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은 넘치지만 방향성을 상실한 난파 직전의 배
사공은 넘치지만 방향성을 상실한 난파 직전의 배
요즈음 기득권 진보에 대해 드는 생각

최근 격화되고 있는 진보 논쟁은, 주인론, 재건축론, 리모델링론 등의 정쟁은 그 장대해 보이는 수사(修辭)와 달리, 본질은 진보의 패권을 장악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지분과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제로섬 프레임의 이익결사체 동학이 엿보인다. 이런 맹주 논쟁을 벌여 이겼을 때 이긴 자들이 도달한 종착역은 결사적으로 보내는 조난 신고일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 생태계가 정치의 본질을 상실하고 탈개인화된 정치가들의 각개전투로 쪼개지는 조짐의 구태가 진보 세력 사이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유시민과 민주당 당권파 사이에 벌어지는 진보 담론의 허구성은 자신이 주인이라는 권리의식만 비대하게 부풀려져 있을 뿐, 정작 집단이 하나의 운명으로 버텨내야 할 ‘공유된 책임의식(Shared Responsibility)’이 부도난 데서 기인한다. 등장할 때부터 내노남불과 꼬리 자르기를 일삼던 국민의힘의 배가 메이데이를 부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진보와 민주당 세력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국민의 힘의 파산은 보수가 약속한 국민에 대한 공유된 책임을 스스로 파산낸 결과다. 공유된 책임은 고사하고 정치가로서 자신들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조차도 국민들에게 떠 넘긴 결과다. 이런 명료한 비극을 목전에서 직접 생생하게 지켜봤음에도 공유된 책임의 잔고를 부도내고 국가의 미래를 침몰시키는 난파선으로 전락하는 조짐을 기득권 진보 진영에서도 똑 같이 목격하게 되는 것은 더 큰 충격이다.
우리 연구 팀(Lawler, Thye, Yoon)은 3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조직, 팀, 사회가 공유된 책임(Shared Responsibility )을 파산내고 난파선으로 전락하는 원리를 연구해왔다. 관계적 응집이론(Relational Cohesion Theory)에서 시작해 더 발전된 ‘공유된 책임의 정서 이론(Affect Theory of Shared Responsibility)’으로 발전시킨 우리 연구의 핵심은 어려운 상황을 상호주관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공유된 책임을 어떻게 확보하는지의 문제를 다룬다. 집단, 조직, 사회가 어렵고 급박한 상황에서도 메이데이를 요청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는 공유된 책임(Shared Responsibility)의 잔고가 결정한다. 우리는 이런 공유된 책임을 윤리 의식이라는 외생변수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팀과 조직과 사회가 어떤 조건에서 이런 공유된 책임이라는 건강한 자산을 획득하여 극단적 불활실성 속에서도 지속가능성을 담보해가며 배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항해시킬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연구했다.
공유된 책임의식(Shared Responsibility)은 단순한 도덕적 선언이 아니라 특정한 구조적 조건 아래에서 훈련된 협업의 규율을 오랫동안 그리고 지속적으로 행사했을 때 획득할 수 있는 집단자산이다. 집단, 사회, 정치결사체의 구성원이 책임을 공유한다는 것은 조직, 집단, 사회가 생존을 넘어 지속가능성과 공의로운 번성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번성자본이다.
공유된 책임이 발생하는 구조적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협력(Cooperation)과 협업(Collaboration)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협동’은 각자의 사적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해 서로 돕는 정치 행위이자 제로섬 게임이다.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므로 거래비용과 과정손실이 치솟고, 자신의 이득이 보장되지 않으면 언제든 파기되는 취약한 계약 관계다. 반면 ‘협업’은 개인의 이득을 넘어서는 공동의 목적과 사명이라는 제3의 끌개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매개로 하여, 참여자들이 공동의 파트너이자 주인으로 자신과 서로의 행위에 대한 지원군으로 나서는 플러스섬(Plus-Sum) 행동이다. 협업이 성공적으로 실현될 때, 신뢰와 화합, 우리가 원하는 공유된 자산이라는 집단의 관계적 정서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공유된 책임의 정서 이론(Affect Theory of Shared Responsibility)>은 왜 협동 관계에 머문 팀이 무너지고, 반대로 협업을 이룬 팀이 강력한 책임의식을 공유하는가를 분석한다. 협업을 성공시키는 핵심 선행조건은 ‘과제의 상호의존성(Task Jointness)’과 ‘공동운명 지각(Perceived Common Fate)’이다. 과제의 완성을 서로에게 떠넘길 수 없도록 역할과 R&R을 촘촘히 설계하고 구성원 중 불의의 사고로 이 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겼을 때 이들이 맏았던 책무를 다른 구성원이 대신 수행하게 함을 통해 책무의 중복성을 확보하는 일과, 일이 예측한 결과처럼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전개될 때 당장 눈앞의 손익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짊어져야 할 책이을 절대적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운명체 의식이 작동해야, 집단은 비로소 융합하여 공유된 책임의식이라는 부력을 만들어낸다. 이런 공유된 책임의식이라는 번성자본을 가진 팀, 조직, 사회는 프로세스에서 생기는 손실도 적고, 구성원들 사이를 결속해주는 감사, 고양, 긍휼, 자부심, 헌신도 넘친다. 이들 집단이 극단적 어려움 속에서도 공동운명체인 배를 난파시키지 않고 후세에게 넘겨줄 수 있는 이유다.
