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1-20 10:54
[N.Learning] 역량의 시대가 가고 기술의 시대가 오다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379  

역량의 시대가 가고 기술의 시대가 오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의 본질
요즈음 글로벌 HR에서는 역량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기술이 역량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 기술(technology)에 대한 학습은 묘듈학습(Modular Learning)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고 회사의 기술 플랫폼 안에서 개인의 과제수행에 적합한 기술(skill)을 스스로 선택해서 학습하는 것은 미시학습(Micro Learning)이라고 칭하고 있다.
역량이란 용어가 사라진 이유는 경쟁이라는 함의 때문이다. 역량의 정의는 지식, 기술, 태도, 무엇이든 이것을 갖춤에 의해서 경쟁상대를 이길 수 있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외모가 자신의 경쟁력을 만들어주면 당연히 외모는 역량이다. 좋은 머리가 경쟁력을 만들어주면 머리도 역량이다. 역량 속에 담긴 의도는 상대를 경쟁에서 제압하고 궁극적으로 이기는 것이다. 전략에서도 경쟁력과 상관이 없다면 자신들이 가진 것을 역량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기업은 역량을 찾아내기 위해 상위 10%의 성과를 낸 사람과 하위 10% 사람들의 차이점을 분석하지 않는다. 상위 10% 상위 20% 사람들 사이에서 경쟁력의 차이를 결정해주는 요소를 발견했을 때 이것을 역량이라고 규정한다. 그만큼 역량은 경쟁지향적 용어다.
문제는 상위 10%의 성과도 이미 과거의 성과다. 이런 성과를 낸 사람들의 차별적 역량을 알아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전제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세상이 바뀌지 않아야 한다. 지금처럼 세상이 초뷰카 세상이어서 변화가 상수인 세상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찾아내어도 과거의 영광을 울리는 뒤북일 뿐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골리앗은 과거 전투의 상징이던 창과 방패,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미래를 상징하는 다윗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풀무돌 다섯개로 무장하고 있다. 미래의 싸움에서 질 운명인 골리앗은 승리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역량에 해당하는 갑옷, 투구, 창, 방패를 더 날카롭게 만들고 무겁게 만들지만 이런 역량 중심적 사고가 결국 골리앗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경쟁에 치인 학생들도 경쟁에 져서 루저로 낙인찍히게 될 불안하기 때문에 골리앗처럼 스팩으로 중무장하지만 이런 중무장이 자신을 좌절시킨다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적어도 역량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가치중립성을 담지하고 있다. 기술에 대해 가장 뛰어난 철학적 정의를 제시한 사람은 하이데거다. 하이데거는 기술은 도구로서 존재의미를 가지고 있고 도구로서의 존재의미를 가진 기술이 기술다울 때는 목적에 종속되어 있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을 때라고 규정한다. 예를 들어 망치가 도구로서 못을 제대로 박고 있을 때는 망치질을 하는 사람조차 망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지만 망치가 남을 해치는 도구로 사용되거나 못을 박기보다는 손등을 찍었을 때는 존재를 드러내 망치로서의 존재이유를 상실한다.
다윗에게 풀무돌 다섯은 도구이자 기술이다. 도구인 기술은 그자체로 존재이유가 없다. 도구는 목적과 연동되어서만 존재이유를 가진다. 존재이유를 상실한 도구는 도구자체가 목적으로 정당화되어 주변 것들을 파괴한다.
기술과 역량을 구별하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목적이다. 기술은 인간의 선한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도구로서 존재하지만 역량은 역량을 가진 사람이 상대를 이기고 제압하는 도구로 사용되다 실제로 상대를 이기는 승리를 가져오면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우상화된다.
대한민국도 지금 플랫폼 기술 기반의 마이크로 러닝이나 모듈라 러닝의 열풍이 부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기술이 존재이유를 구현하는 쪽으로 사용되지 못한다면 회사와 종업원을 과도하게 기술로 무장시켜 골리앗으로 만들 수 있다.
기술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 존재의미가 있다. 삼성전자가 기술 만능주의로 남들을 초격차 기술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남았을 때는 그나마 경기가 무한성장했던 신자유주 시대에 통용될 수 있었다. 지금과 같은 L자 초뷰카 시대에는 시대착오적 전략이다. 삼성전자가 가진 기술은 초뷰카 시대가 전개되는 것과는 디커플링 된 과부화된 골리앗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위태로운 것은 아직도 기술에 의한 초격차의 믿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초뷰카시대에 골리앗으로 무너질 운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글로벌 기업들이 왜 역량을 벗어나 기술중심 전환을 도모하고 있는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기술이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면 회사의 정당성을 보증해주는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이 존재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기술이 정렬되어 있어야 한다. 기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술을 역량처럼 생각해 회사를 골리앗으로 만들어 결국 회사를 무너트릴 것이다. 존재목적을 상실한 회사에 초격차 기술은 개발의 편자다.
삼성전자가 초격차 기술우위를 강조하는 동안 스티브 잡스가 애플은 기술과 인문의 교차점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해가며 애플을 굳이 기술회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 삼성전자, 애플 중 어떤 회사가 길을 잃은 회사인지가 분명해진다.
삼성전자의 문제는 기술의 초격차를 만들지 못함이 아니라 초뷰카 시대에 초격차라는 잘못된 전략 때문에 길을 잃었음을 각성하지 못함이다.

이름 패스워드 비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