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12월에 내놓은 ‘2021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가 나왔다. 관심을 끄는 자료는 직업별 신뢰도 수준이다. 이 조사에 인용된 사례수는 5010명으로 보고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들이 기준점으로 삼는 신뢰도는 5점만점에 3.23이다. 설문지 문항에서 중립점은 3점이다. 3.23점은 그저그렇다보다 약간 신뢰쪽으로 기울어진 점수다.

국민들의 평균 신뢰기준점인 3.23보다 높은 쪽을 차지하고 있는 직종은 교육계 종사자와 의료진뿐이다. 다른 모든 직종은 신뢰준거점보다 못한 신뢰잔고를 가지고 있다. 가장 낮은 점수가 정치가들이다. 종교인들도 2.83으로 신뢰하지 못할 집단으로 분류되어 있다. 놀랍게도 언론인들 점수인 3.04보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집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법조인은 3.08로 언론인보다는 높지만 법조인을 검사, 변호사, 판사로 분류해서 평가하면 이 점수는 판사직군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신뢰잔고 점수가 낮다는 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낮은 직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반사람들과 거래를 할 때 거래의 진실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차이점수를 보전해주는 담보물이 요구된다. 거래비용에 대한 보전이 요구된다. 거래비용도 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기 때문에 상식적인 수준에서 사는 보통사람과 이 직군에 해당되는 사람이 거래가 성사되려면 이 직군사람이 보통사람에게 손실가능성에 해당하는 돈을 현금으로 담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차액을 보전할 수 있는 현금이 없는 사람들은 점점 거래에서 배제되고 정상적인 거래가 힘에 부친다. 신뢰잔고가 떨어지면 삶은 점점 팍팍해진다.

보통사람들보다 높은 신뢰직군에 포진한 사람들의 혜택은 무엇일까? 이 직군사람들과는 실제 어느 정도 금전적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생겨도 거래상대가 그 금액을 책임져가며 거래를 하려는 성향을 만들어낸다. 이 직군에 속하면 현금이 없어도 언제든지 무담보 신용거래가 가능하다. 은행에 이자를 지불해가며 돈을 빌릴 필요도 없이 보통사람들에게 현금을 차용해서 쓸 수도 있다. 신뢰잔고가 높다는 것은 엄청난 경제적 이득이다.

신뢰잔고가 있는 사람들만이 생존을 넘어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운신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신뢰수준이 높으면 거래비용이 줄어들고 줄어든 거래비용만큼 서로가 서로를 위해 신용대출을 해주는 세상이 가능해진다. 신뢰잔고가 없다는 것은 당장 신뢰잔고를 보전할 현금이 없으면 미래를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이나 국가나 개인이나 상관없이 미래는 신뢰잔고에서의 인출을 통해 만들어진다.

신뢰잔고가 비어 있다는 것은 미래를 잃었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신뢰잔고가 비어간다는 것을 직감한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현금거래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현금거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공정성을 들이대며 거래를 거부한다. 공정성은 미래를 잃은 사람들의 절규다.

조사를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은행의 신뢰잔고 수준은 파산직전이다. 사회의 신뢰잔고가 파산직전에 도달하면 생계를 위해 남들을 속이는 생계형 사기꾼들이 넘쳐난다.

신뢰잔고의 하락이 사회적 양극화의 주범이다. 사회의 신뢰잔고가 떨어진다는 것은 모든 일을 현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산가들만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쪽으로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매질하고도 돈으로 갚기도 하고, 갑질하고도 돈으로 무마하고, 심지어는 사악한 일을 시켜가면서도 돈으로 매수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활동에서 배제된다. 노예나 수단으로 전락한다. 부가 부를 만들어 양극화는 극에 달한다.

신뢰의 잔고의 부도를 막고 신뢰잔고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 빠진 대통령 후보들의 "공정과 정의"에 대한 약속은 모두 지켜질 수 없는 허언이다. 특히 신뢰할 수 없는 행적의 과거를 가진 사람이 자기반성 없이 정의와 공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100% 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