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조직이나 사회의 변혁을 마련한 리더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차원의 삶의 성공함수를 가진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의 삶의 성공을 설명하는 성공함수의 최종 종속변수는 목표달성이다. 목표를 달성해서 성과를 내면 적어도 생존이 보장되고 생존이 보장되는 것이 이어지면 언젠가는 번성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성공은 이런 성공함수에 의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성공적인 삶을 살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조직과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온 리더가 채택하는 성공의 종속변수는 자신이 세상에 온 이유를 소구하는 존재목적의 실현이다. 최종 종속변수가 존재목적의 실현을 결정하는 독립변수가 목표이다. 이런 성공함수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반드시 생계를 위해 해야할 목표나 단기성과를 수행할 때도 이 과제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나를 통해서 달성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를 묻는다. 이런 질문으로 찾아진 이유를 최적으로 실현시키는 방식을 찾아서 목적과 연동된 방식으로 일한다.
다른 사람과 같은 목표와 성과를 달성하는데 이런 자신의 삶의 목적과 연동시켜 일하는 사람들이 내는 성과를 목표달성이 최종종속변수으로 작용하는 목적함수를 가진 사람이 이겨낼 수는 없다. 이런 사람들의 내는 목표달성과 단기성과는 목적이라는 일관된 실로 엮어져서 다른 사람들이 만들 수 없는 성공이라는 목걸이을 만들어낸다. 목표와 단기성과가 성공함수의 종속변수인 사람과 달리 존재목적이 결과변수인 사람들은 성과나 목표가 밑빠진 독으로 사라지지 않고 축적된다.
자신의 존재목적을 최종 성공함수의 결과변수로 생각하고 일하는 것은 회사가 존재목적을 가지지 못한 것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설정하는 문제다. 회사가 존재목적을 깨달지 못한 산성화된 회사라면 이런 성공함수를 가진 사람은 무주공산을 만난 것이다. 동료들이 사람이 단기적 성과로 매일이 시지포스 돌굴리기 삶을 살고 있는 반면 자신은 자신은 이런 환경에서도 독보적으로 삶이 축적되고 성숙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목적을 성공함수의 결과변수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삶의 경쟁우위 뿐 아니라 삶의 존재우위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도 무주공산에서 성공을 구가하는 사람으로의 지위를 상실할 때가 있다. 성공함수의 최종적인 결과변수를 존재목적으로 삼고 사는 것에 윤리적 우월성을 느끼고 동료들에게 자신의 삶을 강요하고 십자군 전쟁을 벌이기 시작할 때이다.
회사가 존재목적이 없이 생존과 성과만을 위해 괴롭히는 것에 연연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이런 회사는 내 삶의 성공을 위해 주인없는 비옥한 무주공산을 제공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전제는 자신의 우월성으로 동료들과 십자군 전쟁을 하거나 이런 산성화된 토양을 가진 회사를 대상으로 십자군 전쟁을 벌이지 않는 것이다. 대신 자신의 영역 안에서 조용조용하게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서는 급진성을 잃지 않는 반면 이를 목표와 연계시켜 실행하는 일에서는 할수 있는 것,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만 가지고 할 수 것에 집중해가며 조용조용히 거북이처럼 실행하는 급진적 거북의의 자세로 임할 수 있을 때이다.
생존과 단기적 성공이라는 이기심에 취해 무궁무진한 기회가 숨겨져 있는 무주공산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평생 일은 열심히 하지만 눈뜬 장님의 삶을 살고 있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