현재 기득권 진보세력을 이끄는 유시민 계를 비롯한 각 파벌 세력이 벌이는 주도권 싸움은 이 두 가지 선행조건이 완전히 고갈되었음을 증명한다. 기득권 진보는 공의로운 존재목적과 공공선에 대한 서약을 매개로 한 협업을 실종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것과 공동의 운명이 충돌할 때, 공의를 향해 목적함수를 전환하는 능력이 고갈되니 당은 철저히 이들 맹주들을 중심으로 사일로화되고 정치적 시장으로 전락했다. 진보의 주인을 자처하는 자들은 차고 넘치나, 정작 배가 침몰할 때 공동으로 책임을 지려는 긍휼의 정서와 공유된 책임의식은 소실되었다. 진보의 주인이자 맹주라고 주장하던 사공들이 동상이몽을 하며 책임을 떠넘기다 배를 침몰시킨 기득권 보수의 운명을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처럼 배를 운용한다면 진보 역시 장렬하게 침몰해가는 극우파 보수의 난파선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일베를 비롯한 극우 세력이 광주민주화운동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희화화하는 현상의 이면에는 기득 진보 세력이 보여준 진정성 없는 허구성이 이들에게 약점이자 약한 고리로 노출된 결과다. 일베가 겨냥하는 표면적 대상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진정성 있었던 노무현이라는 정치 지도자와 광주의 숭고한 정신이지만, 실제 직접적인 동기는 이들을 계승했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유시민과 진보 패권 세력이 벌이는 추악한 밥그릇 싸움에 진정성이라고는 일말도 찾아볼 수 없음에 대한 조소와 희화화다. 윤리와 상식을 벗어나 조소의 먹잇감이 생기면 벌떼처럼 몰려드는 일베들에게 빌미를 준 장본인들이 유시민 세력과 진보 주권파들이다. 가장 거룩한 자산을 기득권 수호의 방패막이로 삼아 구성원과 국민을 가스라이팅하는 기득권 진보세력의 ‘진정성 부재’가 역풍을 불러와, 노무현의 정신과 광주의 상처를 일베층에게 난도질하는 직접적 동기를 제공한 것이다. 기각막히게 상처가 썩어나가는 냄새를 찾아내는 일베에게는 이들이 가장 약한 고리이자 부패하는 상처로 노출된 것이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진정한 사명이 사라진 자리에 풀 수 없도록 꼬인 탐욕의 뫼비우스 띠가 스스로 진보의 맹주임을 주장하는 세력이 처할 운명으로 보인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자기 논리를 앞세워 자기 정치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들의 소모전은 그나마 검찰공화국 총수를 몰아내며 얻었던 국민들의 집단적 효능감조차 고갈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상식을 추구하는 국민들은 보수나 진보 그놈이 그놈이라는 생각을 굳히고 결국 정치에서 멀어질 것이다. 상식을 철저히 지키며 사는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추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와 정치의 목적이라는 신성한 나침반의 떨림을 복원하지 못하고, 지금 보이는 행태처럼 각자도생의 토굴 속에서 맹주 권리만 주장하는 주인들이 넘쳐나는 한, 진보 세력의 배는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침몰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너진 공의의 성벽을 다시 세우기 위해, 탐욕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좁은 문으로 걸어 들어가 직접 진보의 땀을 흘리는 석공들의 일인칭 서사다. 지금처럼 허구가 넘치는 세상에서는 일 그램에 해당하는 존재이유에 대한 진정성이 만 톤으로 꾸마 거짓 진보의 무게를 이긴다.
하루하루의 생계 챙기기에도 지친 국민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이런 이원론적 논리를 앞세워 과거의 동지들을 현란하게 제압하는 386/486 진보 식자들의 시끄러운 소음이 아니다. 이런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진보 맹주 논쟁을 벌리는 유사진보 패거리가 아니라 진정성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고 노무형 대통령과 같은 진짜 진보 정치인를 그리워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