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18 20:41
[N.Learning] 꼰대의 헐벗은 옷을 벗다 나이듬에 대해서
 글쓴이 : Administra…
조회 : 2,120  
꼰대의 헐벗은 옷을 벗다
나이듬에 대해서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도반들과 소크라테스 북 클럽에서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을 읽고 있다. 들뢰즈는 목적이라는 방향성을 전제하지는 않지만 진성리더십이 갈구하는 변화의 실현을 가장 잘 철학적으로 표현하는 학자이다. 니체와 더불어 들뢰즈의 저작들은 진성도반들의 필독서이다.
들뢰즈는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은 욕망을 생성하는 기계라고 규정한다. 들뢰즈의 욕망 개념에는 신을 도입하지 않고 세상이 창조된 원리를 설명해보려는 들뢰즈 존재론 철학의 야심이 담겨 있다 .
들뢰즈는 프로이트와는 달리 욕망을 성적 결핍을 전제로하고 이를 채워려는 노력으로 보지 않는다. 들뢰즈의 욕망은 새로운 생성을 위해 부모가 설정한 오디푸스의 알에서 탈주한 욕망이다. 이 욕망의 실체들은 탈주하고 무작정 도주하는 것이 아니라 알 밖으로 탈출해서 알에 갇혀 사는 존재들에게 성적 리비도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즐탁동시를 한다. 이들 존재에 대한 즐탁동시를 통해 성적 에너지의 동질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감금하려는 허구성을 깨우치게 하고 본질적인 욕망을 재배치해서 더 평평한 고원으로의 집단 탈주를 돕는다. 내재한 존재 에너지가 새로운 생성을 위해 N개의 방향으로 질주하여 새로운 운동장과 더 평평해진 고원을 만들어내는 것이 들뢰즈의 욕망의 개념이다.
이런 들뢰즈의 생성철학을 가장 잘 표현하는 시가 울만의 <청춘>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미 빛 용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는 신선한 정신,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십 세 청년보다 육십세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理想)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고뇌, 공포, 실망 때문에 기력이 땅으로 들어갈 때
마음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
육십 세이든 십육 세이든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놀라움에 끌리는 마음, 어린 아이와 같이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
삶에서 환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이다.
그대와 나의 가슴 속에는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간직되어 있다.
아름다움, 희망, 희열, 용기, 영감의 세계에서 오는 힘!
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으면
언제까지나 그대는 젊음을 유지할 것이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라는 눈(雪)에 파묻히고,
비탄이란 얼음에 갇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이십 세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이 없다.
그러나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 일지라도 영원히 청춘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가 생성을 욕망하는 제대로된 기계라면 우리는 나이들수록 젊어져야 한다. 육체의 헐벗은 옷을 벗고 더 나은 생성을 위한 젊음의 새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들뢰즈가 생각하는 나이듬이고 청춘이다. 나이가 들면 나이라는 반복을 통해 젊어지는 사람과 그냥 소멸하는 사람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들뢰즈는 세월이라는 시간의 흐름속에 나이라는 반복이 없었다면 세상은 나이를 제대로 든 사람과 나이만 든 사람을 구별해낼 방법이 없다고 규정한다.
들뢰즈나 울만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생성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카피만 하는 꼰대의 삶을 가장 경계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꼰대는 세 가지 형태이다. 하나는 나이의 헐벗은 옷을 죽을 때까지 벗지 못하고 세월대로 늙어가는 꼰대이고, 둘째는 나이듬을 감추기 위해 헐벗은 옷만 청바지로 갈아입은 청바지 꼰대나 주름진 얼굴을 평평하게 성형한 보톡스 꼰대이고, 마지막이 헐벗은 옷을 마치 새옷인냥 주는대로 받아 입는 젊은 꼰대다.
배정미, 한영수, 외 5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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