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에서도 이기고 전쟁에서도 승리하는 비밀
한(The Great)의 철학
토요일에 시간을 내서 영화 <한산>를 관람했다.
영화의
주제인 한산도 대첩은 이순신이 이끈 3대 대첩의 시작점이다: 1) 한산도 대첩(1592년 7월 8일 시작; 선조 25년), 2) 명량대첩(1597년 9월 16일 시작; 선조 30년), 3) 노량대첩(1598년 11월 19일 시작; 선조 31년).
명량대첩은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괘멸로 수군에 남은 12척의 배로 칠천량 해전에서 333척의 왜군을 격파한다. 노량대첩은 이순신이 참전한 마지막 전투로 임진왜란 막바지에 이르러 도망가는 왜군에 쐐기를 박은 전투이다. 이순신은 이 전투에서 전사한다.
명량대첩에서 이순신은 수군이 패배의식이 전염되어 도저히 전쟁을 치룰 수 없는 상황에서 "저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전쟁상황을 긍정의 액자로 다시 프래이밍해 승리로 이끈다. 노량대첩에서는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며 이긴 싸움에서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순신 장군이 우리에게 불멸의 이순신으로 각인된 것은 승리한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했기 때문이다.
<한산> 영화에서 조선과 일본의 전투 목적이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으로 대비된다. 왜군에게 임진왜란은 조선을 넘어 명을 차지하는 나라와 나라의 패권 싸움이지만 이순신에게 전쟁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 이순신은 나라와 선조 임금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왜구의 불의에 대항해서 의를 세우기 위해서 싸웠다. 직책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백의종군하며 싸워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왕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고통받는 백성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이순신에게 감복해 조선수군의 첩보원으로 전향하는 왜군 병사가 묻는다.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이순신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대답한다. 감독은 이순신이 의를 민족의 정신적 유전자로 각인한 최초의 장수였음을 부각한다.
의는 성리학의 사단인 인의예지의 가장 큰 골격이다. 인의 본질은 사랑이고, 의의 본질은 존재 목적이고, 예의 본질은 인간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마음이고, 지의 본질은 지혜이다. 의로운 세상은 부모로 부터 유전적으로 받은 머리나 미모 재능과 같은 유전자 복권에서 배제된 사람들도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을 의미한다. 유전자 복권을 타지 못한 불운한 사람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더 높은 곳에, 더 평평하고, 더 공평하고, 더 살기좋은 세상을 실현하는 것을 지향하는 이념이다. 의를 최종 지향점으로 정한 목적함수가 제대로 구성이 되어지면 임진왜란과 같은 전투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종국에는 승리한다. 니체도 사람들이 혼탁한 세상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상황을 이겨내는 원천은 "의"라는 존재 목적의 나침판이 살아서 떨림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전쟁을 나라와 나라 간의 힘에 기반한 패권싸움을 넘어서 이순신 장군처럼 의와 불의의 전쟁으로 규정했을 때 제대로 된 전쟁의 목적함수가 설정되고 이 목적함수에 따른 전쟁의 수행은 전체 최적화를 가져와서 결국 전쟁에 승리할 수 밖에 없다. 배의 엔진에 해당하는 노젓는 격군이나 판옥선과 거북선의 협업, 육지에서 전투상황을 지켜보며 응원을 보낸 아낙네를 포함해 전쟁에 관여하는 모든 주체에 전체 최적화가 그대로 반영되면 의는 서로간의 큰 울림인 공진(Synchronicity) 에너지로 전환된다. 국가간의 정치 싸움이라고 전쟁을 규정한 조선과 원균의 전략은 공진성은 커녕 조선백성의 혼과 마음, 몸 모든 것을 쪼개 나라를 분열의 국가로 만들었다. 이들의 전쟁은 울림없는 메아리였다.
의라는 제대로 된 목적함수가 장착되면 사람들은 마냥 큰 것을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초보적 수준을 넘어서 큰 것(The Big)이 아니라 위대한 것(The Great)에 대한 지향점을 획득한다.
영화에서 의를 각성한 이순신에게는 한산도의 "한산 "의 의미도 외형의 크기(Big)가 아니라 정신적 위대함(Great)으로 각인된다. 한산도에서 이긴 전투에 대해 부하장수가 "완벽한 승리"라고 칭찬하자 이순신은 "더 위대한 승리"를 거론하고 부산포로 진격해서 왜군의 주둔지를 초토화시킨다. 의에 추동된 이순신은 한 전투의 승리가 아닌 전쟁의 승리를 통해서 의의 위대함을 실현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한국이라는 명칭은 외형이 큰 나라 (Big Country)가 아니라 의로 나라 전체를 최적화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위대한 나라(The Great Country)라는 의미다. 의는 우리 삶을 마냥 코고 강한 것만을 추구하는 초보적 동물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통해 위대함을 추구하는 전체최적화의 함수로 만든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우리 언어에는 이렇게 의로 최적화하여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한 韓 (The Great)"이라는 정신적 유전자가 언어 여기저기에 혼재해 있다.
