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이 성공을 예측할 수 있을까?
Yes and No
기사는 학벌과 직무 능력과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결과를 선택적으로 인용하고 있는데 이들 연구가 제대로 된 변수를 통제하고 낸 연구결과로 보기는 힘들어서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기에는 신뢰성이나 타당성이 의심이 간다. 실제로 구글 스칼라 서치만 해도 학벌이 성공에 중요하다는 연구결과와 부정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반반이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에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제대로 된 염격한 기준을 통과한 연구결과를 종합해볼 때 업무성과와 지속가능한 성공을 가장 잘 예측해주는 두 변수는 자기효능감(Self Efficacy)과 동원가능한 사회적 자본인 네트워크의 다양성이라는 변수다.
자기효능감은 어떤 임무를 맡겼을 때 그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기 믿음이다. 문제는 자기효능감이 과거의 성공경험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과거의 성공경험을 통제하고 어떤 요인이 자기효능감을 높이는지에 대해 연구가 핵심이다. 학벌과 학점도 과거의 성공경험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기 때문에 자기효능감을 키우는 변수로 작동한다. 하지만 신문기사에도 지적한 바와 같이 한시적이다. 학벌과 성적은 자기효능감을 키우기보다는 자기효능감을 부풀려 "유사 자기효능감"을 만들어내는 요소이다.
자기효능감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과거의 성공이 아니다. 학벌과 성적으로 일컬어지는 과거의 성공은 세월이 흘러 세상이 변화하면 자기효능감의 단단한 바위같은 자만심으로 자라나 세상과 결별하게 만든다.
자기효능감을 고유하게 가장 크게 키우는 변수는 자긍심(Self Esteem)이다. 자기자신을 주체적으로 사랑하고 있는지가 자긍심의 핵심이다. 자신을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자신을 주체적으로 일으켜 세우고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이들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심도 있는 노력을 경주한다. 이런 자긍심을 통해 여러 프로젝트에 자신을 주체적으로 일으켜 몰입하게 되어 근력이 형성된 것이 자기효능감이 된다. 이런 점에서 학자들은 둘을 붙여서 "자긍심 기반의 자기효능감(Self Esteem Based Self Efficacy)이라고 쓰기도 한다.
자긍심은 학벌이나 과거의 성공경험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에 고유하게 기여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존재목적을 각성하고 이 존재목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해 삶의 여정에 대한 자신만의 나침반을 발견하고 미래에 대한 주체적 여행자가 될 때 세워진다. 진성리더십에서는 이것을 진성(True North; True Character; True Purpose)라고 칭한다.
지속가능한 직장인들의 성공을 가장 잘 예측해주는 두 번째 변수는 동원가능한 네트워크의 다양성이다. 직장인이 성공했는지 못했는지의 최종판단은 더 이상 직장인으로 개입할 수 없는 정년퇴임하는 순간에만 제대로 판정될 수 있다. 직장생활을 처음시작해서 정년퇴임할 때까지 자신의 개입을 통해 만들어낸 긍정적 기울기가 지속가능한 성공이다. 개입이 끝나는 순간 본인이 이 직장을 다녀갔기 때문에 더 일하기 좋은 일터가 되었다는 고백을 후배들에게 찬사로 들을 수 있는지의 문제다. 들을 뿐 아니라 정년 퇴임해 있음에도 종종 후배들이 찾아와 점심을 사줘가며 선배의 통찰력을 배워가며 자신 직장생활의 씨줄을 엮어갈 날줄로 사용할 수 있다면 성공한 직장인의 삶을 종결한 것이다.
동원가능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다양성을 혈연, 지연, 학연과 동일시하는 것이 직장인으로 성공하는 것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키웠다. 혈연, 지연, 학연. 성별, 세대 등으로 자신의 삶을 엮어가며 이들의 도움으로 성공을 구가하는데 맛을 들린 사람들은 이들과의 인연으로 핵인싸가 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는 미신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들의 도움으로 초기에 성공을 맛볼 수 있는지 모르지만 핵인싸가 되어 이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삶은 이들의 삶을 극도로 보수화 시켜 변해가는 세상에 구조적 관성으로 작용한다. 이들 삶의 결론은 미래를 대변하는 청년들에게 집중적으로 욕얻어 먹는 사람이다. 학연, 지연, 혈연의 마력에 빠져 이것들 때문에 생긴 네트워크가 끊여진 것을 말하는 구조적 구멍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네트워크의 연결이 끊어진 구조적 구멍을 이용해 브로커 역할로 성공을 구사했지만 이들이 이용한 구조적 구멍이 변화에 저항하는 관성을 만드는 본질이 된다.
네트워크의 다양성이란 이런 혈연, 지연, 학연, 같은 성별연, 세대연 등이 만들어낸 구조적 구멍을 찾아서 연결이 확장되어가고 학연, 지연, 혈연 때문에 끝어진 연결이 복원된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학연, 지연, 혈연에 기대어 성공하는 사람들의 성공은 최대로 잡아야 40대까지다. 혈연, 지연, 학연은 우월한 부모를 만나서 누렸던 부모의 유전자가 준 성공이지 자신이 독자적으로 만든 성공은 아니다.
부모의 유전자 물이 빠지는 40대가 되면 이들은 혈연, 지연, 학연 네트워크를 이용한 자신의 성공으로 건물주가 되어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를 받아서 연명하는 극보수층으로 전락한다. 의사, 변호사, 검사, 판사, 회계사, 약사 등등 사자가 붙은 대부분 직업의 자격증은 이들이 평생 임대료를 받는 건물이다. 이들이 건물주로 임대료를 받아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겠다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들의 성공은 여기까지다.
이들 중에도 성공하는 사람들은 혈연, 지연, 학연 등 부모의 유전자 복권을 타서 만든 네트워크를 확장해서 시대를 대변하는 다웟들의 네트워크와 연결에 성공해서 네트워크의 다양성을 구축한 사람들이다. 초연결사회는 말그대로 연결에 능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다. 21세기 초연결사회에서의 성공은 네트워크에 갇혀사는 삶을 벗어나 네트워크의 끊어진 구멍들을 찾아 연결하는 사람들에게서 향유된다. 자신의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탈피해서 연결과 확장에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상에 대한 개입이 끝나는 순간이 죽음이후에도 세상에 족적을 남긴 성공한 사람으로 회자된다.
정리하면 지속가능한 성공의 본질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긍심에 기반해 효능감의 잔고를 만들고 있는지와 자기효능감을 키워나갈 수 있는 토양에 해당되는 네트워크의 다양성을 공진화 시킬 수 있는지이다.
학벌이 성공을 예측할 수 있는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예스이기도 하고 노이기도 하다. 학벌을 신이 주신 은혜로운 수단으로 삼아 자기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이 사랑을 키우는 열린 네트워크의 토양을 만드는데 성공하면 답은 예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벌의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해 초보수라는 기득권의 건물주가 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자신의 가족, 친지, 주변에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스스로 다양한 열린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고유한 철학이 없다면 혈연, 지연, 학연이 얽힌 사람을 빼고 우리가 제안한 자신의 열린 네트워크에 맴버로 가입해줄 사람은 없다. 멀리서도 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찾아와 열린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사람들이 진정 성공한 사람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