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텅빈 들녘>에서 본 미래
부활의 가치 vs 부도난 미래
어제는 포스코 기업시민 현판 제막식에 들렀다가 우연히 포스코 지하에서 전시되고 있는 대한민국 근대화단의 시조격인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3인의 그림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포스코가 이들 삼인의 작품전을 같은 시기에 여는 이유는 아마도 이들이 과거를 통해 미래의 가치를 창조해내었듯이 지금까지 50년의 제철보국의 기업이념을 새시대에 맞춰 기업시민의 이념으로 부활시켜 향후 50년간 100년 기업으로 남길 수 있는 포스코의 유산을 만들어내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들은 연연생들이다. 김환기가 1913년 신안에서, 박수근이 1914년 양구에서, 이중섭이 1916년평양남도 평원에서 출생했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이들 그림에는 한일합방, 일제강점, 한국동란, 동란 이후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정의해고 이것을 지켜내려는 고달픈 노력이 고스란이 녹아들어 자신만의 독창적 그림으로 해석되어 새로운 세상으로 탄생했다.
김환기는 한국사람도 구상을 넘어서 추상의 보편적 지평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박수근은 아무리 어려운 세상이어도 삶의 진실은 소박한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 있음을, 이중섭은 외세의 침탈에 황소처럼 피를 흘리고 있어도 우리를 지켜낸 힘은 가족의 사랑임을 시뮬라크 해내었다.
고흐가 생전에는 한 점의 작품도 팔지 못했다가 사후에 작품에 담긴 빛의 가치를 인정받았듯이 작가들의 진정한 가치가 인정 받으려면 적어도 몇 세대를 지난 후 이 작품들이 현대를 사는 누구와 접속해서 어떻게 부활되는지를 지켜보아야 한다.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도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팔리던 가치보다는 이들이 영면한 후 부활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인정받았다. 아마도 호당 작품가로 따지면 이 세 사람이 가장 높은 경매가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전시된 이 삼인의 작품가만 경매가를 총액으로 환산하면 우리 나라의 왠만한 재벌회사의 기업가치에 버금간다. 세월이 흐르면 이 경매가는 다시 최고가를 갱신할 것이다.
현재의 사용가치만을 판단해서 가치를 판다면 이것은 그냥 상품에 해당될 것이지만 예술품의 가치는 미래에 누구와 접속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는지의 미래에 실현된 부활가치에 의해서 판명된다. 이 삼인의 화가의 입장에서 현재는 이들에게는 부활된 미래이다.
심지어 한 회사의 주가도 현재 그 회사가 얼마나 사용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가 아니라 현재가치를 넘어서 그 회사를 통해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의 미래가치를 반영하여 평가된다. 심지어 요즈음 널뛰고 있는 부동산도 지금 실거주자의 사용가치나 지금의 교환가치가 반영되지 않고 미래가 예측불가능해지니 그 예측불가능한 속에서도 최소한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 미래가치가 반영되어 오히려 치솟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식이나 부동산은 위험한 것이 미래가 도래해도 지금 우리가 예측하는 것처럼 부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활하지 못한 주식이나 부활하지 못할 부동산을 미래에도 계속 가지고 있다면 결국 빈털털이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진정한 미래가치는 지금 평가한 가치가 미래에 부도가 날 것인지 부활할 것인지에 의해서 산출된다.
우리 개인의 몸값도 내가 가진 현재의 전문성이라는 사용가치에 의해서 판명될수도 있고 내 전문성이 신장되는 미래의 가치에 의해서 부풀려질 수도 있지만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죽은 후 우리의 부활가치에 의해서 판명된다. 우리가 우리의 가치에 대해 손도 쓸 수 없고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인 사망 후 부활의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죽은 후에 내가 남겨 놓은 소중한 메모리는 실제 부활될 수 있을 것인가? 부활된다면 누구에 의해 무슨 의미로 부활될 것인가? 우리가 남긴 어떤 메모리에 후세는 얼마의 값을 계산할 것인가? 이들은 내가 남긴 유산이라는 메모리에 무엇을 덧대어서 어떤 새로운 태피스트리로 부활시킬 것인가?
아무도 들춰보지 않을 족보책에 이름 석자를 남기는 것은 미래에 사용가치가 전혀없는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 부활이 아니라 부도난 미래를 증거하는 것이다. 사후 내가 살았던 삶의 메모리가 누구에 의해 부활되어 가치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남겨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