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굴은 스스로 파고 들어가 숨을 수도 있지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는 변화의 노력에 실패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토굴 속에 갇힐 수도 있다. 문제는 같은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파놓은 각자의 토굴 때문에 공유하는 공간자체에 싱크홀이 생기는 현상이다.

세상이 발전해온 역사는 다음과 같다. 우선 누군가 선도자가 나와서 더 높은 곳에 더 평평하고 안전한 운동장을 만들 수 있다고 설파한다. 처음에는 소수만 공감할 수 있지만 이 운동장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 운동장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새로운 운동장에 대한 뉴노멀의 비전이 작동한 것이다.

이 새로운 운동장에 대한 개념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집결하기 시작한다. 자금을 댈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술을 댈 수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결국은 협업으로 상상속에만 존재하던 뉴노멀의 세상을 구현해낸다. 뉴노멀이 현실로 나타나면 더 이상 뉴노멀이 아닌 현실의 노멀이 된다. 실제 더 높은 곳에 운동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 노멀의 운동장에 재빠르게 적응해서 올라타는 사람들과 올라타지 못하는 사람이 구별되기 시작한다. 올라타는 사람은 더 평평해지고 제약이 없는 땅에서 주인공으로서의 삶을 향유한다. 향유를 넘어서 본인도 더 높은 곳에 만들어진 더 평평한 땅인 새로운 뉴노멀을 제시해보기 위해 몰입하기도 한다.

새로운 운동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의 처치는 싱크홀이 만든 토굴에 갇히는 신세다. 자신의 그자리에 가만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 주변으로 땅의 솟아 올라와 자신만 갇힌 형국이다. 이런 일을 서너차례 겪다보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올라올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싱크홀에 갇혔다는 현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자기합리화와 자신을 토굴에 갇히게 만든 세상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싱크홀이 만든 깊은 토굴이 감옥으로 전환된다. 자신을 감옥에 인질로 잡아놓고 스스로가 죄수와 간수 역할을 번갈아 해가며 스스로의 탈주를 막는다. 자신을 인질로 삼아 자신의 감옥 속에 가두어버린 것이다.

싱크홀이 생겨 토굴에 갇히는 현상은 회사에서도 발생한다. 회사가 사명과 목적을 통해 미래에 대한 뉴노멀을 제시하지 못하는 회사가 먹잇감이다. 목적과 사명으로 무장한 회사는 자신만의 뉴노멀을 만들어 회사와 구성원이 토굴에 갇히는 것을 막기 위해 구성원에게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지대의 울타리를 제공한다. 싱크홀이 회사에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속적인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의 위한 공간과 지원이 제공된다.

사명과 목적이 부재한 회사에는 역설적인 일이 발생한다. 종업원들이 나름의 안정지대를 마련하기 위해 먼저 토굴을 파고 숨는 성향이 있다. 자신만의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회사 내에 구성원들이 토굴을 파고 숨어버리면 조직의 과제의 성공을 위해 협업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 개인들이 동굴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각 부서들이 협동해서 동굴을 파고 숨어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회사는 사일로 현상이 극에 달해 동굴과 동굴이 속으로 연결된 정치적 연줄이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

이들이 동굴을 파고 숨는 이유는 자신들만의 피신처인 심리적 안정지대가 필요한데 회사가 그것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 안정지대는 자신과 세상 사이에 버퍼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지대가 있어야 변화하는 세상에 그대로 벌거벗은 채로 노출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동굴을 파고 도피해 있는 구성원들에게 보다 생산적인 심리적 안정지대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회사의 미래는 없다. 리더의 역할이 이들이 파고 숨어버린 토굴에 큰 싱크홀이 생겨 이들의 의지로는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파국이 발생하지 않게 더 생산적인 심리적 안정지대를 제공해서 구성원들을 토굴 밖으로 뛰쳐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들이 파놓은 토굴들로 회사 전체에 싱크홀이 생겨 토굴자체를 삼켜버릴 수 있음을 경고해야 한다.

생산적인 심리적 안정지대는 뉴노멀을 만들기 위한 실험이 행해지는 전문가들의 놀이터다. 전문가들의 놀이터는 구성원들이 일을 통해 안심하고 학습과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지대를 말한다. 일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이 나날이 증가하는 것을 체험하는 성장체험의 공간이다. 리더가 제공하는 심리적 안정지대가 자신들이 숨어 있는 동굴보다 더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종업원들은 영원히 케이브 맨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고 회사에 큰 싱크홀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회사자체가 무너진다.

리더가 만들어줄 수 있는 심리적 안정지대로서의 전문가들의 놀이터는 사명의 울타리와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마당과 목적에 대한 믿음과 해석을 담당하는 성소로 구성된다. 사명의 울타리는 예측가능성을 제공해주고 마당은 일을 통해 마음껏 실험하고 실험을 통해 전문가로의 성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성소는 회사의 목적에 대한 믿음을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공진화시키는 성당이다.

목적은 경영에서 초합리성을 보증하는 마지막 보루다. 회사에서 행해지는 많은 과제들로 부분최적화된 목표를 목적이 정한 한 방향으로 수렴시켜 회사 전체를 최적화하는 고도의 경영수단이기 때문이다. 목적이 없는 회사의 종업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목표 중심의 부분최적화에 올인한다. 이들 부분최적화가 성공적으로 시행될수록 회사 전체를 전체최적화는 희생된다. 마케팅, 생산, 유통, 세일즈, 재무, 회계라는 각 부문에서는 모두 A 플러스를 맞았어도 제품이 고객에게 약속한 것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회사경영은 F학점이다. 부분의 목표를 전체의 목적으로 최적화시키는 시스템이 부재한 회사에서 겪는 대표적 수난이다.

한때 잘 나가던 회사의 비즈니스 모형도 사명과 목적에 따라 공진화하는 것을 멈추면 어느 순간에 큰 싱크홀로 전락한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대부분의 한국의 회사들의 모습은 큰 산에 온통 토굴의 흔적만 보인다. 구성원들은 운동장이 아니라 토굴에 숨어 정치를 하고 있어서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파놓은 토굴들이 무너져 회사를 덮치는 싱크홀이라도 생긴다면 파국은 치명적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