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현 상황에 딱 드러맞는 A라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잘 만들어진 제도 덕택에 사회가 더 발전하면 역설적으로 사회와 제도 사이에 다시 괴리가 발생하고 괴리는 제도에 통제불가능한 불확실성을 이입한다. 불확실성은 제도 운영에 프로세스 로스(Process Loss)를 일으킨다. 효율성을 위해 제도를 다시 바꿔야 하는데 제도는 스스로가 변화하지 못하므로 누군가 사람이 개입해 A 제도를 B 제도로 바뀌야 한다. 제도가 아니라 사람만이 불확실성에 개입해 제도를 다시 바꿀 수 있다.

제도를 바꾸는데 사람과 관련한 더 큰 장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제도는 물리적으로 건물이나 법령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하지만 제도의 본질은 건물이나 법령이 아니라 제도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태 즉 "Reality Taken for Granted"를 의미한다 (Peter L. Berger and Thomas Luckmann, 1966). 어떤 법령이나 건물까지 세워졌어도 관련된 사람들이 그 법령의 내용이나 건물의 기능을 당연한 자연스러운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제도화는 실패한 것이다. 법령이나 건물이 만들어져 있어도 사람들이 그 법령의 현실이나 건물의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를 디커플링 (Decoupling)이라고 칭한다.

제도가 잘 작동해 지금 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새롭게 제안된 제도가 아무리 좋아보인다 해도 실제 해보지도 않은 제도를 지금의 제도처럼 당연한 상태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로 새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심리적 저항이라는 관성을 극복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결국 제도에 개입된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것도 사람이고 바뀐 제도를 제도로 인정하는 것도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관련된 사람의 문제다.

선종하신 프란체스카 교황께서 항상 걱정하시던 문제다. 지금 우리가 격는 모든 문제는 제도나 시스템을 사람 위에 세운 것에서 파생했다고 진단하시고 사람이 제도 위에 온전하게 세우지는 모습을 강론하셨다. 사람이 목적이고 제도가 수단이어야 함에도 제도가 목적이고 사람이 수단으로 전치되어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을 우려하신 것이다.

사람이 제도의 목적임을 이해해도 각성한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라는 관성을 이기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새 제도에 대해 각성한 최소한의 집단의 지지가 요구된다. 여기에 제시된 최소한의 숫자가 예수의 12 제자에 등장한다. 지금의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제 모습의 기독교는 예수와 12명의 비밀결사대가 협업에 성공한 결과다.

파레토는 20/80 법칙에서 이 숫자를 12에서 20으로 키웠다. 사후적으로 평가해 성공한 모든 큰 변화의 비밀에는 강한의도를 장착한 초기 20%의 비밀결사대가 있었다. 이들이 시간과의 반복적 싸움을 통해 나머지 80%를 장악했다. 12%든 20%든 초기의 비밀결사대원들이 같은 철학과 정신모형을 삶 속에 끼워넣음을 통해 나머지 80%의 대중도 이들의 정신모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를 만들었다.

혼돈이론에서도 초기값을 중심으로 12-20%의 비밀결사대가 결집해 자신들의 정신모형을 모닥불로 공유하면 외풍이 불어와도 꺼지지 않는 자기조직적 질서가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모든 근원적 변화의 주체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을 잃는다면 모든 근원적 변화는 물건너간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한 리더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변화가 피할 수 없는 운동으로 전개되는 힘은 리더와 생각을 같이하는 12% 내지 20%의 비밀결사대원의 힘이다. 이들의 공동의 목적을 향한 동시성의 날갯짓이 변화의 뜨거운 에너지를 만든 것이다.

이런 12제자의 도원결의 없이 리더가 자신의 힘을 믿고 변화를 몰아친다면 결국은 패배할 운명의 십자군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출범한 이재명 정부도 선한 마음을 전파해 49%의 민심을 60% 70%로 키우지 못하고 개혁에만 골몰한다면 국민을 대상으로 십지군 전쟁을 벌이다 무너진 정부로 기억될 것이다.

이상은 <#급진거북이: 진성리더의 변화전략(#잉걸북스 2024)>에 소개된 비밀결사대 전략의 내용을 설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