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7-30 12:20
[N.Learning] 우리에게는 왜 섀클턴이 없을까? 겁쟁이 공화국의 현주소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1,037  

우리에게는 왜 섀클턴이 없을까?
겁쟁이 공화국의 현주소
요즈음 리더십 학계에서는 남극을 탐험하다 빙벽에 갇혀서 죽을 운명이던 대원들을 구했던 영국의 탐험가 섀클턴의 리더십과 북극을 탐험하다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대원들을 버리고 자신만 살아남은 캐나다의 탐험가 스테파운손의 리더십이 비교 대상으로 자주 거론된다.
우리가 지금 직면한 현실이 이들이 직면했던 위기와 너무 닮은 꼴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탐험가들의 영웅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eton)이 발휘했던 리더십은 죽음을 각오하고 구성원들이 연대할 때 경험하는 초월적 힘의 사례다. 섀클턴은 1914년 8월 8명의 대원과 함께 인듀어런스 호로 남극 탐험 대장정을 시작한다. 1915년 1월 남극점까지 150km를 남기고 배가 얼음에 갇히는 재난을 당한다. 인듀어런스 호가 침목하고 이들은 시속 300km의 바람과 영하 70도의 추위와 1년 반 동안의 사투를 벌였다. 마침내 1917년 8월, 조난 당한 지 634일 만에 선원 전원이 살아 돌아왔다.
이들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는 지금껏 최고의 모험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모험은 어떤 모험보다 위대한 모험입니다. 우리는 모험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이기면 살 것이고 지면 죽을 것입니다.”는 섀클턴의 죽음 앞에서의 약조에 대한 진정성을 대원들이 믿었다. 이 약조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탐험 대장이었던 섀클턴이 가장 먼저 솔선수범해가며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다.
죽음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생산적 고통이다. 죽음의 고통에 직면해서 외면하기보다는 용감하게 직시하고 이것을 구성원과 같이 공동의 문제로 내재화해 협업으로 풀어가려는 성향이 긍휼(Compassion)이다. 인간이 죽음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는 긍휼에서 나온다. 상대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여 행동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인 긍휼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높은 문제해결력과 가장 순도 높은 진실한 관계의 원천이다. 긍휼을 통해 서로가 만든 진실한 관계의 손을 잡고 둘러앉아 모닥불을 피워 놓고 죽음의 공격으로부터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것이 긍휼의 힘이다. 각자도생의 진화론적 동물의 왕국이 지배하는 중에도 인간이 힘센 동물을 이기고 문명을 세운 비밀도 긍휼이다. 이들 긍휼로 세운 공동체는 인간에게 희생을 고통에 대한 화폐로 주고 받아가며 죽음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와 이길 수 있음이라는 신뢰를 선물했다.
섀클턴과 자주 비교되는 인물이 캐나다의 빌햐울뮈르 스테파운손(Vilhjálmur Stefánsson)다. 1913년에 캐나다 탐험대를 이끌고 북극 탐험에 나섰다. 섀클턴의 인듀어런스 호와 비슷하게 그가 이끄는 카를루크호는 얼음 바다에 갇혀서 고립되었다. 위기에 처하자 스테파운손은 순록 사냥으로 식량을 조달하겠다는 거짓말을 쓴 편지를 남기고 식량과 탄약을 휴대한 채 가장 건강한 4명과 함께 떠났다. 섀클턴의 긍휼의 리더십과 비교되는 각자도생 리더십을 행사했다. 몰래 도망친 4명은 갖은 어려움 끝에 북극 탐험을 끝까지 마치고 살아서 돌아왔다. 리더가 도망친 캠프에 남아 있던 대원들 중 11명은 상대방을 헐뜯고 속이고 싸우다가 고통과 절망 속에서 대부분 사망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재계에서 CEO 리스크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카카오 김범수, 큐텐(티몬, 위메프) 구영배, 한글과 컴퓨터 김상철, 하이브 방시혁, 뉴진스 민희진과 해병대 사건을 족발시킨 해병대 장성들과 숨겨진 정치적 배후 세력은 모두 스테파운손의 리더십을 모방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희생은 커녕 각자도생을 위해 분주히 날뛰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삶아 죽어가는 개구리거나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인듀어런스 호다. 죽음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어도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리더가 먼저 나서서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희생이 절실히 요구됨에도 고통의 조짐이 생기면 각자도생을 외쳐가며 자신의 꼬리조차도 잘라 버리고 고통으로부터 도망친다. 대한민국 리더십의 문제는 긍휼의 문제다. 대한민국을 이끄는 리더들에게 자신과 가족의 혈연, 지연, 학연의 카르텔을 넘어서는 일말의 긍휼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한민국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겁쟁이들이 지배하는 겁쟁이 공화국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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