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휘발유도 필요하고 윤활유도 요구된다. 휘발유가 떨어지면 차가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운전자는 휘발유의 잔고에만 신경을 쓴다. 실제로 윤활유가 없어도 차는 운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윤활유가 떨어진 상태에서 차를 지속적으로 운행하면 차에는 마모가 심해지고 성능이 떨어지다가 결국은 멈춰 선다. 결국 차를 폐기처분해야 한다.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도 이런 자동차에 필요한 휘발유와 윤활유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휘발유는 경제적으로 배불리 먹고 사는 문제를 결정하지만 윤활유는 오랫동안 잘 먹고 사는 문제를 결정한다. 사회에서도 윤활유가 떨어지면 기능과 기능 사이의 마모가 심해져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다가 갈등의 비용이 산출해내는 경제적 가치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사회는 멈춰선다. 사회에서 휘발유는 경제가 담당하지만 윤활유는 구성원들이 만들어낸 유대감을 의미한다.
경제학자들의 먹고사는 시장논리로 사회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들은 휘발유만 있으면 사회는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경제학자들이 상상하는 이상적 시장은 사고 파는 거래행위에 어떤 마찰력도 발생하지 않는 곳이다. 시장거래에는 마찰력이 없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마찰을 완화시켜주는 윤활유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상적 휘발유 논리에 경도되면 먹고사는 문제인 휘발유에만 집중한다. 필요한 것은 차를 움직이는 휘발유다. 결국 경제학의 휘발유 논리 따라 사회를 운용하면 어느 순간 마찰력이 누적적으로 증가한다. 사회는 마모되고 갈등은 심화되고 갈등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사회는 멈춰선다. 경제학자들의 휘발유 가정과는 달리 모든 시장 거래에는 거래비용이 초래된다. 이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한 윤활유가 떨어지면 시장도 멈춰선다. 논리의 자가당착에 빠져 결국은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진퇴양란에 처해진다.
휘발유만 신경쓰다가 윤활유가 떨어져 마찰력이 증가한 사회는 급격하게 사회적 기능들이 마모되고 조절능력이 떨어져 갈등을 증폭시키는 진영논리가 지배하게 된다. 사회의 토양자체가 급격하게 산성화된다. 인간의 몸에 비유하면 영양소는 넘치는데 비타민을 통한 호로문 분비가 끊긴 것이다. 혈액이 제대로 순환되어 영양을 공급하더라도 호르몬 분비에 장애가 생기면 심각한 고혈압 당뇨 등 기저질환의 원인이 된다.
사회를 원활하게 움직이는 윤활유는 유대감이다.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의 휘발유 논리에 경도되어 윤활유의 잔고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의 일상화로 원활한 교류의 주고받음을 통해 생기는 유대감의 잔고가 더 급속하게 떨어졌다. 휘발유 논리에 경도된 삶을 살아온 정치가나 사회적 지도자는 윤활유의 부족을 휘발유가 떨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각자의 휘발유를 더 채우는 노력에 정책을 집중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결국 갈등이 폭증해 대한민국이 갈등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사회가 붕괴되기 일보직전이다. 휘발유 논리에 경도된 지도자들이 우리 사회 전체를 기저질환으로 시달리게 만들고 있다.
사회의 윤활유인 유대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호르몬 처방이 필요하다. 유대감을 증폭시키는 호르몬제로는 긍휼, 겸허, 용기, 감사, 환대, 회복탄력성, 자기효능감, 희망 등 긍정심리자본과 윤리적 정서가 거론된다.
이 모든 심리자본과 윤리적 정서의 기반은 긍휼감이다. 긍휼감은 상대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내재화해 상대와 같이 손잡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적 성향을 의미한다.
우리는 윤활유가 떨어진 차를 끌고 휘발유를 채워가며 사는 하루 하루의 일상 속에서 상처받고 기력이 날로 쇠진해 쓰러지기 직전이다. 이런 상처받은 자신과 이웃과 동료의 아픔을 용기 있게 직시하는 것이 긍휼감의 시작이다. 상처를 제 때 치유하지 못해 구더기가 생겼고 구더기가 무서워 거적을 덮어놓고 살고 있었다. 자신의 거적을 들춰내고 상처를 인정하고 상처 속에 구더기가 생긴 것을 직시하는 용기가 긍휼감의 시작이다.
리더나 조직이 고통 받는 구성원들의 아픔에 민감성을 보이고 이를 행동으로 해결해주려는 성향을 보이지 못한다면 집단은 와해 수순을 밟게 된다. 리더 개인을 넘어서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상대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환대해가며 같이 풀어가려는 성향을 보이지 못한다면 집단의 유대감은 상실된다. 윤활류는 타인과 자신의 사이의 관계의 복원을 통해서만 취득할 수 있다. 서로의 상처를 직시하는 용기, 환대, 치유없이는 윤활유를 얻을 방법이 없다. 구성원들은 각자 도생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되지만 이들의 자동차는 결국 영원히 움직이지 못하게 부숴진다. 결국 생존을 핑게로 불살라진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창궐해 개인, 조직, 사회, 국가가 무너진다. 온통 산성화된 대한민국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서로의 아픔을 용기 있게 직시하고 치유하고 환대해가며 서로가 온전한 자신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 긍휼의 완성이다. 이런 긍휼의 마음이 상처를 직시하는 용기, 상처를 인정하는 겸허, 치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이런 용기, 겸허, 감사가 다시 세상을 긍정하는 낙관, 희망, 회복탄력성, 효능감의 기반을 만들어준다.
긍휼은 우리에게 필요한 각종 윤활유를 원천에서 다시 흐르게 만드는 종합 비타민제다. 긍휼은 관계와 관계 사에에 박혀 있는 결석들을 녹여내는 따뜻함이다. 대한민국 리더십이 지금처럼 표류하게 된 이유도 결국은 하나다. 긍휼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휘발유 논리에 경도된 리더가 정치적 진영 전투에서 이겨 리더로 세워진 것이 문제다. 휘발유을 생산할 능력이 비슷하다면 긍휼감이 있는 리더를 찾아 리더로 세울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의 산성화를 이끌었던 윤활유는 다시 채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사회갈등은 윤활유인 유대감의 절대적 고갈에서 생긴 것이다. 성장 주도적 개발논리를 펴는 리더는 이럴 때일수록 항상 그래왔듯이 쇠진해진 구성원을 독려해 휘발유 생산에 집중하겠지만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리더는 휘발유와 윤활유를 같이 점검하는 것을 책무로 삼는다. 어렵게 생산한 경제적 가치를 상쇄하고도 남는 사회적 비용이 치솟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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