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사랑 받고 보호 받아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부모가 생각만큼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은 대부분 조건적 사랑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부모는 아이에 대한 모범생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아이가 이 기대를 충족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혹은 자신이 성취하지 못한 것을 아이가 성취해줄 싹수를 보일 때 더 사랑한다.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때 어떤 부모는 자녀가 다리 밑에서 주어온 아이라고 속인다. 제대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언제든 사랑이 철회될 수 있다는 위협이다.

농부가 농작물을 키우거나 젖소를 키울 때 베푸는 사랑은 모두 조건적 사랑이다. 농부도 농작물과 젖소를 사랑으로 키우지만 사랑으로 키우는 이유는 양질의 곡식과 양질의 우유를 얻기 위함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말로는 무조건적 사랑을 베풀고 있다고 세뇌 시키지만 면밀히 들여다 보면 대부분이 농부가 젖소를 키울 때의 마음인 조건적 사랑으로 키운다. 부모의 이런 조건적 사랑이 아이의 정체성의 씨앗을 형성하고 이 씨앗이 커져서 성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결국 성인이 되어서 주장하는 정체성도 부모가 씨앗을 뿌려 길러낸 것이다. 사춘기가 되면 부모가 키운 정체성에 반란을 일으키지만 대부분은 제압된다.

아이가 타고난 망나니거나 장애아인 경우는 다르다. 부모는 조건적 사랑에 의해 길들일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건적 사랑을 포기하고 무조건적 사랑을 베푼다. 역설적으로 부모는 포기해야 무조건적 사랑을 나눠준다.

이런 조건적 사랑에 익숙해져서 사회에 나가 성인이 되고 직장을 다녀도 부모가 길러준 장점을 기반으로 사랑 받을 일을 선제적으로 행함을 통해 사랑을 구한다. 살면서 한번도 무조건적 사랑의 힘을 느껴본 적이 없다. 조건적 사랑의 시녀가 된다.

이런 조건적 사랑이 빛을 발하는 동안 자신이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감춰지고 이 문제들을 먹고 자란 내면의 성인아이가 탄생한다. 성인아이는 편도체가 상상적으로 만들어낸 내면의 악마이자 물귀신이다. 편도체 속에 숨어 살기 때문에 더 큰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다.

성인아이는 부모가 풀기를 기대하는 문제와 답안에 숙련되어 풀지 못하고 감추어 두었던 이 미제 사건의 역사를 담고 있다. 성인 아이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꼬임(complex 컴플랙스)이다. 정신을 차리고 살 때는 이 성인아이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무의식 상황에서나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는 이 성인아이가 밖으로 드러나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성인아이는 조건적 사랑에 익숙해 자신을 키우는 동안 정신이 온전하게 성숙하지 못해 생긴 나의 사생아이고 나의 고통이고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모범생으로 길러진 사람들이 더 큰 성인아이를 가지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에게나 실재한다. 신문지상에 등장하는 사건들 대부분은 이 성인아이가 통제를 벗어나 난동을 부려 발생한 사건들이다. 성인아이는 잘못된 밈(Meme)으로 작동하여 각종 사건사고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성인아이가 힘이 강해질수록 세상에 대한 긍정적 일탈인 미담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삶을 산다. 성인아이는 결정적 순간에 나타나 조건적 사랑을 사랑으로 알고 화려하게 포장하고 연기해가며 사는 자신의 허약한 실체를 폭로한다.

성인아이와 표면자아가 서로 싸우는 한 삶의 이중몰입은 극복되지 못한다. 두명의 자아가 내면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며 시시건건 충돌한다. 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사람들이 온전하게 성장한다는 것은 성인아이의 아픔을 인정하고 직면할 때만 가능해진다. 무의식의 거적으로 덮어놓고 숨겨온 성인아이의 아픔과 직면해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이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성인아이를 포옹하고 치유하는 일을 돕고 일으켜 세울 때 화해를 통한 변화의 여정이 시작된다.

성인아이는 내가 낳고 내가 책임져야 할 망나니 자식이다. 사회적으로 미숙한 망나니 아들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고통을 느끼고 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무조건적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성인아이도 무조건적 사랑으로 키워야 제대로 키울 수 있다.

부모가 가르쳐준 조건적 사랑을 넘어 고통을 가진 자신의 성인아이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 자기 긍휼(Self-compassion)이다. 긍휼의 어원은 Passion(고통)을 Com(함께)하다이다. 자신의 고통도 자신의 분신임을 인정하고 온전하게 사랑해가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만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자기긍휼은 성인아이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무조건적 사랑으로 온전하게 사랑하고 환대하고 치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가 가르쳐준 조건적 사랑은 멋진 것 아름다운 것 자랑스러운 것, 재능이 발휘되는 것,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을 선택적으로 편애하는 사랑이다. 무조건적 사랑이란 아픈 자신도 자신으로 온전하게 긍휼하는 것이다.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멋진 것들에 대한 사랑의 편애가 결국은 지금의 성인아이를 키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 긍휼감이 없다는 것은 멋진 자신에 대한 지독한 편애일 뿐 아니라 아픈 자신을 감추고 멀리하고 밀어내고 차별하는 편견이다.

자기긍휼의 사랑을 복원하는 일만이 자신의 성인아이를 제대로 일으켜 세워 제대로된 소생(Redemption)의 여정을 시작하게 도와준다. 긍휼에 대한 각성을 통해 자신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이유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자기긍휼로 성인아이와 화해하고 아픔에 눈 감았던 잘못을 고백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릴 때 자신에 대한 근원적 변화의 여정이 시작된다. 성인아이가 자기긍휼로 치유되어 사랑의 편애만을 쫓아 살던 표면아이와 화해하면 온전한 보석같은 자기를 완성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성인아이가 자기긍휼이라는 무조건적 사랑으로 치유되는 성장체험의 주인공이 되어보면 주변에 자신보다 더 크고 강력한 성인아이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가 낳은 자식인 성인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남의 자식 귀한 것도 안다. 온전한 보석같은 자신이 되어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어 온전하게 사랑하는 행동이 긍휼 Compassion이다. 긍휼이란 타인의 성인아이를 치유하고 환대하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행동이다. 자기긍휼이 없이는 타인에 대한 진실한 긍휼이 싹트지 못한다. 의무감에서 비자발적으로 시혜하는 사랑을 긍휼로 잘못 오해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에 대한 긍휼과 타인에 대한 긍휼이라는 온전한 사랑은 먹구름 속에 꽁꽁 숨겨져 있던 자신 삶의 목적을 찾게 도와준다. 목적은 내가 나의 이름에 목숨을 걸고 나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사랑해 소생 시켜야 하는 이유다. 내가 왜 사랑에 대한 편애를 벗어나 세상을 온전하게 사랑해가여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온전한 긍휼의 사랑이 변화가 상수가 되고 모든 것이 매일 변화해 답을 찾지 못하고 꼬일대로 꼬인 문제 투성이의 삶 속에서 길 잃은 자신을 직시하고 성찰하게 한다. 길 잃음이 본질이 된 세상에서 자신이 잃은 길을 찾을 수 있는 나침반이다. 자신의 아픔에 대한 무조건적 긍휼의 사랑이 결국 매일 길을 잃어도 다시 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근원적 자신감의 기반을 마련해준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자신의 아픔조차도 사랑하는 무조건적 사랑 즉 자기긍휼이다. 정말 삶을 근원적으로 혁신하고 변화시키려면 먼저 자신의 고통의 실체인 성인아이와 화해해보자. 성인아이를 지금의 내 몸의 크기만큼 키워내는 일이 균형된 건강한 삶의 단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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