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9-04 08:33
[N.Learning] 신간소개, Hospitality: 아픔에 대한 환대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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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spitality: 아픔에 대한 환대
윤정구저

<Hospitality: 아픔에 대한 환대>에서 성천상을 받은 의료인 10분의 절대적 환대를 향한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절대적 환대란 상대의 이름을 묻지 않고 환대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조건적 환대란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선택적으로 환대하는 행동이다. 성천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슈바이처들을 발굴해서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상이다. 성천상 수상자들은 한국의 슈바이처이자 환대의 장인들이다.

얼마 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많은 국민이 감동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했던 이유는 병원(hospital)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였던 환대(hospitality)가 병원에서 조차 사라졌음에 대한 풍자 때문이었다.사회적 이슈를 부각해 여기에 출연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연기로나마 환대를 복원시킨 것이 주효했다.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에서 실종된 절대적 환대를 담론화했다.

본 저서에서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드라마가 아닌 실제 의료현장에서 성천상 수상 의료인들이 우리 사회에 사라진 환대를 어떻게 복원하고 있는지를 탐구했다.

환대는 초대한 손님이 가진 고통을 치유해 이들을 삶의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행동이다. 환대의 시작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아픔에 대한 긍휼로 자신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고 이 힘으로 경계를 확장해 자신의 집의 문을 열고 아픈 사람들을 손님으로 초대하고 환대한다. 아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초대해 이들을 삶의 주인공으로 일으켜 세우는 일이 환대다.

