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현재로 가져오는 일에 성공하다
협업(collaboration)의 기적
2019년 천제물리학자들이 처음으로 아인쉬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예측했던 처녀자리 은하단 중심의 블랙홀을 관측하는데 성공했다. 이와 같은 개가에 힘입어 이번달 12일에는 궁수자리 A 블랙홀을 찾아냈다.
궁수자리 A 블랙홀은 지구에서 2만 7천 광년 떨어져 있다. 우리가 보는 궁수자리 A 블랙홀은 빛의 속도로 환산할 때 2만 7천년 전 미래에서 날아온 빛이다. 처음 발견된 처녀자리 블랙홀에 비해 1500분의 1의 크기다. 우주에는 더 작은 블랙홀들이 산재해 있음을 뜻한다.
궁수자리 A 블랙홀의 발견은 시간으로 환산해 2만 7천년의 미래를 먼저가서 현재로 가져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빛이 미래에서 온 것이라면 이 빛의 원천인 미래에 이르는 방식은 지금 시점에서 2만 7천년 전에 날아온 과거의 빛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빛보다 먼저 거슬러올라가서 원천에서 빛을 관찰하는 방식인 Looking backward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는 기다리는 것(Looking forward) 방식이 아니라 먼저가서 가져오는(Looking backward) 방식을 택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된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인간만이 사용하는 협업이라는 상호작용 방식 때문이다. 협업(collaboration)은 협동(cooperation)과는 천지차이로 다른 상호작용의 원리다.
협동은 개개인의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해 서로 돕는 행위이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방식의 상호작용이다. 이런 협동은 인간의 고유한 상호작용 방식이 아니라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에서도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개인들이 이득을 실현하기 위한 기제이기 때문에 협동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집단의 크기는 믿은 사람끼리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뭉쳐진 소규모일수밖에 없다. 협동의 기제에 의존했다면 지금 지구공동체와 같은 인류를 만들지 못했다.
인간이 지금과 같이 인류를 만든 방식은 협동이 아니라 협업이라는 인간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한 상호작용 방식이다. 협동이 이해를 실현시키기 위해 인간과 인간의 직접적인 교환에 근거한 것이라면 협업은 인간들이 모여서 공동의 목적이라는 제삼의 실체를 세우고 이 실체에 대한 믿음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협업은 인간과 인간간의 직접적 교류가 아닌 인간 - 목적 - 인간의 방식으로 교류하는 상호작용이다.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공동의 목적과 공동의 운명이 매개하는 방식이다. 공동의 목적으로 인간의 상호작용을 실현시키는 방식이다. 공동의 목적이 중심이 되어 인간의 상호작용을 조직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궁수자리 A 블랙홀도 블랙홀이라는 제 삼의 실체를 가정하고 이 실체를 향해 그린란드에서 남극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에 걸쳐 전파망원경 8개가 협업해서 지구 규모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협동하는 시스템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인류가 협동에만 의존해왔다면 지금과 같은 규모의 지구공동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도 동물수준의 군집을 이루가며 여기저기 흩어져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고립된 섬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이번 블랙홀의 발견이 기업에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미래는 기다리는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먼저 미래에 가서 미래를 먼저 현재로 가져오는 사람들만 미래를 체험하고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협동의 시스템이 아니라 회사가 존재하는 존재목적이라는 공동의 운명체를 제삼의 실체로 세우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협업하는 시스템을 가동하지 못하면 미래를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협업 시스템이 우선적으로 가동되지 못하는 회사는 협동이라는 명분으로 조직에서 힘 있는 사람의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한 조직정치가 만연해 있을 것이다. 협동이 생산적일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협업의 파트너십을 통해 서로에 대한 좋은 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에 서로 돕게 되는 경우다.
즉 협업이 협동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협동자체는 조직정치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조직정치를 협동이라는 이름으로 멋지게 불러 혈연, 지연, 학연으로 뭉쳐지는 조직정치의 폐해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블랙홀은 우리에게 미래에서 다가오는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고 엄청난 재앙일수도 있다. 조직에 협업 시스템이 가동되지 못해 엄청난 기회를 놓치거나 엄청난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들에게 미래가 있을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