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3-15 16:03
[N.Learning] 철학과 종교가 있는 삶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2,619  

철학과 종교가 있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아프리카 선교사 이야기

아프리카의 원주민과 선교사가 같이 급히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뛰던 선교사는 뒤가 허전해서 멈춰 섰다. 뒤따라 오던 원주민이 저만치 서서 따라오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사고라도 났는지 궁금해서 선교사가 원주민에게 다가가 묻는다. 선교사는 원주민으로 부터 우리가 너무 빨리 달려서 영혼이 우리를 따라 올 수 없었다 라는 설명을 듣는다.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부끄러워진 선교사는 원주민과 같이 영혼이 따라오기를 한참동안 기다렸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우상화 하여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최고의 삶으로 가르쳐 왔다. 앞만보고 달리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혼을 잃어버린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길이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 아까워 그냥 무시하고 또 달린다. 영혼을 따라잡기 위해 멈춰서 방향을 바꿀 때 자전거가 쓰러질 것이라는 우려도 한 몫 한다. 자본주의에서 쓰러지는 모습은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될 루저의 모습이다.

앞만보고 달리도록 훈련받은 신자유주의 논리에 오염되어 영혼을 잃어버렸을 것 같은 성직자들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신자유주의는 성직자들에게도 영혼이 제대로 따라오는지를 뒤돌아보지 말고 달리도록 명령한다. 성직자들도 달린다. 심지어 성직자들도 영혼 잃는 판국에 일반인들이 영혼을 잃어버리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영혼을 잃어버리는 순간 사람들은 더 큰 것, 더 장대한것, 한번에 대박낼 수 있는 것에 몰입하다 무너져내린다.

영혼을 뒤 따라오게 하는 삶은 우리에게 삶의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대신 삶의 행복을 빼앗아 갔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이 영혼을 잃어버린 채 살지만 정작 자신은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도 모르고 산 다는 점이다. 가끔은 멈춰 서서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 지를 돌아보는 성찰도 필요하다. 하지만 생존을 강조하는 경쟁사회는 멈춰서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모든 철학자들은 영혼의 종소리가 제시하는대로 삶의 방향을 잡고 이 종소리를 따라가는 삶이 행복의 근원적 원천임 밝혀왔다. 실제로 영혼의 종소리를 앞세워 사는 삶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일은 세상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 행복에 대해 절실하게 갈구한다면 무작정 달리다 멈춰서고 달리다 멈춰서는 삶을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차라리 영혼을 길잡이로 앞장세워 따라가는 삶을 복원해야 한다. 영혼을 길잡이로 세운 삶은 자신만의 종교와 철학이 있는 삶이다. 이것이 우리가 모래바람이 불어대는 사막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당당히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영혼의 종소리를 따라가는 철학적이고 종교적 삶이란 자신만의 목적(purpose)에 대해 소명(calling)과 사명(mission)을 체험하는 삶이다.

영혼의 종소리인 목적이 복원된 행복한 삶이 절실해진 하루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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