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가 달려온다.
실제 의학의 발전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수까지 생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실제 이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적어도 90세까지는 너끈하게 살게 될 것이다. 100세까지 사는 것이 일반화 될 경우 지금 우리가 계획한 노후계획들은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짜져야 할 것이다.
100세까지 산다면 조직에서는 정년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질 개연성이 높다. 한 직장에서 20대 젊은이와 90세 노인이 같은 직무에 할당되어 같이 근무할 개연성이 높아질 것이다. 90세 노인이 회사 인사기록부상으로도 젊은이들과 같이 활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와같은 변화는 4차산업혁명과 연동되어 노동시장을 근원적으로 바꿔 놓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 몸을 쓰는 공장일은 로봇이 대신할 것이고 머리를 쓰는 의사, 변호사, 판사, 교수 등은 AI가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쪽에서 AI 혹은 로봇과 경쟁해가며 90세까지 일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조만간 대학이 없어지겠지만 설사 대학에서 교수를 한다하더라도 가르치는 것은 인공지능과 가상증강현실에서 파견된 인공지능교수가 하고 실제 교수는 인공지능이 가르친 것을 현장에서 보습해주거나 보조역할을 해주게 될 것이다.
능력이 되거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인 영적 영역, 감성적 영역, 예술영역, 디자인 영역에서 90세까지 일하고 90세가 되면 은퇴해서 100세가 될 때까지 마지막 10년간의 노후를 즐길 것이다. AI나 로봇이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에서의 일이라는 것도 다 모쥴화된 일이어서 어떤 회사에 속해서 일한다기보다는 다 프리랜서의 개념으로 어떤 프로젝트가 뜰 때마다 참여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회사에서의 직무라는 것은 사라질 것이다.
결국 이런 100세 시대가 현실화 될 경우 이런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은 사무엘 울만이 자신의 <청춘>이라는 시에서 칭송한 100세 청년들일 뿐일 것이다. 100세가 되어도 청년정도의 학습능력과 변화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제대로된 노후의 행복한 삶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노인에게 뿐 아니라 젊은이에게도 영향을 미쳐 학습과 변화에 대해 준비가 안 된 노인들이나 청년들은 결국 죄꼬리만한 연금이나 하루벌이 일자리에 의지해가며 지루한 삶을 오래 오래 살다가 비참하게 삶을 마감할 것이다. 변화에 준비가 안 된 무늬만 청년인 젊은이들은 노인들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더 비참한 삶을 살다가 삶을 마감할 것이다.
100세까지도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지 않으려면 청년이든 노인이든 100세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연한 학습능력과 변화능력인 Transformative Capability가 필수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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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울만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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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미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를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십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고뇌, 공포, 실망 때문에 기력이 땅으로 떨어질 때
비로소 마음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
육십 세이든 십육 세이든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놀라움에 끌리는 마음,
젖먹이 아이와 같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
삶에서 환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이다.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간직되어 있다.
아름다움, 희망, 희열, 용기
영원의 세계에서 오는 힘,
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그대는 젊음을 유지할 것이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라는 눈에 파묻히고
비탄이란 얼음에 갇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이십세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없다.
그러나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