로 생각하는 소유론적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고 상대를 서로의 성장의 파트너로 생각할 때 존재론적 인간관계로 형성되어 상대를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다.
상대를 물건으로 대하는 한은 대화가 될 방법이 없다. 상대는 나의 이득을 챙기기 위한 도구인데 나에게 자꾸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득치 않기 때문이다. 상대도 나를 물건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그냥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그 생각에 대해서 토를 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서로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시키기 위해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를 사람으로 대하고 성장의 파트너로 생각하면 비로서 상대가 가진 생각과 철학의 차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상대의 철학과 가치를 이해하다보면 상대가 왜 그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상대가 나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서로의 차이에 대해서 궁금해지고 이 차이를 이용해서 서로에게 어떤 도움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생각에 생각이 꽂혀 있으므로 서로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는 것이 오히려 즐겁다.
몇 일전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에 소통을 늘리는 방안으로 익명의 게시판을 열었다가 어떤 직원이 주차장 문제로 회사에 불만을 토로하자 당장 화가나서 주차장을 폐쇠시키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처럼 직원을 소유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소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익명의 게시판을 열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토론이 이뤄지는 소통의 장에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행태가 다시 벌어진 것이다.
직원을 물건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기 전까지는 소통을 증진시키기 위해 백방의 방법을 다 사용해도 작동되지 않는다.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의 생각이 바뀌지 않은 한 제도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차이가 좋게 보이는 것은 상대를 인간으로 사랑할 때 뿐이다. 사랑이 떨어지면 상대를 물건으로 보기 시작하고 다시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똑 같은 원리가 갑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갑질은 상대를 사람이 아닌 자신을 위한 물건으로 볼 때 발생하는 부조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