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5-05 18:15
[N.Learning] 신천지에서 헤여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짜 아버지와의 잘못된 만남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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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에서 헤여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짜 아버지와의 잘못된 만남

어떤 사람들이 불확실성의 망망대해에 자신 있게 뛰어들어 근원적 변화를 성취하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일까?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이 편재한 세상에 이 불확실성의 망망대해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미래의 주인이 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잡은 신천지 같은 구명조끼가 자신을 익사시키는 무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낮선 동네에 갈 때 아버지 손을 잡고 가는 어린이와 혼자서 길을 헤메는 어린이의 심리 상태를 상상해보자. 아버지 손을 잡고 낮선 동네를 가는 어린이는 심리적 평안을 느끼는 반면 혼자서 가는 어린이의 마음은 공황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 공황장애는 대부분 불확실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어서 언제든지 위험상태에 벌거벗은 상태로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생긴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는 어린이도 아버지를 잃어버려 잘못되는 상황에 떨어지지 않도록 부모의 손을 과도하게 쥘 것이다. 어렸을 때 과도하게 아버지의 손을 쥐는 본능은 성인이 되어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부모가 불확실성에 내던져지는 상황에 구세주 역할을 한 것이다. 아이가 자라 사회생활을 하게되면 부모는 더 이상 구세주가 되줄 수 없다. 아이는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나선다. 사회생활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상사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특히 돈이나 권력이나 지위가 많은 유능한 사람 중에서 아버지 같은 버팀목을 찾는다. 카리스마가 등장한다. 아버지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본능이 심해지면 심지어 카리스마 매력을 가진 연예인들에게도 열광한다. 아버지를 통해 불확실성을 통제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카리스마가 나에게 사랑과 긍휼감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카리스마에게 상처를 받는다.

직장상사나 리더들에게 찾던 아버지 역할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구세주 아버지를 대부분 종교에서 찾는다. 무당이나 기복종교에 빠지면 여기서 만난 신 아버지는 사회에서 만난 카리스마나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보다 더 잘못된 아버지다. 제대로된 종교에서 제대로된 아버지를 만나도 어렸을 때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에 대한 유아 경험이 성직자에게 그대로 치환된다면 구세주 신과의 관계도 잘못될 개연성이 높다. 성직자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면 자신의 노력이나 자신의 삶에 태도와 무관하게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절대 빽을 가졌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에 빠지면 결국 잘못 설정된 아버지 관계의 망령은 되 살아난다. 프로이드가 맹목적으로 자신을 신에게 종속시켜려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문을 발령하게 된 계기가 된다.

아버지, 카리스마, 잘못된 종교의 공통점은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미끼로 나 자신을 영구히 어린이 상태로 고착시켜 성인아이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들은 불확실성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구세주이고 나는 구세주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나는 성인아이이다. 이들은 나를 성인아이로 만들어 나에게 빨대를 대고 영양을 공급해주는 척해가며 지속적으로 나를 갈취한다. 지속적으로 영양을 빼앗기기만 하니 제대로 리더나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방법이 없다.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매력적인 성인은 주어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자신을 소중하게 사랑하고 자신에게 긍휼감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높은 자긍심, 효능감,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긍심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가치 있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자긍심은 생활의 양식으로 삶의 에너지를 준다. 효능감은 전부는 아니지만 불확실성을 나 스스로도 통제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어려운 언덕을 넘을 수 있는 근육을 제공해준다. 정체성은 과거와 현재의 주도권은 남들이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미래의 운명에 대한 주도권은 자신이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이다. 정체성은 길을 잃었을 경우에 대비한 나침반이다. 이 세 가지가 바로 내가 망망대해에서 몸을 던져야 하는 순간에도 자신있게 몸을 던지게 할 수 있는 비결이다. 이것들이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나의 생존을 보장해줄 나의 구명조끼이기 때문이다.

부모, 카르스마, 신과의 관계가 자신의 자긍심, 효능감, 정체성을 늘리는 쪽으로 설정되어 있다면 제대로된 관계가 설정된 것이다. 반대로 이들과의 종속적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의 정체성, 자긍심, 효능감이 점점 사라져간다면 나는 나이가 먹어 어른이 되지만 실제는 어린아이에 불과한 성인아이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버지, 카리스마, 신에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나에 대한 긍휼감을 가지시고 나 스스로가 불확실한 망망대해에 알몸으로 던져져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정상적이고 매력적인 성인으로 성장시켜달라는 기도일 것이다. 이를 위한 나만의 존재이유를 증명하는 목적스토리를 복원하고 남들이 설정한 삼인칭으로서의 삶을 초기값을 넘어서 나만의 일인칭 삶을 찾을 때 자긍심, 효능감, 정체성도 명료해진다. 아버지, 카리스마, 신과의 관계가 일인칭 삶의 핵심인 나의 자긍심, 효능감, 정체성을 쪼그라들게 한다면 심지어는 제대로 된 종교의 신과의 관계라도 정상적으로 설정된 것은 아니다.

신천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라면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불확실성의 망망대해에 몸을 던질 수 있는 나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있나? 내가 따르고 있는 신천지가 이 목적지를 찾아가게 하는 제대로 된 구명조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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