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5-05 17:59
[N.Learning] 개인적인 것이 독창적이다 독창과 독선의 경계
 글쓴이 : Administra…
조회 : 2,853  

개인적인 것이 독창적이다
독창과 독선의 경계

봉감독이 아카데미상에서 자신과 같이 감독상 후보에 오른 스콜세지에게서 배웠다고 인용한 말이다. 유명 영화평론가가 21인 거장 감독의 영화관을 분석해서 쓴 책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 75쪽을 보면 다음과 같은 스콜세지 감독의 인터뷰 내용이 나온다.

[나는 더 개인적인 영화, 즉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주제와 소재로 감독이 더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유행하던 1960년대 초반 영화를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이런 종류의 영화가 번창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주류 영화에서 그런 흐름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는 독립 영화도 멜로 드라마나 필름누아르에 기우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독립 영화감독도 영화의 상업적인 측면에 눈을 더 맞추는 것이다. 요즘 저예산 영화를 보면, 감독들이 영화사를 상대로 오디션에 나선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영화가 반드시 개인적이어야 하는가?" 글쎄, 물론 이것은 순전히 견해의 문제다. 하지만 나는 영화의 관점이 명확하고 개인적일수록 그 영화의 예술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영화의 주관이 뚜렷할수록 더 오래 살아남는 것을 나는 관객으로서 목격해 왔다. 그런 영화는 계속해서 다시 볼 수 있지만, 그보다 상업적인 영화는 두 번 보면 질린다.]

스콜세지 감독이 주장하는 개인성과 독창성은 일상적 삶에서 개인들이 빠지기 쉬운 독선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일 것이다. 모든 개인적인 것이 저절로 독창적이 될 수는 없다. 내 눈에는 개인성을 주장하는 사람의 90%는 독선적이고 오직 10%정도에 해당되는 사람들만 독창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이 10% 사람들에 고무되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무조건적인 개인화를 주장한다면 일반화의 오류(representative heuristic error)에 빠진다. 마치 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학을 나오지 않고 사법시험에 패스하고 대통령까지 된 것에 고무받아서 대학을 다니는 자식들을 자퇴를 시키고 집에서 공부를 시켜 사법시험을 준비시키는 부모가 있다면 같은 오류에 빠진 것이다.

독창적인 것을 독선적인 것으로부터 구별할 때 자주 인용되는 비유가 거미이다. 거미는 자신이 만든 거미집 속에서는 누가보기에도 독창적으로 보이는 독보적 삶을 산다. 이 거미집에 걸려들기만 한다면 누구든 거미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거미는 자신이 만든 편협한 거미집을 벗어나서는 한치의 세상도 보지 못한다. 거미가 거주하는 논리적 가정인 거미집을 흔드는 순간 거미는 날개없이 추락한다. 사람들은 거미의 삶을 사는 사람을 독창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독선적이라고 칭한다. 사이코패스로서 독보적 삶을 사는 사람의 다른 카피를 세상에서 발견할 수 없다고 해서 이 사이코패스의 삶을 독창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거미집에 사는 사이코패스가 보여주는 개별성은 독선일일 뿐이다.

독선과 독창의 경계는 무엇인가?

첫째는 생뚱맞지 않음이다. 독창적이지 않거나 독선적인 것들은 항상 생뚱맞다. 생뚱맞음은 맥락적 연관성을 벗어났을 때 생긴다. 다른 독창적으로 존재하는 것과의 연결성이 맥락적 연관성이다. 어떤 영화가 삶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독창적이자 최고의 수월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다른 최고를 지향하고 진실을 지향하고 있는 존재들과 연관성이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준거로 삼고 있는 상태가 맥락적 연관성이다. 자신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서로 존경받고 이들의 철학과도 교류할 수 있는 맥락을 공유하고 있는지이다. 인간은 시간여행자여서 삶이 현재, 과거 미래를 연결시키는 뿌리를 가지고 있을 때 생뚱맞음을 벗어나 자연스러운 독창성이 드러난다. 미래에만 지나치게 기대고 있는 공상과학영화나 과거에만 기대는 멜로나 지나치게 현실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화들은 다 맥락성을 상실한 생뚱맞은 영화들이다. 세상이 부자연스럽게 단절시켜놓은 이원론적 정치주장을 연결시켜 맥락을 만들고 이 맥락에 기반해 자신의 독창성을 주장하는 영화가 제대로 된 독창성을 주장하는 영화다. 한 마디로 편견의 거미집을 벗어나 독창적인 삶을 추구하는 다른 고수들이 서로를 인용할 때 맥락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는 이 맥락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이것을 넘어선 개인적 초월성으로 세상의 지평을 확장할 때 독창적이 된다.

초월성은 상황과 맥락의 감옥에 갇혀사는 인간들에게 영화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더 높은 수준의 개인적 정체성을 발견하게 하는 초월과 변화의 체험을 선사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재력과 권세는 충분히 있지만 이런 체험과 초월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최고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찾아 나서는 것이 명품과 과시소비다. 명품으로 치장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이 명품이라는 공산품 속에서 가두어 자신을 개인이 아닌 보통명사로 만든다. 명품의 문제는 정체성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허구적 정체성을 강요하는 형태다. 정체성을 찾는 체험을 제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체성을 마비시키는 주사를 맞는 경험을 선사한다. 기생충에서도 부유한 상류층 가정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개별적으로 주장하지 못하고 명품 속에 가두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 자신을 차별화하지 못하자 냄새까지 동원해서 동물적 수준에서 다른 범주 사람들과 차별화하려 시도한다. 초월성은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의 옷을 입는 행위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의 제약을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개인적으로 찾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정체성을 개인이 찾아나설 때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예술성에 도달한다. 이런 개인적 초월성을 체험하게 하는 영화가 스콜세지 감독이 주장하는 독창적 영화일 것이다.

이원론적 분절이 만든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이들을 연결시켜 만든 사회적 맥락에 발을 딪고 자신 개인의 차별성으로 기여하는 사람들을 사회학자 에밀 듈껭 Emile Durkheim은 윤리적 개인주의자 moral individualist이라고 칭했다. 21세기 창의성과 독창성은 한때 연극계의 대부였던 이윤택이나 노벨상 후보였던 고은시인이 아닌 봉준호 감독처럼 이 윤리적 개인주의의 원리를 이해한 사람들만이 향유한다.

봉감독의 아카데미 입성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봉감독이 대한민국이 제조기술강국을 넘어서 문화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김구선생의 유지를 실현시킬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미지: 사람 8명, 황성환님 포함, 웃고 있음, 사람들이 서 있음, 결혼식, 정장

이름 패스워드 비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