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26 06:41
[N.Learning] 왜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까? 전광훈 목사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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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까?
전광훈 목사
요즈음에 전광훈 목사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어떤 개인에게 발생한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사건의 내막보다는 이 사건을 지지해주는 보이지 않는 빙산 밑둥의 수준에서 커다란 문제의 원인이 암덩어리로 내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내재한 암의 뿌리가 살아 남아서 지속적으로 같은 문제를 양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은 문제를 목회자가 설교를 할 때 사회적 거리를 지키고 마스크를 쓰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런 수준의 처방은 아픈 사람들에게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 보이지 않게 하거나 진통제나 해열제를 처방해주는 수준의 처방으로 시간이 지나면 같은 문제를 반복하게 만든다.
전광훈 목사의 사건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은 전광훈 목사와는 달리 사회적 거리를 철저히 지켜가며 목회를 하고 있어도 뿌리의 수준에서는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광훈 목사가 운이 없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고 전광훈 목사의 교회만 고립시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것은 그냥 개별적이고 우발적 사건이지 사회적 사건으로 비화하지는 않는다. 개인적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교회의 대부분 목회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같은 처지의 같은 병에 걸려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전광훈 목사의 건이 해결되어도 공동의 원인에 대한 근원적 해결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제 2의 제 3의 전광훈 목사는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초연결 디지털 시대이다. 연결된 모든 것들이 스스로 데이터를 생성하고 이것들이 학습을 통해 스스로가 살아서 공진화해 간다. 이렇게 변화한 세상에 개신교는 어떤 세계관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일까? 대한민국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의 그 신선함과 그 창조적 긴장을 디지털 시대로 치닫고 있는 지금 교회에서도 체험할 수 있는 교회가 지금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 것인가?
어떤 믿음의 살아 있는 믿음인지 죽은 믿음인지의 진실은 변화가 증거한다. 세상과 미래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모든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한 알의 밀알이 많은 밀알을 길러내는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믿음이 죽은 것이다. 문제는 믿음은 밀알을 통해 만들어내는 변화의 씨앗이지만 많은 열매를 맺게하기 위해서는 토양에 맞춰 심어지고 길러져야하는 수고를 거쳐야한다. 과거의 토양은 상당기간 변화하지 않는 토양이어서 믿음의 씨앗만 좋다면 토양은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토양 자체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과거에는 아무리 좋은 믿음의 씨앗이었어도 지금의 토양에서 맞게 믿음이 공진화되지 못하면 토양은 믿음을 뱉어낸다. 토양에서 뱉어진 믿음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밀알로 작용하지 못한다. 결국 죽은 믿음의 종교는 쇠퇴의 운명을 걸을 수 밖에 없다. 교회가 쇠락한다는 것은 이들이 믿고 있는 믿음이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
이 씨앗이 세상의 맥락이라는 토양에 심어져서 밀알을 내지 못하고 있다면 이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절대적인 믿음에 갇혀 이런 세상에 공진화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이전에는 세상의 변화에 큰 기여를 했어도 결국 죽은 믿음으로 외면당하게 마련이다.
한구의 개신교가 다시 살아나는 길은 지금과 같은 초연결 디지털 시대의 맥락에 맞춰 믿음을 부활시켜서 이 새로운 믿음으로 미래의 밀알이 풍성해지는 것을 증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수가 사랑으로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몸을 통해 지금의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내 기적을 행했던 것처럼 예수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몸을 통해서만 다시 부활된다.
예수는 나병환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 기적을 통해서도 예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나병환자와 앉은뱅이의 몸에서 부활한 이들의 주체적 믿음이 기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켰지만 우리는 아직도 나의 몸을 통한 주체적 믿음이 아니라 예수가 행한 기적에 대해 믿는다는 믿음이 우리를 부활시켜고 있다고 믿고 있다.
예수는 초연결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 우리의 몸으로 부활될 수 있을 때만 비옥한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가져다 줄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풍성한 열매를 가져다 주었다는 것은 그 믿음 속에 진실의 씨앗이 발아된 것이다. 한국 개신교는 이만희 교주와 전광훈 목사가 촉발 시킨 문제가 근원적 수준에서 해결되었을 때 비로서 부활을 경험할 것이다.
전광훈 목사처럼 우리의 현재 몸이 아니라 과거의 몸을 통해 통해 부활을 시도하는 우를 범한다면 우리는 예수를 십자가에 두 번 못박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통해 부활시킨 예수를 미래의 후세들의 잘못으로 자신의 몸을 통해 부활시키지 못하면 결국 개신교는 다시 소멸될 것이다. 변화를 만드는 부활은 현재 내 몸을 통한 부활이다.
한영수, 이창준, 외 10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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