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4-23 07:57
[N.Learning] 온전한 자아모형
 글쓴이 : Administra…
조회 : 2,733  

온전한 자아 모형 (Whole Self Model)
사회적 나르시스트
사람의 몸은 7년 단위로 생물학적 세포가 완전히 물갈이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0년을 살았다면 10번의 몸에 대한 완전한 물갈이가 있었던 셈이다.
몸이 물갈이를 통해 커가는 만큼 우리 정신도 맞춰서 자동적으로 커가는 것은 아니다. 몸이 커가는 것에 비해 내면의 정신이 상대적으로 쪼그라든 상태를 성인아이라고 칭한다. 반대로 커간 몸에 맞게 세상의 기대(돈, 권력, 명예)에 따라 키워진 사회적 자아도 존재한다.
우리 삶에서의 번성이란 내면의 성인아이와 사회적 자아 간 분절의 문제를 해결하고 통합된 온전한 자아를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죽는 순간까지 두 자아가 온전한 자아를 향해 성장해가는 과정이 성장체험이다.
성장체험은 밖으로만 도는 사회적 자아가 내면에 쓰러져 고통스럽게 누워있는 자신인 성인아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 아이를 자신에 대한 조절과 성찰이 가능한 제대로 된 성인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지의 문제다. 성인아이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인지하고 이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어 고통을 원인의 수준에서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행동이 자기긍휼(Self Compassion)이다. 자기긍휼이 작동되기 시작하면 성인아이는 제대로 일으켜 세워지고 밖으로만 돌던 사회적 자아와 화해해 진실된 온전한 자아를 만들어간다.
진실된 온전한 자아는 자신의 존재목적이라는 왈츠곡에 맞춰 내면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같이 튜엣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다. 두 자아가 협업해 마치 한 몸으로 춤을 추는 것과 같은 상태를 연출한다. 성인아이가 제대로 성장해 성인수준의 내면적 자아를 형성하면 자신에 대한 성찰이 가능해지고 사회적 자아는 내면적 자아가 제공하는 성찰에 맞춰 자신의 근력을 제공해준다. 온전한 자아는 춤출 수 있는 근력과 삶에 대한 성찰의 이중주가 가능한 자아다.
쓰러진 성인아이의 고통에 대해 인지하고 성인아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돈, 권력, 명예를 위해 밖으만 돌던 사회적 자아를 불러들여 서로 춤추게 할 수 있는 온전한 자신을 향한 성장체험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에너지 원이다.
온전한 자아(Whole Self)로의 성장체험은 삶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이 온전한 자아로 부터 에너지를 충전받을 수 있을 때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서 자신의 삶이라는 자동차를 온전하게 주체적으로 운전할 수 있게 된다. 이 원천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고 있는데 윤리적 의무감으로 남들을 돕는 일에 나선다는 것은 가지고 있던 조금의 에너지마저 고갈시켜 처음 가지고 있던 의무감을 화석화시킨다.
온전한 자아로의 성장체험이 정체된 경우 기형화된 성인아이가 사회적 자아를 조작하기 시작한다. 사회적 자아가 만든 권력, 명예, 돈을 이용해서 주변의 사람들을 성인아이의 울음을 해소하는 도구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나아르시스들의 실체다.
사회적 나르시스트는 성인아이와 사회적 자아가 통합되기는 커녕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면서 서로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이중분열을 일으킨 사람들을 지칭한다. 사회적 나르시스트는 성인아이가 사회적 자아를 통해 획득한 돈, 권력, 명예를 조종해서 주변인들을 도구화한다. 자신의 내면의 자아가 성인아이로 머무른 사람이 사람이 돈, 권력, 명예를 성취하면 내면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 사이의 성찰의 공간이 사라지고 성인아이는 사회적 자아를 전이의 도구로 삼아 둘 사이에 정신분열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주변에 있는 남들에게 폐해를 가하기 시작한다. 사회적 나르시스트들은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서 남들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일에 몰입한다.
삶의 에너지가 점점 고갈되고 있다면 자신의 내면에 성인아이가 울고 있는지 이 아이를 달래기 위해 자신의 권력, 명예, 돈을 이용하고 있지 않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최근 글로벌 우량기업의 HR에서 최근에 강조하는 것이 바로 존재 목적기반의 온전한 자아 모형(The Whole Self Model)이다. 글로벌 기업의 HR에서는 굳이 9 to 5로 일하지 않아도 좋으니 한 시간을 일해도 조직과 자신의 존재 목적을 실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분절되지 않은 온전한 자아를 가지고 와서 일하도록 주문한다. 재택근무 등으로 양적 시간으로 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으니 질적 시간으로 일하라는 주문이다.
기업들이 회사에 올 때 정신은 문 밖에 걸어놓고 몸만가지고 오라고 주문하던 신자유주의의 전략적 HR을 주창하던 것이 엇그제 같은데 HR 지평도 상전벽해로 바뀌고 있다.

이름 패스워드 비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