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의 행군
바람(wind)의 딸' 한비야가 어느 날 긴급구호 팀장이라는 생소한 직함을 들고 다시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세계 여행이나 계속하지 왜 힘든 긴급구호를 하느냐’는 물음들을 뒤로 한 채 5년이 흘렀다. 5년이 흐른 후 그녀의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지도 밖의 삶이 얼마나 가슴을 뛰게 만들 삶이었는지를 온몸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녀의 지도 안의 삶은 정신모형 I이 지배하는 삶이고 지도 밖의 삶은 정신모형 II가 지배하는 삶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도 현실은 다르지 않느냐고. 물론 다르다. 그러니 선택이랄 수밖에. 난 적어도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새장 밖은 불확실하여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백전백패의 무모함뿐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새장 밖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새장 밖의 충만한 행복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새장 안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이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늘도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가벼운 바람에도 성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소진하고 소진했을지라도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기꺼이 쏟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인가? (p.14)
현장으로 떠나기 얼마 전에 받은 이메일에서 누군가가 그랬다. 당신들이 목숨 바쳐 일한들,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통 받는 사람 전체 중 얼마를 돌볼 수 있느냐? 잘 해봐야 10만 분의 1도 구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면 맥이 빠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되새긴다. 바닷가에 사는 어부가 아침마다 해변으로 밀려온 불가사리를 바다로 던져 살려주었다. "그 수많은 불가사리 중 겨우 몇 마리를 살린다고 뭐가 달라지겠소?" 동네 사람의 물음에 어부는 대답했다. "그 불가사리로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진 거죠 (p.61).
한비야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모든 사람들이 바위로 계란을 치는 일이라 말려도 영혼 있는 계란은 바위를 깰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겁내고 주저하기보다는 부딪쳐본다는 자세로 임하되, 일단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최선을 다해 땀의 결실 sweat equity를 거둔다는 점이다. 천재가 하루아침에 이루어놓은 일보다 보통 사람이 몇 년에 걸쳐 땀과 열정을 바쳐 이룬 일을 훨씬 더 값지다고는 믿음이 한비야만에게 배어있다. 1 퍼센트의 가능성만 보여도 세상과 자신이 만들어놓은 한계와 틀을 벗어나 자신 안에 숨겨진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는 목적 지향적 삶이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신모형 I의 감옥에서 탈출해 자신만의 진북이 담겨있는 정신모형 II를 찾아 여행하는 삶이 바로 가슴 뛰는 삶의 정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