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과학은 인간을 동물과 같다고 가정하고 어떤 자극(Stimulus)이 주어졌을 때 어떤 반응(Reponse)을 일으키는지 S-R간의 인과관계를 연구함에 의해서 인간에 대한 연구도 실증과학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지적으로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행동대안을 만들어내는지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블랙박스라고 취급하였다. 블랙박스를 연구하기보다는 그냥 외적 자극에 어떤 반응을 하는지의 규칙성을 과학적 원리라고 가르쳤다.

심리학을 필두로 이런 행동과학 연구결과가 누적되고 이 행동과학을 진리로 삼는 학자들이 많아지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학문적 전제에 관심이 없는 일반 사람들이나 자기계발자들이 자극과 반응 사이의 블랙박스로 규정해왔던 공간자체를 없다고 믿고 행동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리적 공간이 없다고 믿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결국 개인들이 가지고 있던 심리적 공간이 인간에게 주었던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결국 인간의 삶을 동물의 수준으로 퇴락시켰다.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를 실증적 과학 지식과 바꾼 것이다.

빅토르 프랑클은 유대인으로 신경학자이며 심리학자이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으며,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 카우퍼링과 투르크맨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그의 저서인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 1959년에 ‘From Death-Camp to Existentialism’)는 이런 심리적 공간을 확보하려는 상황정의의 노력이 생사의 갈림직에서 살아남는 사람과 죽는 사람을 어떻게 갈라놓는지를 증거하고 있다.

빅터 플랭클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죽어 시체로 나가는 사람들이 현격하게 줄어 들었다가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다시 원래의 숫자로 돌아오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되었다. 연구에 대한 그의 설명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긍정적 기대를 하게 되고 그 기대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희망에 부풀어서 전쟁이 끝나고 자신이 풀려나갈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서 삶 자체가 생기가 있어지고 그래서 결국 생존율도 높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자신들은 풀려나지 않아서 실망하게 되고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그냥 자극과 반응으로 해석해서 자신에게 심리적 공간이 있다는 것을 잊고 동물처럼 자극에 반응해가며 산 사람들은 나찌 수용소에서 살아남지 못했던 반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자신의 심리적 공간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인간의 삶을 지킨 사람들은 살아나올 개연성이 없는 상황에서도 살아 남았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1997년에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로, 귀도 오레피체(로베르토 베니니 분)라는 이탈리아계 유태인이 풍부한 상상력으로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가족을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수용소 생활을 게임으로 프레이밍해서 아들에게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준다. 게임의 프래이밍을 받아들인 아들은 이 심리적 공간에서 나름 즐겁게 수용소 생활에 적응하고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 남게 된다. 상황이 아무리 암울해진다 하더라도 이 암울한 상황을 암울한 것으로 받아들이는지 혹은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는지는 자신에게 이런 공간이 존재하는지의 문제이다.

일반인들에게 심리적 공간을 박탈한 학문이 행동과학이라면 기업에서 심리적 공간을 박탈한 학문은 경제학이다. 경제학도 행동과학의 S-R 이론처럼 모든 것을 외생변수와 결과변수로 판단한다. 복잡한 외생변수들의 조합이 주어졌을 경우 이것에서 최적의 결과변수를 찾아내는 것이 학문적 과제다. 행동과학이 인지과정을 블랙박스로 넣고 지워버렸듯이 경제학에서도 외생변수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내생변수들의 프로세스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사고는 신자유주의 전략적 사고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전략적 사고에서는 여러가지 복잡한 조건들의 다른 집합이 주어졌을 때 어떤 조건의 집합이 지는 결과가 아니라 이기는 결과를 초래하는지 조건과 결과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켜서 기업의 전략적 행동을 결정하도록 지도해왔다.

하지만 시간의 검증에서 살아남은 존경받는 100년 기업들은 어떤 암울한 조건이 주어져도 이 조건에 의해서 자신들의 반응이나 전략을 결정한 기업들이 아니다. 이들에게 힘든 조건이 주어졌을 때 이 조건들을 초기값으로 받아들이지만 이 초기값은 조직이 설정한 철학과 사명의 울타리에 의해 만들어진 심리적 안정공간을 통해서 해석되고 시뮬레이션 되어 전략적 행동이 결정되고 이 전략적 행동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지혜를 제공했다.

요즈음 조직개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이 애드몬슨의 두려움 없는 조직(The Fearless Organization : Creating Psychological Safety in the Workplace for Learning, Innovation, and Growth)이라는 책이다. 지금 기업이 처한 상황이 불경기와 코로나 팬데믹으로 암울해졌고 이것을 이겨내는 조직의 모습으로 조직이 구성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로 해석해서 기업들에게 통찰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역량을 가지고 같은 직장을 다녀도 어려운 시기에도 승승장구하는 사람들과 몰락하는 대열에 선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차이도 결국 이런 심리적 안정공간의 문제이다.

생존에 혈안이 되어 있는 회사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나에게 강요하는 상황이 있지만 회사와는 독립적으로 나 자신이 내 삶의 목적과 사명을 기반으로 내 일에 대한 나만의 정의가 있을 경우 이것이 울타리가 되어 심리적 공간이 창출된다. 이 심리적 공간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나만의 실험실을 만들어낸다. 이 공간을 가진 사람들은 상황이 암울함에도 이 공간에서 내가 하는 역할은 의미를 창출하고 가치충격에 대한 체험을 하게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혁신적 성과를 내게하고 결국 내 역할의 전문성을 신장하는 충만(fulfillment)을 체험한다.

지금 대부분의 회사에서 직장인들은 암울한 현실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작금의 직장인들의 삶은 빅터 프랭클의 수용소에서 경험한 생사의 갈림길에선 삶과 다르지 않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에게 심리적 울타리를 제공해주는 상황정의를 통해서 이다. 사명과 철학에 기반한 상황정의를 통해 자신만이 숨실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실험실로 제공하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 순간 질실사 당할 것이다.

존경받는 100년 기업들이나 잘 나가는 글로벌 초우량기업들은 상황이 어려워지면수록 구성원들에게 회사보다는 네 성공을 위해 일하라고 독려한다. 회사와 구성원이 사명의 울타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제안의 의미가 구성원들에게 강하게 전달된다.

어떤 암울한 상황에 처해도 자신의 철학과 사명에 따라 상황을 정의해 자신만의 버츄얼한 심리적 울타리와 공간을 만드는 능력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