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의 자유는 빚을 인지한 자만 향유한다. 자유에 대한 단상 최근 우리나라에서 자유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 취임 연설에 자유가 가장 많이 등장했던 이유가 한 몫을 했다. 우리는 자유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일까? 우리가 향유하고 열망하는 자유에 대한 주장들을 종합해보면 세 가지로 분류된다. 경제적, 사회적. 윤리적 자유가 그것이다. 자유는 경제적, 사회적, 윤리적 자유로 성숙되는 수순를 밟는다. 사회가 시민국가로 고도화된 수준도 국가가 어느 수준의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첫째 단계는 경제적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다. 인간이라면 살아 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 이 몸을 최소한의 수준에서 건강하게 운용할 수 있을 때 다음 단계의 자유에 대해 갈망할 수 있다. 몸을 지탱하게 해주는 의식주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해주는 경제력이 없다면 결국 다른 행동에 대한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최소한 인간의 건강한 몸으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첫단계의 자유다. 첫 단계의 자유는 생존을 위해 경제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이다. 시장논리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자들이 등극할 수 있었던 것도 경제적 자유의 문제가 자유의 첫 시발점이라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적 자유가 확보될 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신자유주의의 창안자 프리드만이 책 이름을 <Freedom to Choose>라고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먹고 사는 문제는 한계가 있어서 이 한계를 넘어 추구되면 욕망을 부풀려 사회를 환락에 대한 집착으로 내몬다. 신자유주의자의 문제는 이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데 있다. 우리는 하루에 열끼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10벌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10채의 집에 동시에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유지되기 위해서 기업들에게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 더 고급스러운 것에 경쟁적으로 집착하게 만들고 기업은 과소비에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과장 광고로 현혹해야 한다. 이런 방식의 결론은 사람이나 기업에게 한 방향으로 상승하는 욕구의 톱니바퀴를 시지포스 돌굴리듯 끊임없이 돌리게 만든다. 이런 집착에 빠져있는 동안 우리는 다른 자유에 눈을 돌리지 못한다. 신자유주의와 결탁한 물질만능 자본주의가 만든 함정이다. 생존과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적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다음 단계에서 추구하는 자유가 사회적 자유이다.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살아야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성원으로 인정받는 성원권이 중요하다. 권력, 명예, 지위를 추구하는 것도 이런 것들이 사회적 성원권을 부여받은 티켓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다른 사람들이 중요한 성원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더 높은 수준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평생 남의 눈치보며 사는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돈으로 권력, 명예, 지위를 얻어서 경제적 자유를 넘어 남의 눈치보지 않는 삶을 손에 넣으려고 시도한다. 이유는 남의 눈치 안보고 오히려 남을 호령하며 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사회적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최소한 남의 눈치가 주는 사회적 기대를 충족해주는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런 사회적 기대를 역할과 규범이라고 칭한다. 사회적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 남들의 기대하는 바에 해당하는 역할을 모범적으로 수행해야할 의무가 사회적 자유의 조건이다. 구성원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기대가 맞물려서 만들어진 것이 규범이다. 이 역할규범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을 모범생이라고 칭한다. 모범생이란 사회적 자유의 의무에 너무 고착되어 오히려 갇힌 사람들이다. 일단 모범생이라는 칭호에 갇히면 역설적으로 남들의 인정의 눈길이라는 사회적 속박의 감옥에 다시 갇힌다. 모범생이라는 가치규범은 사회가 질서유지를 위해 만든 감옥소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쓴 에릭 프롬은 이런 과도한 역할기대가 파행적 권력과 결합할 때 사회적 파국을 이끈다고 예언한다. 독일사람들이 나찌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것도 사회적 모범생 모드 때문이다. 모범생 독일 사람들이 힘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히틀러에게 잘보이고 이들이 요구하는 기대에 충족하기 위해 이들이 제안한 파괴적 행동에도 맹목적으로 동조했다. 우리가 향유하는 마지막 가장 성숙한 수준의 자유는 이런 사회적 자유가 함축하는 이중적 속박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부여된다. 