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5-17 07:18
[N.Learning] 눈물로 눈을 닦으니 세상이 보였다
 글쓴이 : Administra…
조회 : 2,172  
눈물로 눈 닦으니 세상이 보였다.
고객만족을 넘어서라
눈물로 닦은 눈으로 세상의 문제를 보기 시작할 때 문제의 원인은 그 정체를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눈물로 닦아낸 눈은 긍휼감으로 세상을 통찰한 눈을 의미한다. 이 긍휼로 닦은 눈은 세상을 더 멀리 더 깊이 더 근원적으로 보게 한다.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날수록 문제를 더 혁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도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표출적 감정으로 소모하지만 진정으로 혁신적인 사람들은 눈물을 긍휼감 compassion의 정서로 승화시켜 눈을 닦아낸다. 이들은 긍휼감으로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인문적 문제해결력을 만들어낸다. 왜 그럴까?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결과다. 긍휼감은 이 고통의 원인을 찾아서 문제를 행동으로 해결하려는 문제해결능력이다. 긍휼감이 없는 우리는 돌봄 받지 못한 고통이 문제로 터져 나오면,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문제가 밖으로 드러난 ‘결과’를 봉합하려고 시도한다. 고통은 나쁜 것이니 일단 문제를 덮고 시작한다. 고통을 감추니 근원적 해결이 불가능하고 계속 반복된다. 화제가 계속 발생하는데 화제의 원인을 고치지 않고 불이 날 때마다 소방수가 되어 불을 끄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긍휼감은 디자인 사고에서 주장하는 ‘공감empathy’과는 다르다. 공감은 상대의 마음을 인지적이자 정서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다. 슬픈 드라마를 눈물이 나고, 코미디를 보면 마음껏 웃는 것, 그게 공감능력이다. 이렇게 흘리는 눈물은 자신 감정을 정화시키는 카타르시스일 뿐이다. 이런 공감의 감정을 광고나 마케팅에서 고객을 정서적으로 잡기 위해 이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공감능력만 뛰어난 사람은 광고나 마케팅의 타깃이 된다. 공감은 상대의 고통을 이해하는 시작점이 되어도 고통의 뿌리를 이해하고 이것을 행동으로 해결해주는 능력은 아니다. 공감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는 곪아터진 상처 부위에 붕대를 감아주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식의 처방이다.
긍휼감은 상대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긍휼감으로 눈을 닦은 사람들은 고객만족이란 객관적이고 삼인칭화된 위선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긍휼감으로 문제의 근원을 들여다본다. 이들이 세상을 혁신적인 방법으로 바꿀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은 고통의 뿌리를 보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정의하는 탁월한 통찰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눈물로 닦아낸 눈으로 고객의 아픔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기업은 어떤 문제이든 문제가 정의되기만 하면 이를 가장 체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역량을 보유한 집단이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고통을 뿌리의 수준에서 이해해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비즈니스로 연결시키는 개념화 능력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 수준에서, 즉 문제의 뿌리를 이해하는 기업들만이 초연결시대에 사회적 혁신을 선도할 수 있다. 긍휼감이 부족한 경영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기업들은 고객이 경험하고 있는 고통의 근원을 발견하지 못하고 고객만족이라는 반창고 수준의 처방으로 고객의 마음을 한번도 사로잡지 못한다.
지금까지 세상의 지형을 바꾼 혁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눈물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천박하게 돈만 추구하는 광고 마케팅 기업들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랫폼 비즈니스를 시작한 구글, 서버에 대한 무한독점권으로 횡포를 부리던 기업들에게 고통받던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클라우드의 새 표준을 설정한 아마존, 자유로운 소통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만든 애플, 기본 의료보험도 없이 여러 개의 파트타임 일자리를 전전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본 스타벅스, 발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 없이 최고의 편안함과 균형을 누리게 해준 뉴발란스, GMO 등 변형된 농산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유기농 농산물을 선별해 판매하는 홀푸드마켓, 뛰어난 아이디어는 있지만 이를 실현시킬 비즈니스 모델이나 자금이 없는 사람들에게 창업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피치북데이터, 친환경생활을 널리 보급하고 지속가능한 삶의 체험을 파는 유니레버, 고통받는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자사 제품을 사지 말라고 광고하는 파타고니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이 뛰어난 사업적 통찰력을 보인 것은, 모든 문제를 고통의 뿌리 수준에서 이해하고 개념화하고 행동으로 풀어낸 긍휼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긍휼감은 근원적 변화를 이끌 미래 사업을 찾아낼 수 있는 특수 안경인 셈이다.
현실은 빅데이터의 홍수가 만들어 놓은 두꺼운 토사 밑에 인간의 근원적 고통이 점점 가라앉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통을 뿌리부터 이해해 미래 비즈니스로 개념화시키는 능력은 긍휼감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인간의 심연에 흐르는 고통은, 마케팅이 주장하듯이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소비자 조사를 하거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잡히는 대상이 아니다. 디지털 혁명과 초연결시대로의 변화는 사명감과 긍휼감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사회적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긍휼의 눈물로 본 세상을 보는 사람들만 문제의 근원적 원인을 이해해서 혁신적으로 해결하고 이를 통해 근원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경영이란 긍휼로 고객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를 혁신적으로 해결하기 고객의 손을 잡고 나오는 행동이다. 긍휼로 경영하는 경영자들은 고객만족이라는 싸구려 공감(Empathy) 감정으로 호소하는 경영자들과 거리를 둔다.
이창준, 손가연, 외 5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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