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이 발전되면서 기존에 철학적 절대 명언으로 받아들여지던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라는 말이 이제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뇌와와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나 "행복하기 위해서는 뇌 팔자를 고쳐야 한다"라는 말로 바뀌어야 할 입장이다.
기본적으로 뇌는 X이론의 절대 신봉자이다. 즉 뇌는 똑똑하지만 게으르기 짝이 없다. 뇌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변화이다. 뇌는 다이어트도 싫고 공부도 싫고 그냥 잘 먹고 쉬엄쉬엄 놀아가면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어한다. 뇌는 편안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똑똑함을 최대한 이용하여 변화에 저항한다. 결국 변화했다는 것은 똑똑하지만 게으른 뇌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이다. 변화에 실패했다는 것은 것은 뇌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뇌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만이 변화에 성공한다.
이 똑똑하지만 게으른 뇌를 어떻게든 의지력으로 이겨내서 새로운 행동을 자연스럽게 습관처럼할 수 있다는 것은 근육이 형성되지 못한 어린이 상태에 뇌에 근육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몸의 근육은 운동을 통해 만들지만 뇌 근육은 체험의 반복을 통해 얻어진 자기믿음으로 만들어진다. 모든 자연스러운 행동에는 그 행동을 지지하는 믿음의 뿌리가 버티고 있다. 뇌과학의 학문적 용어를 도용한다면 어떤 행동이 변화했다는 것은 뇌의 시냅스 구조가 그렇게 바뀌었다는 것을 말한다. 뇌의 시냅스 구조는 자기조직화된 믿음의 뿌리가 생긴 것을 의미한다.
뇌과학은 행동주의가 블랙박스로 생각했던 뇌의 블랙박스를 열어보임을 통해 행동주의가 얼마나 무모하게 사람들을 괴롭혀왔는지를 폭로했다. 극단적 행동주의자 말콤 글레드웰이 자신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이야기하는 1만시간의 법칙의 주장도 뇌과학의 가설과는 대치된다. 아무리 독하게 1만시간의 지속적인 행동을 해도 어떤 이유로든 뇌의 시냅스 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헛수고에 불과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전체의 시냅스 전체 구조를 생각하지 못하고 시도된 만시간의 행동으로 한쪽으로 왜곡시킨 시냅스 부분최적화는 뇌의 전체 최적화의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
뇌의 전체 시냅스 구조를 이해자지 못하고 주장되는 만시간 행동 법칙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 방식의 무모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엉뚱한 곳을 만시간 동안 만져서 일정한 부위의 시냅스를 바꾸었다하더라도 코끼리(뇌)를 이해하지 못하고 만든 결과라면 시냅스 전체구조를 왜곡하는 무모한 변화일 뿐이다. 자동차의 중요한 한 부분을 새 부품으로 교체할 경우 다른 낡은 부품들이 새 부품의 기능을 따라오지 못해 전체적으로 붕괴되는 수순을 밟는 것과 같은 원리다.
뇌과학은 이런 만시간의 법칙과 같은 무모한 행동주의가 추구하는 것이 유사과학이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뇌의 시냅스 구조를 맵핑한 정신모형을 찾아내고 이 정신모형상의 목적함수와 이 목적함수의 균열을 찾아 목적함수를 최적화하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방식으로 만 시간의 100분의 1인 100시간만 투입해도 더 나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뇌의 시냅스 구조를 맵핑하는 정신모형은 행동변화를 위한 표적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과학자들은 사람들은 자신의 두뇌 (좌,우, 전, 후) 중 타고날 때부터 더 기름진 뇌 밭이 있는다고 보았다. 뇌과학자들은 사람의 두뇌를 좌측전뇌(목표 지향적), 우측전뇌(창조 지향적), 좌측후뇌(원칙 지향적), 우측후뇌(화합 지향적)의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기도 한다. 갤럽에서 이 두뇌의 밭을 연구해보니 이 밭과는 상관없는 다른 밭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의 인구가 미국인구의 약 70∼80%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즉 자신의 뇌팔자에 어굿나게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70-80%라는 것이다. 뇌과학 연구에 의하면 자신의 타고난 두뇌의 성향과 반대되는 일을 하면 전기저항이 100배나 더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다시 말하면 타고난 두뇌와 맞는 일을 할 때엔 전기저항이 별로 없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이 들지 않고 과업에서도 열정과 몰입, 존재감과 행복감을 즐길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뇌팔자에 대한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기존의 뇌에 대한 연구는 성인이 된 뇌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 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이 가정이 잘못되었다는 밝혀냈다. 뇌가소성 Neuroplasticity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어떻게든 삶의 목적을 세우고 이에 대해 의지력을 발휘해서 뇌에 근육을 만들면 뇌의 시냅스 구조는 바뀌게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바뀌어진 뇌는 운명적인 뇌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개척한 영역에서 열정과 몰입을 느끼며 살 수 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타고난 뇌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할 필요가 있지만 사람들이 뇌를 훈련해서 근육을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고 타고난 상태만을 가지고 살았다면 즉 모든 사람들이 뇌의 운명대로 살았다면 인류역사에는 변화가 없고 창조가 없었을 것이다. 뇌의 인지능력으로는 세계 34위권인 이스라엘이 세계를 장악하고 사는 것은 결국 이들이 뇌의 "운명"을 믿었기보다는 세계 어떤 민족보다 뇌의 근육이 번성하는 삶을 위해 전체 최적화되도록 조형하는데 성공한 "믿음"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성공은 타고난 뇌의 재능에 의해서 결정되기 보다는 자신이 설정한 목적과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뇌의 근육양에 의해 결정된다. 자신이 목적하는 삶을 최적화 시키는 뇌의 근육을 만들어내는 것이 번성하는 삶의 본질이다. 진성리더들이 자신의 뇌의 시냅스 구조가 최적화된 상태인 정신모형을 맵핑하고 이 맴핑된 정신모형에 따라 삶을 자기조직화하는 노력을 하는 이유도 뇌팔자를 믿기 보다는 뇌팔자를 목적함수에 따라 바꾸려는 시도이다.
정신모형이 설정한대로 진성리더가 행동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보일정도가 되면 사람들은 진성리더가 품성이 있다고 칭송할 것이다. 품성을 형성한 진성리더는 시뇝스 구조인 뇌팔자를 바꾸는데 성공한 리더이다. 무모한 행동주의자들의 시도와는 달리 진성리더십에서는 뇌의 시냅스 구조를 목적과 정렬되도록 만들어내는 정신모형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사용하여 시냅스 구조를 바꾼다.
팔자소관이라는 운명론적 이야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불행은 뇌과학적으로 뇌가소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이들이 팔자의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팔자를 움직이는 열쇠가 우주의 신비가 아니라 자신이 개입해서 고칠 수 있는 자신 뇌의 시냅스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