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적역량(Dynamic Cap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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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최고 수준의 지능을 구가할 때는 반대되는

두 극단의 모순을 마음속에 담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

- 피제랄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급진적 거북이 성향의 변화 챔피언이 행사하는 지혜는 학자들이 이원론적으로 나눠 놓은 것들을 연결해 수평적으로 통합할 뿐 아니라 이원론적 요소가 조직이 정한 존재목적을 위해 협업하는 구조로 작동할 수 있도록 수직적 통합의 지혜도 발휘한다. 변화와 질서, 보수와 혁신, 주변과 중심, 좌파와 우파, 비용과 품질, 자율성과 통제, E이론과 O이론 , 장기적 성과와 단기적 성과,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 활용과 탐색, 음과 양, 성공과 실패, 레드오션과 블루오션 등등의 이원론은 수평적 통합과 수직적 통합을 위해 사용되는 재료다.

급진적 거북이는 어떤 변화의 시도이든 수직적 통합을 완결하지 못한 수평적 통합은 근원적 변화에 실패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동원한다.

수평호칭의 곤경

실리콘밸리 발 수평적 문화에 고무된 최근 한국 재계에서 '호칭 파괴' 바람이 거세다. 전통적인 직급과 호칭 대신 수평적이고 비공식적인 호칭을 사용하여 조직문화를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이 변화는 삼성전자, CJ그룹, 현대차그룹, SK 뿐 아니라, 카카오, 네이버 등 IT 대기업을 거쳐 중소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기업의 신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최근 오너리스크를 일으켜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는 위메프도 호칭 파괴에 선두에 섰던 회사였다.

삼성전자는 '이름+님'이나 영어 이름, 이니셜을 사용하는 '수평 호칭' 제도를 도입했다. 예를 들어, 이재용 회장은 'JY'나 '재용 님'으로 불리며, 한종희 부회장은 'JH'로 불린다. CJ그룹은 이미 2000년부터 직급 호칭을 없애고 모든 직원을 '님'으로 부르고 있다. SK와 현대차그룹도 2019년부터 직급을 '매니저'와 '책임매니저'로 단순화했다. 카카오는 2010년 9월 사명을 카카오로 변경하고 ‘님“자조차 쓰지 못하도록 모두가 영어 이름을 의무적으로 만들어 부르도록 했다. 김범수씨도 의장님이 아니라 그냥 Brian이다.

왜 수평 호칭을 채용하는지를 물으면 회사는 변화가 상수가 된 시대에 맞게 수평적 문화를 통해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답한다.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수평 호칭을 도입한 기업이 정말 수평적 문화를 신장시켰는지를 내부직원들에게 물어보면 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직급을 단순화하거나 보상과 평가를 비롯한 실질적 제도적 수평화가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호칭만 바꾼다면 무늬만 수평적 문화인 회사로 전락한다.

한국 기업들이 해결하지 못한 더 근본적 문제는 이원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에서 파생한다. 모든 문화와 제도가 다 수평적으로 통합되어 있다고 수평적 소통이나 신속한 의사결정이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설사 수평적 통합이 완벽하게 달성되어도 통합된 운동장이 조직이 정한 공유된 존재목적을 위해 통합되는 수직적 통합이 완성되지 못하면 동적역량이 사라진다.

수직적 통합 없이 수평적 통합만으로 근원적 변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은 최고의 자동차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회사에서 자동차의 부품을 수입해서 조합한다고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험지 주행을 위한 4동 구륜 시스템은 랜드로바에서 빌려오고, 운전대 설계는 포르쉐에서, 엔진시스템은 페라리에서. 연비시스템은 토요타, 자동차의 내장 디자인과 승차감을 위해서는 롤스로이스, 전자장치는 마세라티, 동력전달 장치는 람보기니, 브레이크는 볼보 브레이크, 감성적 디테일은 벤츠 마이바흐 S클래스, 배기장치는 벤틀리에서 빌려와 차를 조합한다면 최고의 자동차는 고사하고 중급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뻔한 차가 만들어질 개연성이 높다. 차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고 각 부품을 통합해주는 철학이 반영된 브랜딩이라는 수직적 통합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관행들을 모두 벤치마킹 해와 회사를 최고의 일터로 만들어도 이런 수평적 운동장이 회사의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는 구조로 동원되는 수직적 통합이 없다면 초일류는 고사하고 그냥 개발에 편자일 뿐이다. 조직의 존재 목적이 거버넌스의 중심에서 수직적 통합을 달성할 수 있어야 실질적인 협업이 가동된다. 아무리 뛰어난 스타급 전문가들의 모여 있어도 이들을 존재목적을 위해 자발적 협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수직적 통합이 없다면 이들에게 제공하는 비싼 임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다. 수직적 통합이 가능한 회사는 굳이 호칭을 영어 이름으로 부르지 않더라도 직급 차이를 극복하고 조직이 정한 목적 실현을 위해 자발적으로 협업한다. 직급은 대리이고 과장이라 하더라도 사장처럼 내면화한 존재목적을 중심으로 사장급 대리, 사장급 과정, 사장급 부장으로 책무감을 가지고 협업한다. 설사 회사가 위계 관료제 구조로 일해도 수직적 통합이 되어 있다면 관료제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동원한다.

대한민국 기업들이 고민하는 수평적 소통과 신속한 의사결정의 문제는 호칭과 수평적 통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경영, 제도, 문화의 이원론적 요소를 분해해 실현한 수평적 통합도 불완전하지만, 수평적으로 통합한 요소들이 목적을 위해 협업하는 구조로 만드는 수직적 통합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수직적 통합을 가능하게 만드는 목적에 대한 진정한 헌신의 부재가 문제의 근원이다.

한국에서 이런 수평적 호칭을 가장 먼저 사용한 카카오가 존재목적을 잃고 헤매는 동안 회사에서 영어 이름과 문화적 통합을 기치로 내건 ’신충헌(신뢰, 충돌, 헌신)‘이 각 계열사에서 각자도생을 위한 토굴을 파는 도구로 전락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위메프도 마찬가지다. 경영진이 존재목적을 상실해 수직적 통합의 구심점을 잃으니 회사를 위한 최소한의 협업 비용이 치솟았고 결국 도산했다. 최근에는 수평적 호칭이 오히려 장애로 작용한다고 판단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기업도 늘고 있다. KT, 포스코, 한화그룹이다. 이들도 기업이번성하는 원리를 오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호칭에 대한 수평적 통합도 실패했을 못했을 뿐 아니라 더 심각한 문제는 수직적 통합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수직적 통합의 구심점인 존재목직이 유명무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