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전략> 대 <특이점 전략>
삼성전자의 반성문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고대역폭메모리 개발과 미국 테일러 파운트리(반도체 수탁생산)에 천문학적 돈을 써야 하는 삼성전자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현금 보유고와 점점 기대에 못 미치는 영업이익은 채권시장에서 삼성전자 부도설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이런 우려가 반영되어 주가는 저점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인 삼성의 기업가치가 끝없이 하락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5월 구원투수로 투입된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부회장)은 이런 실적 부진에 대해 본인 명의로 메시지를 내고 “송구하다”고 말했다. 전 부회장은 입장문에서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 재건 등 재도약 방안을 제시했다.
언론은 전 부회장의 발표문을 <삼성전자의 반성문>이라고 이름을 붙여 대서특필하고 있다. 반성문이라는 언론의 프래이밍 이면에는 삼성전자가 지금보다 더 근원적으로 각성해야 한다는 채찍질이 담겼다.
삼성전자가 이런 반성문까지 쓰게 된 직접적 계기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반도체 ‘빅3’ 중 명색이 1위인 삼성만 반도체 사업의 가장 첨단 제품인 4.5세대 고대역폭메모리 HBM3E를 디지털 시대의 쇄빙선인 엔비디아에 납품하지 못한 사건에서 파생했다. 메모리반도체 중 가장 수익성이 높은 HBM3E는 대부분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가속기에 들어간다. 지금의 형국은 TSMC 같은 막강한 경쟁자들이 삼성전자가 외쳤던 초격차를 카피해서 삼성전자가 디지털 AGI 시대의 주력상품을 놓치고 길을 잃고 헤매는 틈을 타 삼성전자를 넘어서고 있다.
본인은 삼성전자의 실패의 근원적 원인은 권오현 회장이 썼다는 <초격차 전략>의 실패로 본다. 초격차 전략은 기술이 고도화되고 점점 민주화 되는 시대에 전략이라기 보다는 경기가 무한으로 성장하고 있을 때의 경쟁과 시장에 초점을 둔 신자유주의 전략이다. 지금처럼 L자 불경기가 뉴노멀로 작동되고 고도 기술이 민주화되고 있는 초연결 디지털 플랫폼 혁명시대에 혼자 달아나겠다는 전략은 위험천만한 전략이었다.
초연결 디지털 플랫폼 시대는 고도기술이 민주화되는 시대여서 기술의 고도화는 경쟁력의 변수라기보다는 그냥 상수인 시대이다. 초뷰카 디지털 시대에 기술에 우위를 가진 초일류 회사들은 기술을 자랑하지 않는다. 기술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진정한 기술로 인정된다는 것을 초일류 기업들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기술의 초격차를 달성해도 생태계나 공급망에서 이것을 표준으로 채용하지 않으면 그간에 모든 투자는 물거품으로 변화해서 기술의 갈라파고스가 된다. 2000년대 초반 기술우위에 빠져 있던 일본기업이 자신의 기술이 왜 표준이 되어야 하는지를 세계 기업 생태계에 설파하지 못해 갈라파고스가 되어 대부분 사라졌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 디지털 플랫폼 시대 기술적 표준을 설득하지 못한 삼성의 초격차 전략은 삼성전자를 갈라파고스로 만든다.
삼성전자가 디지털 AI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런 고도화된 기술을 이용해 삼성전자가 왜 초뷰카시대 대체불가능한 회사가 될 수 밖에 없는 지를 약속하고 이 약속을 기업의 목적으로 실현하는 존재우위의 씨줄을 찾아서 기술을 날줄로 시대에 맞는 기업의 목적을 씨줄로 경영의 근원적 변화를 제시했어야 했다. 오래 전부터 신자유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을 각성하고 기술적 초격차가 아니라 초협업전략을 구사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삼성이 추구했던 전략은 소위 초일류라는 회사들의 기술과 전략을 따라잡는 전략이었다. 초격차전략은 따라잡기가 끝나 기술적으로 더 이상 따라 잡을 수 있는 대상이 없는 상황과 중국 대만의 후발 주자들이 자신을 맹렬히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삼성이 고심해 만든 전략으로 보인다. 따라오는 회사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 정도로 멀리 달아나는 전략이 <초격차> 전략이다. 결국 따라 오는 회사들이 지쳐서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달아나면 살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전략으로 정한 것이다.