이들은 사회적 기대를 충족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플러스 알파의 기여를 통해 같이 사는 공동체의 미래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보다 공동체에 기여를 많이 하면 이 기여자에게 더 기여한 만큼의 특이신용(Idiosyncratic Credit) 점수를 부여한다. 특이신용점수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여받은 신용점수만큼 어떤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특이 행동을 해도 문제삼지 않는 자유를 부여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부여받은 특이신용점수를 이용해서 자신만의 고유성이라는 자아실현을 위해서 사용한다. 하지만 이렇게 부여받은 특이신용 점수를 자아실현을 넘어서 타아실현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리더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이 특이신용점수를 자아실현으로 끝내는지 타아실현의 지룃대로 사용하는지의 문제다. 특이신용점수를 지룃대로 사용해서 리더로 나서 타아실현에 성공한 사람들은 자유의 가장 높고 성숙한 수준인 윤리적 주체로서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다. 자아실현을 넘어 리더로서 윤리적 주체로서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빚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각성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빚을 지고 태어났다. 특별한 재능과 머리와 이런 것들을 개발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부모 밑에 태어나게 한 것도 신이 자신을 대신해서 유전자 복권을 당첨되게 만든 것이다.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신에게 가장 큰 빚을 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심지어 산소와 물과 아름다운 자연을 공짜로 향유한 것도 빚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명으로 도와준 친구, 선후배, 이웃들에게도 큰 빚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들에게 진 빚과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이 가진 일부분을 이용해 유전자 복권에 당첨되지 못한 불운의 사람들도 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대한 약속을 한다. 약속은 죽기전에 최소한의 빚을 청산하겠다는 약속이다. 경제적 자유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제약에서 벗어나고 사회적 자유가 눈치보지 않고 사는 삶이라는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라면 윤리적 주체로서의 자유는 자신의 스스로 약속한 것을 실현하는 일에 나선 제약을 벗어나는 것을 넘어선 약속의 실현을 통해 얻어낸 향하는 자유이다. 이들이 죽기전에 자신의 약속을 실현했기 때문에 약속에 대한 부담을 벗고 언제든 홀연히 세상을 하직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느끼는 자유가 윤리적 주체로서의 자유다. 제대로 된 리더의 목적함수에 종속변수로 장착된 자유는 윤리적 주체를 실현하는 자유이다. 윤리적 주체를 실현하는 목적함수의 매개변수는 다양한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협업의 장을 마련해 이들에게 협업을 통한 사회적 자유를 누리게 만드는 것이다. 목적함수의 독립변수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자원을 만들어내는 경제적 자유일 것이다. 이런 자유에 대한 성숙한 목적함수를 장착하지 못한 리더는 대통령이어도 국민들에게 단지 직책으로 대통령일 뿐이다. 장관이어도 장관일 뿐이다. 국회의원이어도 검사 판사여도 직책으로 국회의원, 검사, 판사일 뿐이다. 사장이어도 사장일 뿐이다. 뿐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들이 행사하는 직책이상으로 나에게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못하게 막기 위함이다. 내가 이들이 직책을 유지하는 일에 더 이상 들러리로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뿐이다 라는 주장이 통용되는 이유는 오랫동안 사회지도층에게서 직책을 넘어 리더로서의 윤리적 자유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뿐이다라는 말로 사람들 마음에서 격리된 직책자들은 마음 속에 신선한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기대인 리더십을 상실했다. 국민들 마음 속에 뿐이다라는 말로 높은 팬스가 만들어진 직책자는 더 이상 리더가 아니다. 김구선생이 나의 소원에서 열망했던 문화강국이 바로 윤리적 자유를 목적함수로 실현하는 성숙한 시민국가를 뜻한다. 김구선생은 나라의 리더들이 잘 사는 나라라는 경제적 자유에 고착되어 모든 국민들이 모여 화합하고 협업해가며 약속한 문화를 실행하는 사회적 자유와 윤리적 자유를 놓치는 것을 경계했다. 이런 사회적 자유와 윤리적 자유를 놓칠 때 경제적 자유의 기반도 제대로 향유할 수 없음을 경고했다. 사람들은 사회적 자유와 윤리적 자유를 실현할 수 없을 때 그 불만을 실현되지 못한 경제적 자유에 과도하게 돌리는데 그렇다고 경제적 자유의 실현이 사회적 자유와 윤리적 자유를 자동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자유가 눈에 보이는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여기에 상습적으로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잘못된 경제확증편향에 빠진 정치가들이 범하는 오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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