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세 되던 해인 1993년 고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를 지금과 같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삼성전자 임원들과 함께 프랑크 프르트로 기약없는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떠난다.

그냥 몇 일 선진 독일을 배우기 위해 출장 가는 것으로 알고 속옷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떠난 임원들이 2-3개월의 독일, 영국, 일본, 미국 등 장기 여행을 같이 해야 했다. 이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통해 지금의 삼성전자를 있게한 신경영의 청사진을 도출했고 이 청사진을 토대로 지금의 삼성전자가 만들어졌다.

이건희 회장이 51세 되던 1993년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이건희 회장은 후꾸다고문의 보고서를 비롯해서 삼성의 각종 문제를 보고받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회장에 취임한지 6년 동안 그렇게 관리의 삼성을 넘어선 주인의식에 기반한 자율경영을 호소했음에도 삼성은 전혀 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수행 비서진에게 도대체 삼성의 근본적 문제가 무엇이지 생각해보라고 화두를 던진다.

비서진이 전략적 분석기법을 동원해 답을 마련해가면 아니라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돌려보낸다. 잠을 안 재워가며 요즈음의 하브르타 방식으로 밤세워 비서진을 코칭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돌려보내기를 반복하자 같이 있던 홍라희여사가 이러다 비서들 다 잡겠다고 성화를 보이자 이건희 회장은 마음에 담고 있던 생각을 털어 놓는다.

"삼성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왜 이건희 회장은 삼성 문제의 근원을 사랑의 부재에서 찾은 것일까?

철학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상식적 통찰이다. 연인의 관계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서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가며 각종 영화를 찍는다. 상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랑이 끝났음에 대한 전조이다.

이런 원리는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자신을 긍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리가 없다. 자신을 긍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유전자 복권의 재능을 편애하는 사랑을 넘어 자신의 아픔조차도 사랑하는 지순한 사랑이다.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삼성 사람들이 자신을 긍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복원해야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을 할 것이고 주인공으로 일할 수 있어야 관리의 삼성을 넘어서 자율과 책임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구성원들이 자기긍휼이 있어서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하고 삶의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일에 성공했다고 가정할 때 자신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운 사랑이 기업에도 이입되어 기업과 구성원 사이의 사랑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종업원과 회사의 사랑은 기업도 평소 종업원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지, 즉 사랑의 상호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기업이 평소 구성원을 대체가능한 인적 자원으로 취급하고 이윤창출만을 위한 도구처럼 부려왔다면 어렵게 회복한 자신에 대한 긍휼의 사랑을 회사를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험난한 사랑을 의해 소모할 이유가 없다. 회사의 삶과 구성원의 삶은 분절된다.

회사가 종업원을 사랑하는지의 개념이 지각된 조직지원(Perceived Organizational Support: POS)다. 지각된 조직지원이란 회사가 개별 구성원을 위해 몰입하고 헌신하고 있는지의 정도다. 지각된 조직지원의 수준이 높은 회사의 구성원은 회사가 구성원 각자의 공헌을 소중하게 여기고 평소 구성원을 중요한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느낀다. 지각된 조직지원을 느끼는 회사의 구성원은 평소 자신들이 도구로 소모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각된 조직지원은 회사가 구성원을 중요한 가족의 일원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종업원이 느끼는 정도다.

회사의 사랑을 느끼는 구성원들은 주인이 되어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을 돌려준다. 자신의 몸, 마음, 정신을 온전하게 회사를 주체적으로 사랑하는데 동원한다. 몸, 마음, 정신이 온전하게 동원되어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을 경영학에서는 종원원 인게이지먼트(Employee Engagement)라고 부른다. 종업원 인게이지먼트는 회사가 월급을 주었으니 최소한 월급받은 만큼 사랑해달라고 하는 조건적이고 거래적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 사랑의 토대가 된다. 종업원 인게이지먼트와 지각된 조직지원이라는 회사의 인게이지먼트는 회사와 종업원 서로를 일으켜 세워 서로를 운명의 공동 주인으로 만든다.

이런 회사의 CEO들은 평소 종업원이 자신의 몸, 마음, 정신이라는 세 명의 온전한 주인을 가져와 생산적이고 혁신적으로 일하는 구성원에게 굳이 하루에 8시간 맞춰서 일할 필요도 없다고 선언한다. 실제로 온전한 주인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의 3-4시간 일하는 성과는 몸만 와서 일하는 구성원이 달성한 수 일 분의 성과를 초월한다. 이런 선진 회사들은 실제 주 4일 일해도 더 큰 성과를 창출한다. 성과 차이가 없는데 그냥 일하는 날짜를 4일로 줄여주는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회사다. 이런 회사의 대부분은 재무적 성과에 문제를 일으켜 이전의 방식으로 회귀한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회사는 구성원에게 사랑을 보여달라는 일방적으로 구애를 넘어서 힘이 있는 회사가 먼저 종업원을 긍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야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운명에 대한 공동의 주인의식을 회복한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팔려간 심순애의 사랑을 되찾아오기 위해 더 좋은 다이아몬드를 제공하는 방식은 작동할 수 없다. 가난 때문에 사랑을 잃은 이수일이 심순애의 사랑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비결은 다이아몬드도 준비하겠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일이다.

고수들의 경영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돈(연봉과 복지)으로 사랑을 사는 방식으로는 종업원의 주인의식을 온전하게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 기업의 HR 담당자들도 지각된 조직지원이라는 회사의 종업원 사랑 행위가 어떤 종업원 체험을 가져오는 지를 면밀하게 추적 연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