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7-03 14:46
[N.Learning] 유리컵에 갇혀사는 벼룩 이야기 직장생활과 유리천장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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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컵에 갇혀사는 벼룩 이야기
직장생활과 유리천장
뛰어난 경영자들은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홀연히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풀리지 않는 문제 즉 아포리아에 대한 최고의 처방이다. 신기하게도 이들은 여행을 통해서 의식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시도하지 않았음에도 여행에서 돌아오면 문제가 말끔하게 풀려 있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정신모형의 상자 안에서 문제를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여행을 통해 정신모형이라는 상자 밖에서 문제를 보는 통찰을 체험한 것이다. 자신의 정신모형이라는 감옥 속에 갇혀서 밖의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통찰하지 못하고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를 풀려고 시도한 것이다. 우리가 풀기를 고민하는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는 상자 밖에서 보면 우수울 정도로 아주 단순한 문제다. 상자 안에서 문제를 보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 코끼리임을 추론하는 상황이라면 상자 밖에서 문제를 보는 것은 그냥 온전한 눈으로 코끼리를 보는 것이다.
요즈음은 리더분들과 조직의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일과 조직의 경쟁우위를 달성하기 위한 일 사이의 태피스트리를 직조하면 누릴 수 있는 기적적 변화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경쟁우위는 단기적 성과를 통해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준다. 존재우위는 단기적 성과를 왜 우리를 통해 달성되어야하는지를 이유를 실현함을 통해 미래의 번성의 문제를 해결해준다. 지속가능성이란 현재 생존의 문제와 미래 번성의 문제를 연결시켜 한 몫에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문제를 하나씩 양자택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합일로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태피스트리를 짠다는 것의 의미는 경쟁우위를 날줄로 삼고 존재우위를 씨줄로 삼아 자신만의 비즈니스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리더분들은 자신들의 회사는 철학, 사명, 존재목적 자체가 없다고 고백한다. 이런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날줄만 존재하고 씨줄이 없기 때문에 태피스트리를 만들 수 없다고 항변한다. 회사가 존재목적에 대한 철학이나 생각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은 경쟁우위와 단기적 성과에 올인하는 쳇바퀴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자조적으로 한탄한다.
이런 자조적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이라면 리더로 설 수 있는 기회가 더 무궁무진하다고 설득한다. 설사 회사는 오래전에 철학과 사명과 존재목적을 잃고 상자 속에서 경쟁우위를 위해 쳇바퀴 돌리듯 종업원들을 돌리더라도 개인 차원에서 암묵적으로 존재우의를 실현시키는 것을 금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설사 회사의 사명과 목적이 죽어 있어도 개인적으로 왜 이런 단기적 성과를 내야하는지를 찾아서 자신을 납득시키고 이 설명에 따라 자신만의 존재목적을 설정하고 이 존재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단기적 성과를 연동시키는 것을 회사가 나서서 막을 방법이 없다. 자신이 상자 속에 갇혀 있다는 자조적 운명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시도를 안할 뿐이다. 회사에 공식적인 사명과 존재목적이 죽어 있다하더라도 본인이 찾아낸 회사의 존재목적을 자신 회사생활의 최종적인 종속변수로 설정하고 이 종속변수를 달성하기 위해 단기적 성과 목표나 주어진 가용 자원을 독립변수로 동원해 궁극적 목적의 수준에서 전체 최적화 시키는 의사결정과 자신만의 일하는 방식을 시도해도 회사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벼룩을 유리컵에 가둬놓고 유리컵 높이 만큼 뛰게 훈련시키면 컵을 벗겨도 유리컵의 높이만큼 밖에 뛰지 못한다. 조직의 사명과 목적은 없고 생존을 위해 단기적 성과만을 경주해왔던 회사의 종업원들은 개인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의 사명과 목적을 설정할 수 있음에도 길들여진 벼룩이 되어 이 일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사명이나 목적이 죽어 있거나 혹은 있어도 플라스틱 사명이나 목적으로 전환되어 있어서 회사의 대부분 동료가 컵에 갇힌 벼룩의 삶에 고착되어 있을 때에도 암묵적으로라도 자신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목적과 사명을 최종적 회사생활의 최종변수로 설정하고 목적의 수준에서 최적화시키는 방식으로 조용히 일을 한다면 어느 시점에서 이 사람이 내는 성과를 다른 사람들이 흉네낼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해질 것이다.
회사의 목적이나 사명이 죽어 있음을 이유로 제시하는 것은 자신이 유리컵으로 훈련된 벼룩의 삶을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잘못된 믿음에 갇혀서 이 박스에서 나오기 싫음에 대해 자기변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동료가 이런 삶에서 고착되어 있을 때 경쟁우위와 존재우위를 직조하는 삶의 의미를 깨달고 이것을 실현시키는 자신만의 고유한 직장생활에 매진한다면 이 사람은 CEO급의 리더일 것이다.
여성리더에게 적용되는 유리천장 문제도 본질은 같다. 여성리더가 유리천장을 인정하고 조직을 핑게대가며 길들여진 벼룩으로 사는지 다른 여성들은 모두 벼룩의 삶을 선택해도 자신만은 자신의 존재우위를 위한 삶의 목적함수를 가지고 다시 뛰어보기로 결단을 내릴 수 있는지의 문제다.
동료남성과 동료여성이 모두 박스 속에 갇힌 삶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진성리더들에게는 엄청난 기회인 것이다.
평생 유리컵 속에서 벼룩으로 사는 삶을 살 것인가?
박스에서 탈출을 시도해 볼 것인가?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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