초격차전략은 경쟁에 승리함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던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작동되었는지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L자 불경기가 심화되는 초연결 디지털 혁명 시대에 미래전략으로는 많은 위험과 한계을 내포하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통찰하지 못한 기업이 자신이 선두에 선 기술만 고수해가며 초격차로 달아난다고 시대적 변화의 방향과 공진화해서 울림을 창출하지 않는다. 특히 지금과 같은 플랫폼 협업에 근거한 공진화 시대에 기술적 초격차를 자신들의 미래의 전략으로 신봉한다면 그 위험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첫째, 초연결 디지털 시대는 기술적 포화 수준에 이르는데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시대이다. 또한 기술적 목표가 정해지면 여럿이 협업으로 따라잡기 때문에 이 목표에 대해서 동의하는지가 문제이지 이 기술을 따라잡는 시간은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이 기술적 격차를 벌리기 위해 지금까지 해오던 선형적 방식으로 도망갔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이렇게 구축해 놓은 기술과는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기술적 요구가 생겨 방향을 틀면 결국 초격차로 벌려 놓은 기술은 무용지물이 된다. 한때 메인프래임의 기술로 선두를 달리던 IBM이 PC시장을 예측하지 못하고 무너졌거나, 노키아, 모토롤라가 무너진 이유는 결국 자신의 정한 영역에서 초격차를 추구하다 시대의 기술적 요구가 바뀌어서 무너진 것이다. 삼성이 추구하는 기술적 방향이 맞다면 어느 정도 작동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어도 지금은 과거의 성공을 기반으로 미래의 방향을 잡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이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시대 기술이 메모리가 아니라 AGI를 지원해줄 수 있는 다양한 커스텀 AI 메모리로 전환될 것이라는 것을 놓쳤다. 삼성의 기술우월주의가 가져온 패착이다. 세상은 기술이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사회가 진화하는 방향이 선도한다는 통찰력을 삼성전자가 놓쳤다.
둘째, 삼성은 자신이 지금까지 성공한 비밀병기를 기술이라고 생각하는듯하다. 하지만 선도적 기술만 가지고 혼자는 아무리 멀리 달아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기술을 상품과 서비스로 바꾸었는데 고객이 여기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기술은 무용지물인 것이다. 기술은 그 자체로는 존재이유가 없다. 기술의 존재이유는 기술을 통해 구현된 제품과 서비스가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해서 고객이 반응할 때 비로소 자신의 가치가 인정된다. 기술만 가지고 선도적으로 세상에 뛰어난 제품을 내놓았지만 사라진 회사들은 부지기수이다. 모두 기술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한 회사들이다. 기술이 사회적 가치나 고객가치가 아닌 경제적 가치에 얽매도록 놔둔다는 것은 실패를 담보한 것이다.
셋째, 초연결 디지털 혁명시대에 초일류기업이 추구하는 전략은 초격차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카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점을 만드는 <특이점 전략 (Singularity Strategy)>이다. 본인의 졸고 <황금수도꼭지: 목적경영이 이끈 기적>에 소개되고 있는 특이점 전략이란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과 가치를 제품과 서비스에 녹여내서 다른 사람들이 정말 카피하지 못하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특이점 전략은 회사의 철학, 기술, 제품의 가치가 통합되어 있어야 가능하고 이 모든 것을 이끄는 것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자신만의 목적과 철학이라는 각성을 기반으로 한다. 특이점에 도달한 회사를 따라하는 순간 자신이 짝뚱이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면 진정한 의미의 초격차가 만들어진 것이다.
초격차는 기술을 가지고 도망가는 것으로 만들어진다기보다는 철학과 기술을 접목하여 자신이 원조가 되어 자신을 따라하는 모든 회사를 짝퉁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때 달성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의미의 초격차는 특이점 전략에 성공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결과일 뿐이다. 초격차는 철학과 기술을 결합해 특이점에 도달한 회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
넷째, 초격차 전략에는 아직도 고전적 경영전략의 가정이 기본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수준으로 경쟁의 우위를 점하여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일등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고전적 경영전략이 추구하던 신자유주의 시대와는 달리 초연결 디지털 시대는 네트워크 효과를 이용할 수 있는지가 승패의 관견이다. 지속가능한 성공도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네트워크로 다 얼기설기 엮어 있어서 적과 아군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초연결 디지털 시대에 초인류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남들이 성공을 돕는 일에 성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서 남들을 많이 성공시키는 일에 성공할 수 있는 지이다. 초격차전략이 아직도 기술로 승부하는 제조업에서는 통용될 수 있는지 몰라도 앞서가는 초뷰카 디지털 시대의 메시지를 제대로 잡아낸 미래 전략은 아니다.
