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5-27 09:30
[N.Learning] 초인류기업의 비밀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11,731  

 초 일류기업의 비밀: 윤리 경영이 답이다

타이레놀 사망 사건과 존슨 앤 존슨의 윤리 경영

미국의 유명한 기업 존슨 앤 존슨(Johnson&Johnson)은 윤리 경영의 대명사로 모든 경영 교과서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영을 꿈꾸는 한국의 회사들에게도 벤치마킹의 단골 대상이다. 이 회사가 이와 같은 윤리 경영의 대명사로 거듭 태어나 지금까지 일류로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이 회사의 경영진들이 회사의 존망이 걸렸던 이 회사의 주력제품인 타이레놀(Tylenol) 독극물 사건에 대응하는 자세를 통해서 오히려 고객들에게 정직한 조직에 대해서 학습시킨 결과였다. 이 사건에 대한 존슨 앤 존슨의 대응 방식은 세계 경제계와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기업윤리가 이름뿐인 신조가 아닌 위기 대처 능력의 결정적인 요소로 부각된 교훈적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 주요 비즈니스 스쿨들이 기업윤리 과목을 개설했고 미래의 경영자에게 기업윤리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존슨 앤 존슨의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존슨 앤 존슨의 타이레놀을 복용한 6명의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열진통제인 타이레놀은 1970년대에 개발돼 당시 존슨 앤 존슨 총매출의 7%, 순이익의 17% 그리고 이 분야 시장점유율 38%를 차지하는 주력 상품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사망자가 먹은 타이레놀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존슨 앤 존슨은 즉각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존슨 앤 존슨의 “우리의 신조(Our Credo): 우리의 첫째 책임은 주주보다는 우리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자인 의사, 간호사, 환자와 자녀를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믿는다”(존슨 앤 존슨의 홈페이지에 명시되어 있다)에 따라 미국 주요 미디어의 협조를 받아 자체적인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고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타이레놀 제품을 절대 먹지 말도록 대대적인 홍보를 전개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 의해 정신질환 병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의도적으로 독극물이 주입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문제가 된 시카고 지역에 배포된 제품을 거둬들일 것을 존슨 앤 존슨에 권고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존슨 앤 존슨의 짐 버크 회장은 식품의약국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다른 모방 범죄에 의해서 한 명의 소비자라도 더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회사의 이익과는 정반대로 시카고뿐만 아니라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문제가 없는 제품 3,000만 병, 총 1억 달러(약 1,300억 원) 상당의 상품까지도 스스로 모두 거둬들여 폐기처분을 하도록 지시했다.

이 사건이 무마된 후 사내에서는 타이레놀 브랜드를 포기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서 짐 버크 회장은 우리의 이러한 노력에는 막대한 시간과 돈이 들어가겠지만 타이레놀의 지위를 되찾는 것은 소비자와의 윤리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직원들을 설득했다. 결국 시간은 걸렸지만 소비자들은 존슨 앤 존슨의 윤리적 태도를 신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결과적으로 타이레놀은 현재까지 미국 시장에서 소비자가 가장 신뢰하는 해열진통제로 살아남았고 세계적으로 연간 1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효자 상품이 됐다. 자기가 한 실수이든 남에 의해서 촉발된 실수이든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면 이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이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신조 경영이 회사를 살리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머크 사의 바이옥스 사건

이와 대비해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세계 굴지의 제약회사 머크(Merck) 사의 바이옥스(Vioxx) 사건에 대한 이 회사의 대응은 대조적이다. 바이옥스는 한국에서는 관절염 특효약으로 더 많이 알려진 제품이다.