한산, 한세상, 한곳, 한강, 한축, 한반도, 한줄기, 한통속, 한글, 한뿌리, 한마음, 한살림, 한가위, 한복, 한글, 한반도, 한국 등등 우리는 의를 통해 위대함을 추구하는 한민족(The Great Nation)이다. 우리의 정신은 위기 때마다 분열, 쪼개짐, 갈리치가 아니라 더 커다란 하나로 뭉쳐져 진화해왔음을 뜻한다.
이순신은 전쟁 승리를 넘어서 의를 실현하고 검증하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으로 전쟁의 목적함수를 다시 세웠다. 이순신은 조선이 지속가능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큰 나라가 아니라 위대한 나라를 향한 지향점을 회복해야 함을 각성했다. 의에 대한 각성을 사람들과 공유해 공의로 세우고 공의를 통해 격군과 수군과 온 나라를 임파워먼트 시켰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공의 (公義 혹은 共義)"는 의가 사람들 마음 속에 공유되어 공동의 운명체로 세워졌음을 뜻한다.
한산은 지금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들이 반드시 보고 자기 반성의 주제로 삼아야할 영화이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당선되었지만 국민들은 두 세달의 행적을 보고 대통령이 주장하던 공정 속에는 목적함수를 구성하는 공의로움이 사라진 법적 공정과 자기들끼리만의 상식임을 깨달았다. 의가 사라진 법 공정은 법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기득권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고 정당화하는 전략과 전술일 뿐이다. 칼자루 쪽을 쥔 금쪽같은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선택적 공정이다. 이들의 선택적 정의로 인해 칼끝이 향해 있는 대다수 국민들은 불공정의 극치를 맛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 마음 속에 공정과 상식은 조롱의 언어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이미 대통령이 주장하는 의가 사라진 선택적 공정을 굥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여당 야당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내노남불은 정치에서 우리를 위대한 한나라로 만들어주는 공유된 의 즉 공의가 총체적으로 실종되었음을 상징한다. 의가 상실된 토양에서는 큰 이익과 큰 당리당락과 큰 한 방을 쫓는 정치 모리배의 갈라치기가 세를 장악한다.
본인이 최근에 출간한 저서 <초뷰카시대 지속가능성의 실험실>도 한산과 같은 전쟁상황에서 전쟁을 존재목적이라는 전체 최적화 함수를 실현시키기 위한 기회로 생각하는 회사와 생존을 위해 그냥 크게 이기기 위한 전쟁으로 생각하는 회사를 <공의기업>과 <전략기업>으로 나눠서 분석하고 있다. 현실과 가상에서 전쟁이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초뷰카시대는 이런 공의의 나라와 공의기업들만이 시대와 미래의 지평을 연다. 기업들은 매년마다 큰 전략적 목표를 달성해서 전투에 힘겹게 승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전투가 연결된 10년간의 지속가능성의 전쟁에서 지는 게임에 몰입해있다.
한 韓 (The Great)에다 클 대자를 붙여서 만든 "대한"민국은 공동의 목적인 공의를 세워 위대함을 지향하는 나라이다. 이 공의를 실현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나 왕이나 권력자가만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민초 백성들의 한(恨)도 해결된 나라였다. 민초 백성은 왕, 기득권, 권력자처럼 잘난 부모와 조상의 유전자 복권의 혜택에서 배제된 불행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일반 백성은 국가에서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의란 이들이 유전자 복권을 받지 못해 평생을 고통받고 살아야하는 한을 해결해서 이들 불행한 사람도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를 추동하는 두 축은 한(恨)과 한(韓)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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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한산영화를 보기 위해 동네 롯데시네마에 상연시간보다 일찍 입장했는데 그 시간 내내 고통스런 광고폭력에 시달렸다. 영화관에 입장한 사람들을 가두리 양식장 물고기처럼 생각해 일방적 광고폭탄을 투척하는 행위는 상술을 넘어 견디기 힘든 갑질이었다. 제품의 질을 위한 R&D에 투자해야 할 천문학적 비용을 비싼 연애인들을 동원해 광고에 쏟아붓는 기업들은 이 시대의 ESG 지향점이나 한산 영화가 의미하는 공의로움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 유사기업들이다. 롯테시네마에 광고를 쏟아부어 관람객을 고통으로 내몬 회사제품과 여기에 겹치기로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드라마를 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런 상술의 장본인 롯데시네마도 가급적 가지 않을 예정이다. 광고폭력을 고발하는 소비자 행동주의에 동참하시려면 우선 롯데 시네마에서 한산 영화를 관람할 때 절대로 일찍 입장시지 말기를 제안합니다. 기회가 날 때마다 롯데 측에 광고를 자재해달라는 청원도 부탁드립니다. 서너개의 공익광고는 반드시 끼워달라고 부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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