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사태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신뢰자본이 부도나기 직전이어서 조만간 모라트리움을 선언할 수도 있다는 경고이다.

신뢰자본이란 무엇이고 이것이 부도나면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신뢰자본이 부도나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신뢰의 개념을 최초로 연구한 학자는 도이취(Deutch)이다. 도이취는 신뢰를 상대와 나와의 신뢰정도는 서로가 손실을 입을 것을 전제하고 상대에게 얼마를 대여해줄 수 있는지로 측정해왔다. 친구가 나에게 1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1000만원을 못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대여해주면 친구와 나의 신뢰잔고는 1000만원이다. 이 신뢰잔고가 2000만원이 될 수 있고 0원이 될 수도 있다.

은행업은 대표적으로 이런 신뢰의 개념을 역으로 이용한 신뢰자본 비즈니스이다. 은행은 신뢰를 담보로 구전을 받고 돈을 빌려준다. 은행이 나에게 천만원 한도로 신용대출해준다는 것은 내 신뢰잔고가 천만원이기 때문이다. 은행은 천만원을 못 받을 수도 있음을 전제로 나에게 대여해준다. 신뢰잔고가 없을 때는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당연히 이자를 더 많이 내야하는 제2금융권으로 가던지 사채를 이용해야 한다. 이자로 빌린 돈의 대부분을 토해내야 한다면 빌리는 것자체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운신의 폭이 작아진다. 즉 신뢰자본이 없다면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역시 돈이다. 대부분 빌린 돈을 이자로 즉시 갚아야 함에도 이것이라도 융통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돈을 빌린다.

신뢰잔고가 0이기도 하고 빌린 돈을 갚을 능력도 없는 경우 돈을 융통하기 위한 마지막 담보 수단이 신체다. 사회의 신뢰잔고가 0으로 떨어지면 신체포기 각서를 쓴 사람들이 범죄자와 사기꾼들의 아바타로 동원되는 사회가 된다. 이런 사람들이 넘치면 사회는 생존을 위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위해와 사기를 가할지 모르는 무서운 곳으로 전락한다. 이들의 범죄를 감시하기 위해 국가는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처벌을 동원하고 범죄자를 사회와 불리시키는 감옥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푸코(Foucault)가 경고한 처벌과 감시의 사회가 국가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화된다.

신뢰잔고가 떨어져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이 생존하는 방식이 사기다. 초보적 생계형 사기꾼들은 사회의 신뢰자본을 훔치는 좀도둑들이다. 생계형 사기꾼들이 사기꾼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자신이 신뢰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성공적으로 연기해서 상대가 자신을 믿으면 이 신뢰를 지룃대로 사기를 치고 도망간다. 문제는 생계형 사기꾼의 신뢰연기는 한탕으로 끝난다. 지속가능성이 없다.

이런 한탕 신뢰연기로 막을 내리는 생계형 사기꾼들보다 신뢰연기를 지속해가며 상대를 속이는 전문 신뢰연기꾼들도 있다. 대한민국의 토건세력들이나 기획부동산 업계가 바로 이들의 본거지다. 대장동 사태를 일으킨 김만배, 남욱, 정영학, 유동규가 이들 중급 신뢰사기꾼들에 해당된다. 중급 사기꾼들이 화려한 언변과 비즈니스 모델로 얻을 수 있는 과실을 강조해 사기를 친다. 이들 토건세력들은 장소를 옮겨가며 서너차례 같은 사기를 반복하다 탐욕을 제어하지 못해 자폭한다.

최고의 사기꾼들은 이들 중급 전문신뢰사기꾼들 위에 군림하는 사기꾼들이다. 이들은 신뢰의 원천에 해당되는 진정성을 연기하는 진정성 연기자들이다. 최고의 사기꾼들은 자신이 내면과 외면이 같은 상태인 진정성을 연기함을 통해 통 큰 사기를 친다. 자신의 내면에는 탐욕과 꿍꿍이 속을 가지고 있지만 속도 진실한 사람인 것처럼 연기한다. 이들은 고도의 전문성, 직책, 명예를 연기력의 도구로 이용한다. 이들은 이런 진정성을 연기해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고 이 신뢰의 신뢰를 이용해서 사기를 친다. 이들의 초고도의 메타 연기력에 넘어가 실제 사기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사기당한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번 대장동 사태에서 진정성 연기자들은 50억원 6인방으로 거론되는 박상도, 권순일, 박영수, 강찬우, 김수남, 이경재 등등 고문변호사들이다. 이들은 토건사기꾼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신뢰잔고인 진정성을 포장해주는 사기꾼들이다. 생계행 사기꾼들이 전형적인 신뢰자본의 좀도둑들이고 토건세력들이 이들보다 연기력이 뛰어난 중도독이라면 이들 법조인들은 평생 신뢰와 진정성을 연기해서 먹고사는 큰 도둑들이다. 이들이 신뢰를 팔아 사례비로 챙기는 돈의 액수에 비하면 생계형 사기꾼들이 챙기는 돈은 푼 돈이다.

문제의 본질은 이들 연기가 발칵이 되는 순간 이들 개인에도 가는 손해의 문제는 아니다. 진정성 연기자들은 그동안 수고롭게 쌓아놓은 사회의 신뢰자본의 모라트리엄을 촉발한 장본인들이다. 사회가 가진 신뢰의 뚝을 무너트린 장본인들이다.

이런 신뢰의 모라트리움 상황에 처한 상황에서 모든 일상적 거래에는 가외 거래비용이 들어간다.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뇌물이 필수적이다.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신뢰사기꾼 잔챙이들이라도 잡아서 감옥에 넣어 상징적으로라도 사회가 유지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대장동으로 촉발된 신뢰의 모라트리엄은 부패사회와 경찰국가가 시작될 것임에 대한 경보이다. 이번 대장동 사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따라 국가의 신뢰자본의 모라트리엄을 선고해야 하는지가 결정될 것이다. 이번 대장동 건은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신뢰잔고를 지키기 위해 국민 모두가 나서서 엄중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