2004년 9월 30일 길마틴 머크 회장은 자사의 주력제품인 바이옥스(Vioxx)가 임상실험 결과 심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자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이는 말만 자진철거지 이미 미국 식품안전국(FDA)의 독자적 임상실험 결과 이 제품을 18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심장마비나 발작을 일으킬 확률이 복용하지 않을 때보다 5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철거하도록 권고를 받을 예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미국 식품안전국의 실험 결과가 나왔음에도 끝까지 머크 사는 끝까지 로비를 하면서 버틸 때까지 버티다 결국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부작용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소송과 언론의 압박 그리고 학술지에 비슷한 임상실험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백기를 든 것이었다. 겉으로는 자율적으로 회수하는 형식이지만 진실은 그간 축적되어 온 소비자들의 불만과 이에 따른 소송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머크는 이 제품으로 2003년 한 해에만 전 세계로부터 25억 달러(우리나라에서도 한 해에 1백억 안팎) 정도를 벌어 들었다. 이미 시판되자마자 이 약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웹 커뮤니티가 수도 없이 조직되고 약이 시판되자마자 발표된 여러 건에 해당하는 학계의 임상실험 결과의 발표를 염두에 두었을 때 미국 식품안전국은 관심만 있었다면 2000년 초기에 이 약을 팔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적어도 1999년부터 시판되었고 그간의 매출액 등으로 볼 때 전 세계에 걸쳐 최소한 2만 7천여 명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이 약의 직간접 영향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약이라기보다는 이 약 자체가 독극물이었던 것이다. 머크 사가 바이옥스를 회수한다는 발표 이후 80달러에 육박하던 주가가 32달러로 떨어지고 결국 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천문학적 소송비용을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됐다.


정년퇴임이 2년여 남은 CEO이자 회장인 길마틴이 이 사건을 진두지휘한 과정은 존슨 앤 존슨의 짐 버크 회장과 많은 대조를 이룬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약이 어떻게 미국 식품안전국의 승인을 받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식품안전국에도 도덕적 의구심을 보내고 있는데, 길마틴 회장의 집요한 로비력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결과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길마틴은 학계의 계속되는 임상실험 결과 심장질환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자 자체 연구를 통해서 심장질환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임상실험 결과를 발표해 무마하려고 했다. 나중에 밝혀진 결과로는 임상의 대상 표본을 심장이 아주 건강한 사람들만을 뽑아서 임상실험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소비자들의 호소와 소송이 들어올 때마다 대대적인 광고를 내어서 약에 전혀 문제가 없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또한 자신의 회사는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직한 회사라고 선전하는 맞바람 전략을 써왔다.

한편 식품안전국의 외주를 받은 스탠퍼드 대학의 임상실험 초기 결과가 나오자 경영진들을 시켜 이 연구를 책임지고 있던 교수에게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도록 종용해 교수가 총장에게 제약사가 압력을 넣지 못하도록 막아 달라고 호소해 해결했다는 기록도 나와 있다. 막판에 전세가 불리해져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을 때에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지 못하고 식품안전국에 지금까지 해왔던 과장광고를 안 하고 경고문만을 넣고 그냥 팔게 해 달라는 로비를 했다는 소송 건도 계류 중이다.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9월 30일 자진 철수 결정을 언론에 발표해가면서 길마틴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머크의 경영신조가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자진해서 이런 결정을 내린다고 자사의 경영신조를 인용했다. 길마틴 회장은 정년퇴임을 2년 남겨놓고 있어서 회사가 속으로 썩어 곪아 터지든 말든 괘념치 않고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버텨 엄청난 퇴직금을 거머쥘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느냐는 모럴해저드에 대한 의구심도 만만치 않았다.


★모럴해저드와 윤리 경영

존슨 앤 존슨은 분명 도덕적 원칙을 지켜 소비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회사인 것이 너무나 확실하지만 과연 머크의 경우는 어떤가? 이 회사는 도덕적 원칙이 없으면서도 사람들에게는 마치 도덕적 원칙이 있는 척해 도덕적으로 사기를 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인다. 이 회사의 경영신조는 존슨 앤 존슨에 의해 촉발된 윤리 경영이 업계의 표준과 규범으로 정착하자 자신의 회사에도 이를 도입해 윤리 경영을 하는 척했지만 이 회사가 그간 취한 행동은 윤리 경영과는 거리가 먼 행동만을 골라서 한 무늬만 윤리 경영인 회사였다.

한마디로 바이옥스라는 독약을 윤리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돈을 벌기 위해 지금까지 2만 7천명의 목숨을 담보로 도덕적 사기를 친 것이다. 도덕적 원칙은 존슨 앤 존슨에서 보았듯이 이 원칙이 모든 의사결정과 행동의 원인과 원천이 될 수 있을 때 붙여질 수 있는 이름인 반면 도덕적 사기는 윤리 경영을 목적적 가치로 생각하기보다는 장사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 독약을 계속 팔게 해 달라고 FDA에 로비를 계속하면서 기자회견에서는 안면을 바꾸어 약 퇴출 결정에 회사의 신조가 작용했다고 사기를 친 행동이 바로 그것에 해당된다.

