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0-27 07:18
[N.Learning] 나훈아 공연의 남긴 것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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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공연이 던진 화두
성찰하는 추석
나훈아의 공연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간 트로트가 달궈온 붐도 한 영향을 끼치었겠지만 그간의 우후죽순처럼 복제되던 연예 트로트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묵직한 입담이 더 화제가 되고 있다. 공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신문기사를 보면 다음 세 마디 언급이 특히 눈에 띈다.
첫째, "KBS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을 위한 방송이지요. 두고 보세요. KBS는 앞으로 거듭날 겁니다."
KBS는 공영방송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국민의 아픔보다는 권력에 더 촉각을 세우는 방송으로 국민들의 공적방송이 된 적이 있다. 이런 아픔을 성찰해서 미국의 PBS나 영국의 BBC 정도의 공영방송급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KBS의 미래가 있다는 예언처럼 들린다. SNS가 소통의 민주화를 이끌어냄으로 모든 국민을 방송 PD나 기자로 만들었다. 기성 방송 신문은 유튜브, 페이스 북에 밀려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 이런 디지털 추세에서 필연적으로 신문방송 재벌들은 쇄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결국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밖에는 없다. 단 공영방송이 국민의 아픈 마음을 제대로 위로하고 이를 공론화 시켜 제대로 된 미래의 물꼬를 터주는 책무를 달성 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는다. BBC나 PBS급의 공영방송으로 제대로 태어난다면 국민들은 내지 말라고 만류해도 자발적으로 수신료를 내는 긴 행렬에 동참할 것이다.
둘째, 김동건 아나운서가 "훈장도 거절하셨다면서요?라는 질문에 다음처럼 대응했다고 기사가 나왔다. “세월의 무게가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무거운데 어떻게 훈장까지 달고 삽니까. 노랫말 쓰고 노래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사명이나 목적에 대한 약속의 실현이 아니라 돈과 명예에 연연해가며 사는 사람에 대한 쓴 소리로 들린다. 진정한 자유라는 것은 가수면 가수로 정치가면 정치가로 세상에 자신이 어떤 존재로 기여하겠다는 목적에 대한 약속을 책무로 실현시킴을 통해 자유를 얻는 것이지 훈장의 무게로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렸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약속을 지킴에 의해서 자유를 얻는다.
삼성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회고록에 나훈아의 일화가 나온다. 그당시 가수들은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3-4곡을 부르고 당시 가격으로 3천만원을 받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모두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이 제안을 받은 나훈아는 초대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다. 가수는 공연을 통해 먹고 사는 사람이니 정말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그렇게 야매로 부르지 말고 티켓을 예약해서 공연장에 와서 노래를 들으라는 것이 이유였다고 김용철 변호사가 전했다. 남북의 해빙무드가 한 참 무르익을 때 남한을 대표하는 초청가수로 북한에 의해 초대되었는데 개인적 사유를 들어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정일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어떻게 한 개인이 국가의 부름을 거절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해 관계자들이 곤혼스러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셋째, 제대로 된 성숙된 민주화는 완장찬 정치가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초들이 완성시키고 민초들이 힘이 있으면 정치가들이 사라진다는 위로의 말이다.
"우리는 많이 힘듭니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습니다. 옛날 역사책을 보면 제가 살아오는 동안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IMF때도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 팔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입니다”
제대로된 정치란 카리스마가 넘치는 정치가가 앞에 나서서 완장을 두루고 지켜지지 않는 비전 등으로 국민을 현혹시킬 때보다는 국민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가늠해 나가며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을 때 물꼬가 마련된다. 정치의 역할을 국민들이 주체적이고 신명나게 시민의 삶을 즐길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역할이다. 요순시대 임금님이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뛰어 넘어 동양 민주주의의 최고봉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이유도 백성들이 스스로 미래를 걱정하며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이들에게 제대로 된 판을 깔아준 플랫폼 리더십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공연의 백미는 테스형이라는 신곡에서 찾을 수 있다. 테스는 스크라테스를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이 무지함을 알라"라고 자신에 대한 자아인식이 진실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삶의 가장 모범적 스승임을 주장한 진성리더십의 설립자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변화가 쓰나미가 된 세상에서는 제일 먼저 길을 잃는 사람이 된다. 아무리 재능과 재력과 권력이 넘쳐도 길을 잃는다면 이들이 자랑하는 재능, 권력, 재력도 다 밑빠진 독으로 흐르는 무용지물이 된다. 길을 잃지 않았을 때만 이들 자원을 미래를 개척하는데 투자해 미래의 선두에 설 수 있다.
내가 공연을 너무 미화해가며 앞서서 해석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때보다 힘든 추석을 맞이한 지금 대한민국을 제대로 위로할 수 있는 이런 가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공연이 있어서 국민들이 그나마 고통스런 물리적 거리에 대항해 좁혀진 사회적 거리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강요되는 물리적 거리두기에 말려들어 사회적 거리까지 벌어지는 형국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사회적 거리좁히기는 잘못된 물리적 거리두기로 끊어진 혈관을 다시 이어서 사회유기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이번 추석에는 이런 중대한 사안을 성찰할 수 있는 추석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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