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5-05 17:52
[N.Learning] 살아서 제대로 흔들리는 것은 뿌리가 있다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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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제대로 흔들리는 것은 뿌리가 있다
나무의 설교

헤르만 헷세의 <나무>라는 수필을 읽다보면 우리의 삶의 뿌리가 죽어 있을 때 제대로 흔들리지 못했거나 처참하게 흔들려왔다는 것을 배운다. 나무가 흔들림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유는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뿌리를 가지고 제대로 살아서 흔들리는 법을 가르친다. 뿌리가 뽑혀진 나무는 설사 태풍이 불어도 제대로 흔들리지 못한다. 제대로 흔들리고 제대로 떨린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목적에 대한 철학적 뿌리를 가지고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뿌리로부터 끊임없이 나를 실현하는 영혼의 생명수 끌어 올려지고 이 생명수가 잎을 만들고 꽃을 만들어 바람에 제대로 흔들려가며 세상에 나를 전달할 때라고 가르친다. <용이어천가>도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제대로 흔들리므로 그 꽃이 아름답고 그 열매가 성글다"고 가르친다. 뿌리가 제대로 살아 있지 못하다면 불가능한 일아다. 우리는 나무로부터 뿌리를 내리고 제대로 흔들려야 촘촘한 나이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뿌리를 내리지 못해 제대로 흔들리지 못한다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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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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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언제나 나에게 가장 절실한 설교자였다.

나무의 높은 우듬지에는 세계가 술렁이고, 뿌리는 영원 안에서 고요하다. 하지만 나무들은 그러면서도 자신이라는 존재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온 기운을 다해서 한 가지를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자신 안에 있는 자신의 법칙을 이룩하기, 자신의 원래 모습을 구축하기,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한 그루의 아름답고 강한 나무보다 더 신성하고 더 이상적인 것은 없다.

우리가 슬플 때, 삶이 견디기 힘들어질 때, 그때 한 그루의 나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슬퍼하지 말아라! 애통하지 말아라! 나를 보아라! 삶은 쉽지 않다, 삶은 어렵지 않다. 그런 것은 모두 아이의 생각이다. 네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어라. 그리하면 생각들은 침묵하게 되리라. 네 삶이 너를 어머니와 고향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므로 너는 슬프다. 그러나 모든 발걸음과 모든 하루는 너를 다시금 어머니에게로 다가가게 할 것이다. 고향은 이곳에 혹은 저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은 네 안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고향은 어디에도 없다.

나무들의 소리에 오랫동안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노라면, 그리움의 본질과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것은 겉으로 보이듯이 당장의 고통을 피해 달아나고자 함이 아니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의 기억에 대한 그리움, 삶의 새로운 은유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집으로 향한다. 모든 길이 집으로 향한다. 모든 발걸음이 탄생이고, 모든 발걸음이 죽음이며, 모든 무덤은 어머니이다.

스스로의 생각 때문에 불안해하는 저녁마다, 그렇게 나무는 술렁인다.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랜 삶을 살아가는 나무는, 생각이 길고, 호흡은 느리고, 경솔했던 우리의 생각은 무엇과도 비할 바 없이 큰 기쁨을 얻는다. 나무의 소리를 듣게 된 자들은 이제 더 이상 나무가 되기를 열망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되기를 열망하지 않는다. 그것이 고향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톱에 잘린 나무가 죽음의 상처를 입은 맨살을 햇빛 아래 드러낼 때, 절단된 몸통이 보여주는 환한 내부는 마치 묘비명처럼 나무의 모든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나무의 나이테와 울퉁불퉁한 옹이는 나무의 투쟁, 나무의 고통, 나무의 질병과 행운 그리고 성장을 솔직하게 말한다. 간신히 버티면서 살아남은 좁다란 해와 무성하게 우거졌던 넓직한 해, 혹독한 공격과 폭풍우를 견디어 낸 해가 거기에 있다. 좁다란 나이테를 가진 나무일수록 강하고 고급스러운 목재라는 것을, 높은 산에서 끊임없는 고난을 버티면서 자란 나무일수록 부서지지 않고 단단하며 품질이 좋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는 말한다. 내 안에는 하나의 핵이, 하나의 불꽃이, 하나의 사상이 숨겨져 있다. 나는 영생하는 생명이다

한 그루의 나무는 말한다. 내 힘은 믿음이다. 나는 마지막 날까지 오직 내 씨앗의 비밀을 살아갈 뿐이며. 그밖의 일은 조금도 근심하지 않는다. 나는 내 임무가 성스럽다는 것을 믿는다. 이런 믿음으로 나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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