도덕적 원칙에서 파생된 도덕적 권위는 한 조직을 건강한 조직으로 성장시키고 유지시키는 필수적 요소이다. 한 조직이 자신들이 정한 법에 의해서만 모든 것이 규제되고 유지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한 조직을 건강한 조직으로 유지시키는 것은 우리 눈에는 명문화되지 않아서 보이지 않지만 법의 법외적 요인인 도덕적 원칙에서 파생한 도덕적 권위가 밑받침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도덕적 권위가 무너진 조직에서 규율과 법만으로 모든 것을 규제하려 할 때, 억압과 탄압을 무기로 하는 독재가 필연적으로 탄생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독재에 대항해 항쟁했던 것은 법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이 법의 토대가 되는 도덕적 권위가 붕괴되었기 때문이었다.


도덕적 원칙이 있어야 일류기업이 된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기업의 총수들이 자신은 뒷문으로 비자금, 불법 경영승계 등으로 회사의 재산을 빼돌리거나 사유화하고 이를 통해 고객과 주주와 국가에 막대한 침해를 끼쳐가면서, 다른 한편으론 자사의 종업원에게는 도덕적 원칙을 강조하다가 이런 이중성이 발각되어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경우가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이들은 자신의 이중적 행동에 대해서 오리발을 내밀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지경이 되면 자신들의 행동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강조하며 사회에 수천억씩의 기금을 헌납하는 등 보통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관행을 주도해왔다.

이런 한국의 대기업들은 단기매출액에서는 세계 대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르나 절대로 존슨 앤 존슨처럼 100년 혹은 200년을 영속하면서 국제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는 초 일류기업으로 태어날 수는 없다. 이 회사의 종업원들은 자사의 제품들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자신의 회사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종업원이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회사가 고객들에게 훌륭한 가치를 전달하는 회사로 각인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든 일일 것이다. 오히려 고객과 주주들은 이런 회사들은 감시가 느슨해지면 언제든 다시 자신들에게 사기를 쳐 손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영구히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글로벌 기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극복해야 할 딜레마이다.


 미국의 사라진 거대기업 엔론이나 월드컴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이 도덕적 원칙을 통해서 경쟁력을 쌓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지 모르나 도덕적 권위를 무시한 탈법이 발각되어 거대 공룡회사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도덕적 원칙은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살아남게 하는 비밀열쇠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평소에 도덕적 원칙에 따라 남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도움을 준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망할 상황에 이르게 되면 주변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어 이 사람을 살려내게 되어 있다. 이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주변 사람의 복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암묵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평소에 도덕적 원칙을 무시하고 자신과 가족의 이득만 챙기고 살던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에 처한다면 주변사람들은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고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상황은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특히 지금처럼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를 감추는 것이 쉽지가 않은 정보의 민주화 사회에서는 기업들이 과거처럼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고객이나 국민에게 완전범죄로 사기를 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기업, 국가 그리고 신뢰

기업을 넘어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음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대통령뿐 아니라 지금까지 장관이나 고위관리를 임명하기 위해 검증 과정을 거치다 보면 이른바 엘리트라고 하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도덕 불감증에 걸려 평소 남모르게 얼마나 사회를 대상으로 탈법과 사기 행각을 저질러 왔는지가 드러나 평범한 국민들이 경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목격되었다.

