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는 소의 해이다. 소에 관해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사자성어는 아마도 우보천리(牛步千里) 마보십리(馬步十里)일 것이다. 즉 소걸음은 천리를 가지만 말걸음으로는 십리 밖에 못간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빨리빨리를 글로벌 세상에 유행시킨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고사성어다.

또한 우보천리는 요즈음처럼 급격하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와는 안 맞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보천리 전략이 마보십리 전략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도 입증되었다. 단거리 경주에서야 토끼가 거북이를 이기겠지만 장거리 경주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밖에 없다. 소와 말의 경주도 마찬가지다.

삶은 경제학자들이 가정하듯이 분절된 단거리 경주들을 합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장거리 경주이다. 우리 삶이 한 두 번의 단거리 경주를 하고 생을 마감할 운명이라면 빨리 달리는 말의 전략이 우세할 것이다. 대한민국 모두가 채용하고 있는 빨리 빨리의 전략이 최고의 전략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 두 번 대박치고 자신의 인생이 종질 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장거리 마라톤인 경우 초반에 스퍼트를 내는 전문적 달리기 선수는 없다. 인생은 본질이 장거리 경주다. 삶이 장거리 경주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말의 전략보다는 소의 우보천리 전략이 모형 적합도가 높다.

문제는 모든 소들이 우보천리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소는 10리를 우보천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 같은 십리를 도는 시지프스의 삶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보천리를 완주하는 소들은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들을 충족하는 경우이다.

첫째, 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조건이다. 호시우보란 자기가 가야 할 목적지에 대한 시각은 호랑이의 날카로움을 잊지 않고 여기에 집중하는 반면 실제 걸음을 옮길 때는 말의 달리기가 아닌 소걸음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동물들이 나와서 더 나은 목적지를 사탕발림으로 이야기해도 이들을 호랑이의 매서운 눈으로 제압하고 뚜벅뚜벅 걷는 것을 의미한다. 목적지에 대한 믿음이 호랑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살아 있는 소만 우보천리를 완성한다.

호랑이 같은 목적지에 대한 믿음이 소의 마음을 온통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도 목적지를 버리고 딴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소가 주변의 환경에 눈이 팔려 목적지에 대한 생각을 잃어버리고 편안한 집으로 계속 돌아오거나 딴 짖을 할 때도 목적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길을 떠난 소는 주변의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 시간 날 때마다 뚜벅뚜벅 걸음을 멈추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 목적지에 대한 믿음이 소의 마음을 활활 태우기 때문이다.

둘째로 소가 말을 이기는 것은 경쟁자에 대한 관점이다. 말은 다른 말과 속도 경쟁에서 이겨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우보천리의 소의 전략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자신과의 싸움은 항상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고 이 겸손을 통해서 자신을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성장하게 만든다. 우보천리를 완수하는데 필요한 장기적 역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말이 구사하는 남들과 경쟁에서 이기는 전략은 남들에게 뒤지면 열등감을 남들을 이기면 우월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자신에 집중해서 학습하는 능력이 무너진다. 잔머리를 굴리는 재주는 늘어도 역량이 축적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소가 우보천리를 완성하는 경우는 동행하는 소들이 있을 경우이다. 말의 전략은 같이 출발한 말보다 월등하게 앞서서 이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초격차>를 내야 한다. 동행이 눈에 보인다면 충분히 이긴 것은 아니다. 말의 초격차 전략과 달리 우보천리를 완주하는 소는 다른 소들을 동행으로 생각한다. 아프리카 속담에도 단거리를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동행을 구하라는 말이 있다. 빨리 빨리의 전략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 만들고 단 한 명의 우승자와 나머지의 모든 패배자로 만드는 전략이다. 우보천리의 전략을 실천하는 사람 주변에는 항상 훌륭한 파트너가 많이 몰리는 이유이다. 장거리 마라톤 경주에는 같이 달려주는 페이스 셋터라는 동행이 반드시 요구된다.

살다 보면 시간에 쫓겨서 단기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쫓기면 쫓길수록 걸음을 멈추고 목적지에 대한 호랑이의 시각을 복원해가며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동행과 함께 가는 우보천리의 전략이 필수적이다. 말의 전략을 구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옳다고 믿고 전력 질주해서 달려온 수천리 길이 잘못된 길이었다는 것을 길의 마지막 막다른 골목에서 알게 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목적지에 대한 호랑이의 시각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어가며 우보천리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일사천리(一瀉千里)라는 속도가 생긴다. 일사천리란 계곡을 타고 내리는 가벼운 배의 속도를 의미한다. 겸허함을 유지해가며 바다라는 목적의 고향을 염두에 두고 내려가는 계곡을 따라가는 배는 다른 배보다 일사천리로 내려간다. 소의 따뜻함과 겸허함과 모든 것을 주는 성품과 목적지에 대한 믿음이 일사천리를 위한 계곡물을 만들어 결국 속도의 측면에서도 잘못된 방향으로 내달리는 말의 속도를 이긴다. 소처럼 모든 것을 비우고 계곡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전략과는 반대로 말의 경우는 계곡물에 빠지면 자신의 힘으로 살아나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은 익사하고 만다는 우생마사(牛生馬死)란 속담도 있다.

올해는 소의 해이다. 우리 모두가 호시우보 우보천리 전략을 적용해 우리 동행들과 같이 목적지에 일사천리로 도달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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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김명수 화백의 <우보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