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10년간의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간의 험난한 여정을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는 조셉 캠벨의 '영웅 여정'에서 '귀환의 고난' 단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모세도 애굽에서 탈출한 후 고향인 가나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40년을 광야에서 헤매었다.
영웅이 미지의 세계에서 얻은 지혜와 힘을 얻어 고향으로의 귀환을 시도하지만 귀향과정은 만만치 않은 시련으로 가득하다.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간 얻은 지혜의 보화가 고향 사람들의 삶의 진실과 정렬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마지막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런 영웅의 귀환서사에 비해 우리가 알고 있는 금의환양은 지독히 세속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성경 속 야곱도 귀환의 고통을 겪는다. 야곱이 귀환과정에서 경험한 고난은 단순히 한 개인의 삶을 넘어, 우리 모두의 영웅의 마지막 여정을 비추는 거울이다. 특히 형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채고 도망쳤던 야곱이 오랜 유랑 끝에 고향으로 돌아오던 길, 얍복 강가에서 벌인 천사와의 씨름은 조셉 캠벨의 '영웅 여정' 중 '귀환의 고난'을 상징한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재산을 불리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형 에서와의 관계라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과 대면하고 화해해야 하는 정신적 여정이었다. 얍복 강을 건너기 전 홀로 남겨진 야곱에게 나타난 존재, 그리고 그와의 밤샘 씨름은 이 고난의 절정이다.
야곱은 날이 샐 때까지 천사와 필사적으로 씨름했다. 천사는 야곱의 엉덩이뼈를 쳐서 위골시켰지만, 야곱은 놓아주지 않고 축복을 구했다. 이 상징적인 싸움에서 야곱은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변화를 갈망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의미를 지닌 이 이름은 야곱이 더 이상 과거의 기만자 야곱이 아니라, 신과 인간 앞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났음을 선포한다.
엉덩뼈가 위골되는 고통은 야곱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그의 약점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증표가 된다. 이제 야곱은 육체적 한계를 지닌 채 절뚝거리며 걷게 되었지만, 이는 그가 단순히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이 고통은 야곱의 겸손과 의존성을 상기시키며, 과거의 야곱이 지녔던 교만함을 꺾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전능한 천사가 왜 야곱에게 져주었을까?
이는 천사가 야곱의 투지를 시험하고 그를 변화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패배'로 해석할 수 있다. 천사는 야곱의 간절한 변화의 열망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보았고, 그에게 합당한 축복과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천사의 '져줌'은 단순히 힘의 우열을 가리는 행위가 아니라, 야곱이 스스로의 노력과 고통을 통해 얻어낸 영적 승리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은혜의 행위인 것이다.
이 씨름은 야곱의 삶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불안과 두려움에 갇혀 사는 존재가 아니었다. 육체적 고통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새로운 이름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한 야곱은 이제 형 에서와의 화해라는 마지막 관문을 넘어설 준비가 되었다.
본인의 저서
#급진거북이 (잉걸북스 2024)에서 야곱의 천사와의 씨름을 뒤집기 전략으로 묘사한다. 역경이 직각으로 처들어올 때는 적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직각으로 세운 지점에서 45도 각도로 비켜서서 역경을 직면할 때 목적이 보인다. 천사는 여전히 45도의 각도가 아니라 직각으로 마주 싸우는 야곱의 엉덩이를 탈골시켜 삶의 진리와 자신의 정체성을 보도록 조언했다.
캠벨의 '영웅 여정'에서 '귀환의 고난'은 영웅이 변화된 모습으로 현실 세계에 재진입하기 전 겪는 최종 시험이다. 야곱의 씨름은 이 단계에서 그가 겪는 내면의 갈등과 외적인 시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고난을 통해 야곱은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고, 과거의 짐을 벗어던진 채 새로운 이스라엘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역시 삶의 얍복 강가에서 밤새 씨름하며 얻는 고통과 상처가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하고 지혜롭게 만드는 축복이 될 수 있음을 야곱의 이야기는 일깨워 준다.
작성일 : 25-09-2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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