국가가 이 사람들의 도덕성 검증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는 결국 이 사람들에 국가를 운영하게 놔두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형태를 넘어서서 사회질서 교란의 주범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도 불법과 탈법으로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도 그렇게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는데 일개 시민인 내가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하고 반문해가며 이런 사람들을 자신들의 불법과 탈법을 정당화시키는 부정적 역할 모형으로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법의 잣대로 시민들의 불법과 탈법을 징계한다면 힘없는 시민들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만 법의 감시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더 심각한 탈법과 불법행위를 부추기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사회는 국민의 혈세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감시 비용을 많이 쓸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투기와 탈세를 일삼았다면 그 대통령은 국민들의 투기와 탈세 행위를 법으로 강제할 수는 있어도 그 강제에 대해서 국민들의 심정적 동의를 얻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정권이 정권을 장기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이 정권이 휘두르고 있는 법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법의 기반이 되는 도덕적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소통에 대한 논쟁은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떤 이유에서든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신뢰성을 잃었다면 그 지도자가 어떤 과학적이고 이성적 근거를 들어 논리를 편다 하더라도 국민의 마음을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소통은 도덕적 신뢰를 근거로 상대의 마음을 훔치는 행위인 것이다. 한국과 같이 사회적 맥락이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양치기 소년의 우화가 잘 이야기 해주듯이 일단 도덕적 신뢰를 상실한 지도자는 아무리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서 상대에게 소통을 시도해도 소통에 극단적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땀의 원칙과 공정한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

도덕적 원칙이 살아 있는 조직과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 자신의 실력을 쌓아 인정받는 땀의 원칙(Equity of Sweat) 말고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을 꾸준히 노력하게 하고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하며, 이것을 통해 조직과 조직 성원 모두가 일류로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지만 더 큰 실력을 차근차근 쌓게 하는 쪽으로 구성원들을 몰입하게 하는 신성한 힘이 바로 도덕적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이 무너진 조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르든 힘 있는 사람 밑에 가서 줄을 서고 충성의 맹세를 바치는 방법밖에는 길이 없다. 또한 이런 조직에서 성장해 기득권을 획득한 사람들은 공공연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줄을 설 것을 요구하고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해서 엮어진 정치적 연줄은 공정한 경쟁을 탄압하고 대신 정실과 야합이 판치게 만들어 조직과 사회를 서서히 썩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도덕적 원칙이 무너진 조직에서의 노력이 진정한 실력으로 축적되지 않는 것은 이 무너진 도덕적 원칙이 밑 빠진 독에 물 붙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또한 역으로 우리가 이런 도덕적 원칙에 기반해 우리의 실력을 쌓아야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자신의 땀으로 일구는 일을 게을리 하다보면 자신도 어느 순간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도덕적 원칙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기득권을 주장하기 시작하거나 아니면 힘 있는 사람 밑에 가서 줄을 서는 쪽을 택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으로 축적해 놓은 실력이 있고 이에 대해 자신감이 있어서 지금도 꾸준히 학습을 통한 노력과 성장을 체감하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정치적으로 야합하거나 줄 서는 일에 개입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분들이 교육에 대해선 다 일가견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무너진 교육을 바로 세우고 이를 통해 사회의 경쟁력을 굳혀 나가는 관건은 도덕교육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지금처럼 학교에서 도덕적 원칙에 대한 공부를 도덕이나 사회과목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차원을 넘어서 교과과정을 근본적으로 개편해 실질적 실천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가르치고 검증하고 내재화시키는 것이 우리나라 경쟁력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지름길이 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시험만 잘 보면 누구나 우리 사회의 엘리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의 일방적 암기식 교육과정을 잘 치러 시험만 잘 보면 도덕적으로 검증하는 과정 없이도 누구든 변호사, 판사, 검사, 의사, 교수가 될 수 있고 시험을 통과하자마자 이들은 곧바로 사회를 지도하는 한국의 엘리트로 편입된다. 이 파워 엘리트들의 지식과 기술이 도덕적 원칙에 따라서 사용되지 못할 때 이들의 지식과 기술은 오히려 사회를 파괴하는 가공의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이 자신들이 힘과 축적된 재정 능력을 동원해 자신들만의 정치적 연대를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 주력하다보면, 사회는 더욱 고착되고 경쟁력을 위한 건강한 변화는 불가능해진다.

학교에서 도덕적 원칙이 무시되었을 때는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한다. 스펀지와 같은 학습 능력을 가진 잠재력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실력과 공정한 경쟁의 원리보다는 야합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를 길러 승리하는 정치적 편법을 가르쳐 건강한 사회를 파괴시키는 무기로 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간디가 도덕적 원칙이 없이 정치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범죄행위라고 규정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결론적으로 미래 사회에서 개개인의 궁극적 경쟁력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을 타이레놀 브랜드로 인식하는지 바이옥스 브랜드로 인식하는지에 달려 있고 이는 평소 내가 얼마나 정직한 경쟁을 몸으로 체감하며 성장했는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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