다섯째, 결국 삼성이 특이점을 구축하려면 삼성만의 플랫폼을 만들어 여기서 플랫폼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고객을 일등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일등이 되겠다고 선언한 회사에서 기술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모듈을 구성해서 플랫폼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다른 회사나 고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삼성에서 오래전 카이젠이라는 플랫폼이 실패한 이유도 이 카이젠이 기술적 플랫폼으로 기능을 못해서라기 보다는 이 플랫폼의 사회적 가치를 참가자들이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플랫폼에 참여해서 성공적으로 가동되더라도 종국에는 자신들이 만들었다고 참여자들을 내몰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불신 때문에 참여자들이 자발적 참여를 안 한 것이다. 이런 문제는 삼성이 가진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자발적 참여자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킬 수 있는 철학 부재 문제이다.
지금의 삼성을 만든 것은 이건희 회장이 세웠던 신경영 삼성철학이 그 당시 시대에 맞춰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연결시대 삼성의 생존 문제는 이건희 회장의 철학을 시대에 맞게 공진화시켜 시대적 울림을 다시 창출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초격차에 대한 이야기는 철학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의도가 너무 뻔하게 진부한 전략이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통해서 만든 열매와 성과를 마치 초격차가 만든 것처럼 포장해서는 안된다. 기술적으로는 초격차를 위해서 노력해야겠지만 초연결 디지털 혁명시대에 삼성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가진 기술을 고객의 가치와 접목시킬 수 있는 포용의 철학과 이 철학이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져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플랫폼 기업으로 향한 변신 노력이다.
2024년 삼성전자에게 필요한 전략은 공존, 공생, 공영이라는 디지털 협업 플랫폼 공진화 시대에 울림을 주는 전략이다. 혼자 살겠다고 달아나겠다는 초격차 전략은 시대는 모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초협업을 요구하는 시대정신과 대치된다. 초우량 기업들은 초격차를 자랑하기보단 자신의 우월한 기술을 수단으로 삼아서 자신들이 인류의 어떤 고통을 해결해주는 대체불가능한 존재우위를 가진 회사인지를 소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상수로 전환되는 기술을 날줄로 존재목적을 씨줄로 삼아 자신의 고유한 비즈니스 태피스트리와 비전을 제시한 회사들만 지금과 같은 초뷰카 디지털 혁명 시대 누구도 모방하고 따라 잡을 수 없는 특이점에 도달한다.
전영현 부회장이 쓴 반성문도 초격차에 대한 향수가 지위지지 않았다. 지금 디지털 초뷰카 시대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썼는지 아니면 투자자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소방수 작전으로 썼는 지에 의구심이 생긴다.
"무엇보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습니다.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입니다. 단기적인 해결책 보다는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 완벽한 품질 경쟁력만이 삼성전자가 재도약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영현 부문장은 구원투수로 투입된 이후 소통(Communicate)·열린 토론(Openly Discuss)·문제 공개(Reveal)·철저한 실행(Execute) 등 'C.O.R.E.'라는 새로운 조직 문화를 선포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 새로운 가정으로 새로운 울타리를 설정하지 못하고 과거의 초격차 기술적 우위 가정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아무리 CORE를 논의해도 지금의 작은 울타리 안에서 울림없이 공전하는 순환론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회사의 미래에 대한 가정이 바뀌지 않았는데 CORE에 대한 논의로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삼성전자가 의미 있는 근원적 변화를 시작하려면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에서 그 시대에 맞춰 새로운 가정을 세우고 검증했던 것처럼 지금의 삼성전자도 초뷰카 디지털 혁명 시대 자신이 대체불가능한 존재이유를 가진 회사인 지에 대한 새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낡은 가정의 울타리를 해체하고 시대에 맞는 새 가정의 울타리를 세워야 모든 논의가 울림이 있고 생산적이 된다. 30년 전 삼성전자에 대한 새로운 가정을 설정해 지금 삼성전자의 기틀을 만들었던 이건희 회장과 같은 사고를 가진 삼성전자 경영자과 리더의 부활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