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3 17:04
[N.Learning] 어떻게 이겨낼 수 있나? 초뷰카 패닉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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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겨낼 수 있나?
초뷰카 패닉
초뷰카시대란 특이점을 향해 달려가는 변화의 속도가 인간이 따라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시대다. 대부분의 살아 있는 주체들은 변화한 것에 대한 지도가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 직면한다. 지도가 없다면 모든 것은 혼돈이고 무질서이다. 세상을 이해하지 못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상태 즉 패닉에 빠진 상태다. 맨붕이란 자신이 알고 있던 지도가 예상하지 못한 다른 상황을 만났을 때 붕괴되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다.
Open AI, 로봇, chat GPT로 세상의 지형이 또 한번 바뀌었다. 대부분 현존하는 대한민국 기업들은 바뀐 새로운 세상에 대해 지도를 마련하지 못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위험에만 민감하게 수동적으로 반응하다가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다. 국가, 기업, 리더, 구성원들은 점점 패닉에 바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자신의 토굴 속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토굴 속에 피신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왜 패닉에 빠졌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누군가가 실체를 알고 토굴 밖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이 공포가 끊없이 전염되어 토굴 전체를 전복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토굴에서 튀쳐나와 미래를 향해 떠나는 마차(Band Wagon)에 올라타지 못하면 결국 이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다.
어떻게 대응할까?
상황은 그림에도 보이는 것과 같이 날아오르는 회전그네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이런 회전그네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밖으로 향하는 원심력과 위 아래로 움직이는 구심력을 기계가 제어해주기 때문이다.
현실은 우리 모두가 회전그네에 올라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심력과 원심력을 통제할 수 있는 자기근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결국 변화가 상수일 뿐 아니라 날아오르는 회전그네가 되어서 움직이는 초뷰카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심력을 제어하지 못해 밖으로 떨어지든지, 구심력이 없어서 아래로 추락하거나 위로 거세게 날아오른 때 탈로하는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초뷰카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원심력과 구심력 모두를 잃은 결과는 패닉과 죽음이다.
위 아래의 수직적 통합을 책임지는 구심력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의 상황에서도 버리지 말아야 할 존재목적에 대한 철학과 근력을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원심력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지탱하게 할 존재목적을 담은 철학과 정체성의 근력이 구심력 근력이다. 밖으로 향하는 수평적 통합을 책임지는 원심력은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변화에 적응하고 기회를 위해 취해야 할 것은 취할 수 있는 균형을 유지하는 근력을 의미한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버리지 못한 것들의 무게 때문에 회전그네의 원심력이 커지면 더 멀리 내동댕이 당한다.
초뷰카시대 구심력을 가진 조직과 리더를 존재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칭하고, 원심력을 가진 조직과 리더를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칭한다. 초뷰카시대 새로운 지평에서 적응해서 변화를 선도하는 사람들은 존재우위라는 씨줄과 경쟁우위라는 날줄이 직조된 자신만의 태피스트리를 가지고 이것을 근력화한 경우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이만큼 생존을 유지해온 것은 경쟁우위를 통해 Copy & Paste를 하는 벤치마킹 전략이 주효했으나 초뷰카시대에 대한민국은 국가든, 기업이든. 교회든, 사회든 모든 주체는 존재우위의 씨줄을 찾아서 우리가 가진 경쟁우위를 직조해 더 고차원의 근력을 마련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초뷰카시대는 최적의 전문적 솔루션(의사, 변호사, 경영컨설턴트, 코치 등등)은 chat GPT가 공짜로 제공하는 전문성의 민주화 시대다. 이런 통합적 지식을 단순히 아는 것과 제시된 전문성을 자신의 몸을 통해 체화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미래 지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근력이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chat GPT나 로봇이 할 수 없는 유일무일한 일은 미래의 지평을 개척하는 일이다. 초뷰카시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이런 근력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정보대칭성이 무너져 모든 답이 공개적으로 알려진 초뷰카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이런 고차원의 근력이 있는 사람과 근력이 없는 어린이로 양극화된다.
초뷰카시대의 본질은 길 잃음이다. 모든 사람이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길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따라서 초뷰카 삶에 원심력을 제어해가며 적응하고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는 생활 근력도 중요하지만 설사 균형을 잃고 쓰려졌을 때 존재목적을 찾아서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구심력 근력이 필수적이다.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존재목적이 있다면 언제든지 존재목적으로 좌표를 찾아 변화한 상황에 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길잃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목적이라는 나침반은 근원적 자신감의 기반이다.
이런 존재목적에 대한 근원적 자신감이라는 근력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목적을 향한 길을 포기하지 않는 회복탄력성의 근력도 만들어준다. 캄캄한 밤에 진흙탕을 헤메고 있어도 밤하늘에 북극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진흙탕을 벗어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포기하는 이유는 북극성도 보이지 않는 칠흑과 같은 밤을 헤메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잃고 헤메고 있는 국가나, 사회나, 기업, 리더는 자신들이 다른 국가, 사회, 기업, 리더를 제치고 왜 대체불가능한 존재자체로 인정받야하는 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존재자체의 대체불가능성을 소구하는 이유가 없다면 자신이 세상에 복수로 존재해야할 이유를 소구하지 못한 것이고 결국 대체가능한 대상이 나타나면 대체될 위험한 운명에 처한 것이다. 지속가능성이란 이런 대체불가능성을 입증하는 회사들만 전유할 수 있는 특권이다.
전문적 지식이 민주화된 chat GPT 세상에 차별성을 가진 리더란 존재목적을 향해 정렬된 근원적 자신감과 불가피하게 탈로했을 때 이 존재목적의 길로 다시 복원하는 회복탄력성 근력을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다. 이런 근력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몸만 큰 어린아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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