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육개혁 정책개발을 위한 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나는 교육혁명은 수능, 내신 등 대입 '시험'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 양성을 위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한국형 바칼로레아(논술형 수능) 도입을 제안했다.
10명의 교육 관련 교수들이 주요 토론자로 참석해서 몇 시간을 토론했는데, 참으로 놀라운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는 일단 국가의 교육정책개발을 위한 토론회인데 아무도 '교육'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국가교육과정을 통해 어떤 종류의 능력을 기르고 있는지, 어떤 종류의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지, 그런 능력의 인재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절한지, 이러한 교육의 진짜 '방향' 논의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무슨 종류의 교육이 되든 간에, 그걸 얼마나 싸게 하는지(무상, 반값 등)에만 관심이 있거나, 교육부와 교육청의 권한과 업무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방향 자체가 틀리면 누가 하든 얼마나 싸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둘째, 토론자들은 일단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시험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일견 동의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수가 현실적으로는 회의적이라는 입장이었다.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채점의 객관성, 공평성이라는 것이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에 맞물린 정유라 부정입학 사태에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아무리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가 닥친다 하더라도 지금 이 시점의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능력을 기를지에 관한 근본적인 논의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객관적이고 공평한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객관적이고 공평하기만 하면 체조선수를 뽑을 때 체조가 아닌 달리기로 뽑아도 된다는 것이다.
셋째, 우리 교육의 문제는 교육내용과 방향의 문제보다는 대학 서열화 및 학벌 중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근본 이유이기 때문에 교육보다 사회구조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의이다. 물론 교육정책은 사회, 경제, 문화, 행정 등의 제반 환경들을 유기적으로 고려하여 개발되어야 한다는 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사회구조 개혁이 선행될 때까지 교육은 언제까지나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어차피 그러한 사회구조 개혁도 결국 사람이 한다. 그것을 수행할 사람을 먼저 제대로 길러내서 사회의 각 분야에 나가 개혁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안 되는 것인가?
한국형 바칼로레아 같은 시험 시스템을 도입하면 국가교육과정의 틀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나는 묻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국가교육과정의 목표를 충실히 달성하고 있는가? 현재 우리 교육이 기반하고 있는 2009년 개정교육과정의 키워드는 '창의적인 인재 양성, 전인적 성장을 위한 창의적 체험활동 강화, 학교교육과정 편성 운영의 자율성 강화'였다. 단언컨대, 현재의 대한민국 공교육보다 바칼로레아식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이 대한민국 국가교육과정의 목표를 훨씬 더 잘 달성했을 것이다. 우리 공교육보다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가 더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고 학교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도 압도적으로 더 자율적이다. 대한민국 밖의 교육과정이 국내의 교육보다 대한민국의 국가교육과정 목표를 더 잘 달성하고 있다면 아이러니 아닌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외면하면서 일부 단편적인 목소리를 핑계로 미봉책만을 제시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 개발의 자세가 아니다.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가 아우성인 이 교육문제를 근본 원인은 그대로 두고 계속 누더기처럼 겉포장만 바꾸는 것은 결코 교육개혁이 아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