이 책에서 소개한 환대의 정신이 다른 사회영역에서도 전수되고 학습되면 온 국민이 치유를 경험할 것이다. 환대로 복원된 공동체에서 각자 영역의 주인공으로 생생지락을 할 수 있는 행복한 나라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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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환대를 통한 치유 체험
온전한 주인으로 세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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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Hospitality)는 아픔을 치유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치료는 물리적 아픔을 고쳐주는 것이지만 치유는 아픈 몸과 아픈 마음을 온전한 상태로 돌려주는 행동을 의미한다.
환대의 철학자 데리다는 환대를 절대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로 나누고 있다. 절대적 환대는 상대의 이름을 묻지 않고 상대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행위이고, 조건적 환대는 조건을 충족한 사람을 선택적으로 치료해주는 행위이다. 절대적 환대는 신의 영역이지만 인류의 역사는 조건적 환대의 지평을 절대적 환대의 지평으로 높여가는 과정이었다.
이번 책에서는 의사나 간호사로 종사하신 성천상 수상자 10분의 환자들에 대한 환대철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해봤다. 성천상은 대한민국의 보건의료 노벨상이다.
이분들의 삶을 자료를 통해 읽고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추상적 철학이 아닌 일상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환대의 실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첫째, 이들은 의사로서 환자를 고장난 기계로 생각하고 고쳐주는 치료(healing)을 넘어서 온전한 인간으로 탄생시키는 치유(curing)로 환대했다. 이들은 치료의 의술을 넘어서 치유의 인술을 실천했다.
둘째, 이분들은 조건적 환대를 넘어서서 환자의 이름과 신분과 치료비를 낼 수 있는 여부를 묻지 않고 치료하는 절대적 환대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생명은 조건적 환대에 의해서 규정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절대적 환대를 향해 비틀거려가며 걸어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성천상을 수상하신 분들에게 내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환대의 호혜성과 주체성이다.
이분들의 절대적 환대를 위한 시작은 한결같이 먼저 자신을 온전하게 주인으로 세우는 일이었다. 자신을 온전하게 주인으로 세운 사람들만 온전하게 손님을 환대할 수 있다는 것을 누누히 강조해주셨다. 온전하게 주인된 사람들만이 손님을 초대해서 제대로 환대할 수 있는 근력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주인됨을 넘어서 치유받아야 할 사람을 손님으로 초대해서 절대적 환대를 베풀어 이들을 주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환대의 사명임을 가르쳐주셨다. 이들은 제대로 환대할 줄 아는 주인이 소중한 손님들에게 "자신의 집처럼 편하게 지내라"고 주문하듯 환대를 베풀어 이들을 자신 삶의 주인으로 세웠다.
이들에게 주인으로 세워지는 환대를 경험해서 치유받은 사람들은 치유받은 후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어 다른 손님들을 초대해 주인으로 세우는 과정을 통해 환대받았던 치유의 빚을 갚아나갔다. 환대의 호혜성이다.
환대의 호혜성이 넘치는 이들 주변에는 항상 치유받은 체험인 따뜻함과 주체성이 넘쳐 흘렀다. 이들이 담당했던 산동네 판자촌과, 섬과 나라 전체가 예외없이 따뜻한 치유된 공동체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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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환대하라
주인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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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JW학술재단과 협업으로 <Hospitality 환대>를 출간했다. 연구대상은 우리나라 의학계의 슈바이처 상인 성천상을 받은 10분의 실존 슈바이처 분들이다. 이분들의 삶은 진성리더십의 전형이다. 성천상은 한 마디로 의학계의 진성리더십 상이다.
데리다, 아렌트, 레비나스 등 환대철학을 공부하면서 이들이 제안하고 있는 환대의 개념에 중요한 톱니바퀴 하나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환대가 데리다의 절대적 환대이든 상대적 환대이든 아니면 아렌트의 약자를 대신해 가면을 써주는 행위이든, 레비나스의 타자에 대한 환대이든 이들이 개념화 하고 있는 환대는 모두 타자에 대한 환대이다. 이들의 환대 개념에는 환대를 가능하게 하는 자발적 원천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환대를 강요하는 윤리성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10분의 슈바이처 분들의 자료와 직접 인터뷰를 통해 환대철학에서 놓친 부분인 환대의 주체철학을 찾아낼 수 있었다. 윤리적으로 강요된 환대가 아닌 주체적 환대는 자신에 대한 환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환자나 타자를 손님으로 환대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환대를 통해 온전한 주인되기가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온전하게 주인된 사람만 타자를 손님으로 온전하게 환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주인이 아닌 손님이 타자를 온전하게 환대하지는 못한다.
환대가 윤리성을 넘어 온전한 환대가 되도록 하는 근원은 결국 자신에 대한 환대에서 나온다. 환대 철학자들은 환대를 타자에 대한 환대로 치환시켜 버림을 통해 환대의 자발성을 놓치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환대가 전제되지 못한 데리다, 아렌트, 레비나스의 환대는 환대의 연기이거나 아니면 윤리적 희생으로 끝난다.
우리가 온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아픔을 극복하는 자기긍휼을 거친다. 하지만 삶이 성공에 대한 지나친 열망에 종속되면 아픔을 품고 있는 자아에 대한 온전한 사랑인 자기 긍휼보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생물학적 재능만을 선택적으로 편애한다. 인간의 온전한 성장은 내면이 가지고 있는 성장통이 자기 긍휼이라는 온전한 사랑으로 극복되어서 부모가 생물학적으로 물려준 머리와 재능과 멋진 외모의 두꺼운 알껍질을 뚫고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과정이다. 부모로 부터 받은 재능, 능력, 멋진 신체 등 유전자 복권에 대한 편애가 자신에 대한 환대를 망친다.
사람들에게 멋진 모습으로 재현된 외면적 자신이 고통으로 홀로 울고 있는 내면의 자신을 환대하지 못한다면 고통은 성인아이로 고착되어 결국은 자신을 고사시킨다. 환대란 고통으로 울고 있는 아픔도 환대하고 사랑하는 행위이다. 자신의 아픔을 제대로 온전하게 환대하는 사랑만이 자신을 깨우고 몸을 일으켜 세워 자신을 삶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쓰러져 고통스럽게 울고 있는 자신의 성인아이를 환대하지 않고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 복권만 환대하는 사람은 지독하게 나쁘거나 멍청한 사람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골방에 가두어 놓고 학대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천 슈바이처들은 모두 자신이 유전자 복권으로 물려받은 재능을 넘어서 고통스럽게 울고 있는 내면을 발견해 긍휼의 온전한 사랑으로 일으켜 세워 주인으로 환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환대로 주인됨이 완성되면 다음 단계는 환대의 철학자들이 제시하는대로 아픈 타인을 손님으로 초대해 절대적 타자로 환대하고 이들을 다시 긍휼로 치유해 스스로 설 수 있는 온전한 자아로 세워 자신의 삶의 장면에 주인으로 내보낸다. 주인으로 환대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을 초대해 환대를 베푸는 호혜성을 실천할 것이다.
환대의 호혜성은 차거운 우리 세상에 따뜻한 이불이 될 것이다. 성천 슈바이처들은 우리가 꺼트리지 말아야할 환대의 불씨다.


강희창 22-09-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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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사역에 있어서 "환대"는 정말 중요한 주제일 겁니다. 특히나, 이민자로서 살아가면서 이민교회를 섬기고 있는 제게, 더군다나 온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곳 미국에서의 "환대"라는 주제는 더 크게 다가옵니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로, 환대라는 것이 무엇일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늘 귀한 가르침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영육간 늘 강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윤정구 22-09-2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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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환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대해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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