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에 선교사와 원주민이 어떤 목적지를 향한 여정에 쫓겨 같이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달리다 원주민이 갑자기 멈춰선다. 선교사가 멈춘 이유를 묻자 원주민은 우리가 너무 빨리 달려와서 영혼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렸다가 영혼을 앞세워서 다시 길을 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원주민이 선교사에게 해주는 이야기는 영혼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목적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하루의 삶을 미션으로 산다고 자부하는 선교사도 바쁘게 살다 보니 자신 삶의 목적이 제대로 된 드라이버가 되어 자신의 미래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우화는 바쁘게 살다 소진되는 삶으로 생을 마무리하는 시시포스운 비운을 경고하고 있다. 목표와 생존을 위해 바쁘게 살지만 정작 목적의 숨결이 살아 있는 영혼을 죽이게 되고 결국은 존재가 소진해서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운명적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부조리에 대한 경고다. 우리 현대인에게 들려주는 주옥같은 우화다.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목적은 삶을 숭고함을 완성하는 미션 여정으로 전환시킨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인 제 2의 탄생에서 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해서 정산하는 죽음의 순간까지의 과정이 여정으로 제시된다. 이 여정을 통해 삶은 텅 비었던 존재의 배를 채워간다. 목적이 어떤 매개 과정을 통해 몸, 마음, 정신을 온전하게 일으켜 세우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지금까지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 진행되었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았다. 목적을 앞세워 사명의 여정을 떠난 사람들이 목적을 통해 자신의 존재의 배에 채울 수 있는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목적은 영혼의 자명종이자 의미의 소나기다. 아침에 일어나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게 만드는 것도 영혼의 종소리 때문이다. 사막과 같은 일상에서 삶이 의미를 잃고 헤메고 있을 때도 간간히 의미의 소나기를 퍼부어 영혼이 소진되는 것을 막는다. 목적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면 목적의 종착지에 도달했을 때 느끼는 희열을 일상의 일 속에서도 체험한다. 목적에 도달하는 일련의 베이스 캠프를 설정하고 첫 베이스 캠프에 도달하는 촘촘한 계단을 완성하는 행동의 동력이다. 목적에 도달하는 신 나는 여정으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행복은 덤이다. 자신의 존재의 배가 점점 더 채워져 스스로 존재감 체험하고 존재감을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이 확장된다. 이런 일련의 체험은 유데모닉 행복(Eudemonic Happiness)의 원천이다. 목적에 도달하는 길에서 만난 장애는 목적을 향한 여정을 위한 근력을 단련시킨다. 목적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연단의 기회를 회피하지 않는다. 목적은 자신의 영혼에 떠 있는 북극성이다. 영혼에 떠 있는 북극성이 없는 모든 사람들이 캄캄한 밤에 모두가 길을 잃고 헤메도 길을 잃지 않는 이유다. 목적은 불확실성이 넘쳐 나는 세상을 항해하게 할 수 있는 나침반이다. 불확실성의 망망대해를 만나도 자신 있게 있게 항해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필요하면 언제든 새로운 지도를 그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목적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목적에 향하는 길에서 탈로하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 목적이 자신의 탐욕을 제어하는 브레이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목적은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탈로하는 사람들에게 괘도를 이탈하지 말라는 사이렌 경고 소리를 들려준다.  집중력: 니체도 충고하고 있듯이 목적을 잃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일에 몰입해 시간을 낭비한다. 목적이 있는 사람들은 삶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별할 수 있는 안목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일을 먼저 한다. 목적을 실현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고 위급한 일로 먼저 처리하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항상 여유롭다. 열정은 목적에 도달하는 길에서 만나는 고통을 이겨내서 희열을 만드는 열정의 발전소이다. 목적을 실현하는 일련의 사명 프로젝트를 통해 존재의 빈배가 채워지는 체험이 충만함이다. 몸, 마음, 영혼이 동반 성장하는 최고의 충만함을 만끽한다. 목적을 처음 깨달은 과거, 목적의 종착역에 있는 마지막 미래, 여행 중인 자신의 현재가 모두 점과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발견의 체험을 한다. 인간에게 목적은 미래를 향한 여정이다. 더 나은 미래에 더 평평한 고원을 찾아 나서는 모든 사람들은 동행이고 도반이다. 목적이 없었을 때 이들과의 긴장과 분쟁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모두가 운명의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존재목적을 깨달고 이를 실현하는 삶은 사는 사람들은 목표을 세우고 자신을 몰아치는 시지포스의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 평균 25% 더 건강하고 장수를 누리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스트레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주요 원인이다. 미래의 목적이 만들어낸 울타리는 이들에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지대를 제공한다. 당연히 심리적 울타리를 두르지 못하고 매일 생존의 문제에 시달리는 비교 집단에 비해 이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덜 느낀다. 목적을 향한 여정의 운명의 동반자들은 서로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서로가 여정을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고 환대하고 치유한다. 환대의 공동체를 만든다. 목적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실패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실패를 결과로 생각하기보다는 다음 미션 라운드에서 생산성을 높이히 위한 학습의 지룃대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으로 정렬된 학습의 축적으로 삶의 7부 능선을 넘을 때 즈음에는 더 이상 실패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지위를 획득한다. 이들은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면 삶의 생산성의 기울기는 더 가파르게 급등하고 번성하는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죽음은 인간이 더 이상 목적을 실현하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사명 프로젝트의 종착역이다. 죽음은 약속했던 목적을 얼마나 실현 했는지를 정산하는 정산소이다. 이 정산소에서 여정을 시작했을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스토리가 네러티브로 완성되어 사람들의 기억의 아카이브에 저장된다. 메모리로 저장되던 누군가의 네러티브가 후세 누군가의 목적을 향한 삶의 모티브를 제공하면 전생을 살았던 내러티브의 주인공의 삶은 다시 미래에 부활한다. 누군가의 선배로서의 전생의 삶이 새로운 미래를 살게 될 주인공 삶에 날줄이 된다. 미래의 주인공은 이 날줄에 자신의 발견한 씨줄을 엮어서 자신의 내러티브를 직조한다. 목적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삶을 영위해가는 공동 운명체라는 생태계에서 자신이 왜 대체 불가능한 존재인지에 대한 설명이다. 죽음에 이르러 이를 정산하는 순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이 설명이 다른 사람들에게 입증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대체불가능한 존재우위를 구현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삶에서 존재우위가 있다는 것은 목적에 대해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같은 상태인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 진실성을 실천해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지, 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시켜 약속의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삶을 사는 지의 문제다. 니체는 "목적을 잃은 순간 갑자기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목적을 잃지 않는 사람은 어떤 난관도 이겨낸다"고 조언한다. 우리가 하루 하루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시시포스의 돌 굴리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목표와 목표를 이어서 목걸이를 만들어주는 황금줄인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목표를 한 두 번 많이 크게 달성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면 죽는 순간까지 시시포스의 삶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죽음에 직면해서 유산으로 정산되기 전까지 목적은 주인공의 마음 속에 떠있던 주관적 체험으로서의 북극성이 된다. 우리는 주관적 체험으로의 북극성과 자신과 독립해서 떠 있는 세상의 북극성을 조율하가며 자신의 나침반의 극성을 높인다. 자신 마음 속에 떠 있는 북극성이 진북으로서의 북극성과 조율하는 떨림을 멈추었을 때 더는 북극성이 아니다. 영혼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떠나 다시 암운(The dark night of soul) 속을 헤맨다. 영혼 없는 삶이 시작된다. 영혼 없는 삶이란 영혼, 몸, 마음이 각자 우리로부터 가출해서 따로 노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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