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4-23 08:00
[N.Learning] 자기부활이 없다
 글쓴이 : Administra…
조회 : 3,181  
N번의 자기부활
부활절 단상
부활한 예수는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 못이 박혔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었다. 믿음을 되찾은 제자들이 자신과 같이 부활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 넣어 주었다. 닭이 병아리를 부화시키기 위해 알을 쪼으는 즐탁동시를 제자들에게 몸소 행하신 것이다. 예수는 부활을 통해 성령이 새롭게 임하여 스스로가 변화하는 체험을 한 제자들에게 다른 이들에게도 부활의 체험을 나눠줄 것을 명했다.
예수의 부활사건이 기독교인들에게 의미하는 뜻은 무엇일까? 아마도 하나님 말씀을 어미닭으로 삼아 자기 스스로 알에서 깨어나 성령이 새롭게 임하게 하는 자기부활일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7년마다 완전히 새로운 세포로 탈바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0년을 산다면 적어도 살아오는 동안에 10번의 완전한 몸바꿈을 경험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몸을 알집으로 빌려살고 있는 정신(성령)이 몸의 알집을 깨고 나와 같은 수준의 부활(새로움)을 완성했는 지이다.
몸은 컷는데 정신(성령)이 그자리에 머물고 있어 부활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어 생긴 것이 결석이고 이 결석이 삶에 부가되는 고통의 원인이다. 결석의 조짐이 생길 때마다 자기 개발서를 읽어가며 온전한 정신의 부활과는 상관이 없는 다른 사람의 정신을 베껴서 연명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생긴 결석 때문에 우리는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우기 힘든 삶을 지속한다.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결석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 결석으로 쓰러져 누워있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자기부활이다. 생체리듬에 따라 70년을 산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적어도 신실한 기독교인은 최소한 10번의 자기부활로 알에서 깨어있어야할 책무가 있다.
나이를 제대로 먹는다는 것은 박노해 시인의 시에서 잘 묘사되고 있듯이 죽을 때까지 자신 몸에 걸맞는 N번의 부활을 수행하는 일이다. N번의 각성과 부활 사건의 진주를 엮어서 내 삶의 진주목걸이를 만드는 일이 기독교인의 책무다.
삶의 나이
詩 박노해
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 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 삶의 나이라오
-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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