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야뉴스의 두 얼굴처럼 추한 모습인 존재구속성과 선한 모습인 존재해방성을 가진 존재이다.
일단 언어로 뱉어버린 말들은 그 생성주제와는 독립적으로 생명력을 가지고 그 생성주체를 구속하기도 하고 그 존재를 해방시키기도 한다는 의미이다. 즉 이 언어는 생성자의 맥락에 따라 새로운 것을 무궁무진하게 시작하게 할 수 있는 임파워먼트의 플랫폼이 되기도 하고 그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 될수도 있다.
존재구속성으로 작용하는지 존재해방성으로 작용하는지는 그 언어의 발설자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 존재인지에 달려있다. 자신의 내면의 스토리와 다른 진정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발설된 언어는 결국 내면의 스토리가 밝혀지는 순간 그 발설자를 구속하는 감옥으로 작용한다. 이런 언어는 발설자의 존재를 구속한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의 진정성을 표현해준는 언어는 임파워먼트의 플랫폼으로 작용한다. 즉 존재해방성의 속성을 가진다. 이런 언어는 독자적인 생명을 가지고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플랫폼을 제공한다.
최근 안철수씨의 책 등에 쓰여진 어록이 핵심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 어록만 존재하고 그 내면적 본질이 안 알려져 있었을 때 어록들은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했다. 하지만 내면적 스토리들이 이 어록과 어긋난 점이 많다는 것이 밝혀지자마자 이 어록은 안철수씨를 감옥에 가두기 시작했다. 언어의 존재구속적 속성은 그의 많은 행동들을 소영웅주의적 행동으로 프래이밍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많은 선인들의 어록을 귀감으로 받아들여 살고 있다. 이런 어록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플랫폼으로 작용하는 것은 이 어록이 그 어록을 생선한 사람의 진정성 있는 삶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존재해방성은 어록을 발설한 장본인을 객체화시켜 이들을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진정한 영웅으로 탄생시킨다.
한 마디로 진정성이 없는 상태의 삶에서 발설한 모든 언어는 본인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이와 같은 존재구속성과 존재해방성의 문제는 그 언어를 발설한 사람의 공공성이 강조될 때 특히 강화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