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방영한 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등진 어린 딸과 어머니가 VR로 재회하는 다규멘터리 <너를 만났다>가 장안의 화제다.
감성적 내용의 문제를 떠나서 5G와 함께 상용화 단계에 도달한 VR/AR은 체험의 스트리밍 시대를 알려오는 전령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AI나 로봇에 기반한 플랫폼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긴 한국기업들이 디지털 혁명 속에서 기사회생할 기회는 VR/AR로 활성화되는 체험의 스트리밍 산업이다. 대한민국이 5G를 선도할 수 있기 떄문이다.
미래의 모든 산업은 체험산업이다. 요즈음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품질이 좋다고 무조건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품질이 포화수준에 이르러서 기능적 수월성은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기능을 넘어서서 다른 제품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하게 하지 못한다면 경쟁력은 없다. 미래의 모든 산업은 고객에게 차별적 체험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경쟁력이 달려있다.
체험이란 무엇인가?
다른 여러가지의 철학적 과학적 정의가 있지만 5G가 상용화시킨 디지털 시대의 체험은 현상학에서 가장 적절한 정의를 찾아볼 수 있다. 후서얼의 현상학을 디지털에 맞게 잘 정의하고 있는 철학자는 키에르케골과 베르그송이다. 키에르케골의 주체성이나 베르그송의 지속(duration) 개념에 현대적 의미의 체험의 본질이 가장 잘 녹여져 있다. 현상학은 체험을 외부의 사건이 영사기가 되어서 이 영사기가 우리의 의식이라는 내면의 스크린에 영화를 보여주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체험은 의식의 주체인 내가 영화를 보고 내면의 내 기억 속에 내러티브를 다시 각색해서 저장하는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수동적 관객으로 머물게 된다면 여기서 얻어진 메모리는 체험이라기보다는 경험에 머무른다. 경험은 그냥 사라지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시간을 쏟아도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내 체험으로 축적되지 못한다. 베르그송은 이런 식으로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체험으로 채우지 못하고 흘려보낸다고 규정하고 체험으로 채워진 시간만을 우리를 성숙시키는 <지속>이라고 정의했다. 체험이 되기 위해서는 내 내면의 의식에 상영되는 영화에 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개입해서 외적 사건이라는 영사기가 틀어준 내용을 주체적으로 새로운 삶의 시나리오나 내러티브로 재구성해낼 수 있을 때이다. 특히 자신이 잃어버리고 있었던 정체성을 발견하는 내러티브를 마련할 수 있으면 체험은 최고의 체험이 된다. 미래의 모든 산업은 정체성을 발견하고 다시 재구축하게 만드는 체험에 대한 스트리밍 서비스 산업으로 수렴된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는 사건은 영화처럼 내면의 의식에 그대로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어서 체험의 소재를 제공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건이나 미래의 상상적 사건은 영화화되기가 쉽지 않다. 미래의 사건은 너무 추상적이고 과거의 사건은 시대가 변해서 현실성이 없다. VR/AR이 과거나 미래의 사건에 대해서 해주는 역할이 영상화(visualization)이다. MBC에서 방영된 <너를 만났다>가 보여주는 것도 바로 과거에 대한 영상화 작업이다. 제목이 <너를 만났다>이지만 이것이 감동을 준 계기는 너를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게 한 <나를 만났다>이다. VR/AR은 과거를 생생하게 지금 일어나는 것처럼 영화화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 의식에 현재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지위로 상영되게 만들어 준다. 과거의 어떤 사건과 화해하지 못한 사건이 있다면 다시 상연해서 화해함을 통해 체험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여 실시간으로 영화화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기업들이 미래의 비전을 만들어도 실현되지 않는 90%의 이유가 이렇게 실현된 현실을 구성원의 내면의 스크린에 생생하게 상영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회사가 비전을 영화화하기 보다는 몇 년 후 매출액 몇조가 되는 회사, 재계 몇위가 되는 회사로 추상화하기 때문이다. VR/AR의 발달은 기업들이 미래의 비전을 영화화해서 구성원의 내면 의식의 스크린에 상영시켜 구성원들이 이에 맞는 내러티브를 마련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Google이 이 비전닝이라는 프로그램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도 과거와 미래에 대한 실시간 영화화가 가능해야 체험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는 서비스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현재라도 체험이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는 공간과 이동의 제약 때문이다. 요즈음 맨하탄의 소호지역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출퇴근이 가능한 뉴저지로 옮기면 지금 살고 있는 집세로 더 쾌적한 집을 얻을 수 있음에도 맨하탄 소호에서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편한함과 바꾸지 않는다. 지저분한 비싼 방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현재에 대한 실시간 체험 스트리밍은 그 자리에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본방사수해야 진정한 체험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VR/AR의 발달은 어디에 있어도 현재를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는 체험이 가능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VR/AR의 발달로 현실과 가상공간이 통합되기 시작하면 경험으로 제공되는 산업공간은 무한하게 넓어진다. 미래의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는 공간은 바로 이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확장성을 보이는 기업들은 5G VR/AR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체험을 실시간 스트리밍해주는 것을 넘어서 경계가 없는 버츄얼한 공간에서 경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도와줌을 통해 더 큰 나에 대한 정체성을 발견하게 해주는 기업이다.
초연결 디지털 시대 기업들에게 목적경영이 중요한 이유는 목적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나 가치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경계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험의 가격은 체험의 진정성에 의해서 평가될 것이다. 모든 진정성의 원천은 목적에 대한 진정성이다. 목적의 큰 울타리 안에서만 사람들이 자신의 왜곡된 정체성을 벗어나 제대로 된 정체성에 대한 진정성을 체험할 수 있다.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스트리밍 체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이 미래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