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고학년 학생들에게 경영 리더십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현대 기업 경영에서 필요한 공유리더십, 진성리더십, 스튜어드십, 플랫폼 리더십, 적응적 리더십 등 다양한 리더십의 가능성을 섭렵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여성 리더십이다.

학생들에게 여성으로서 리더십을 실현하기 위해 심각하게 고려해보도록 제안하는 전략은 버티기 전략(Outlast Strategy)이다. 버티기 전략은 진성리더들이 사용하는 급진적 거북(Tempered Radical)이 전략의 변형이다. 급진적 거북이 전략이란 목적에 대한 믿음에서는 급진성을 보이지만 자신이 열망하는 목적에 실제 도달은 겸손한 거북이의 방식을 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북이처럼 겸손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해 놓고 이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해서, 지금 가진 것만 가지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에서 조용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우보천리하는 전략이 급진적 거북이 전략이다.

이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가정이 버티기다. 버티기 전략의 핵심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리더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보다 하루라도 더 길게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버티기가 함축하고 있듯이 이 과정은 고난을 요구하지 꽃길은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버티기 전략에 최고로 잘 훈련된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특정한 장난감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부모는 사주지 않고 베기지 못한다. 아이들의 버티기 작전에 속수무책 당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시작은 미미하다. 장난감 가게 앞에서 마음을 사로잡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시작할 것이다. 부모는 집에 비슷한 장난감도 많은데 안 된다고 거절하고 돈도 없다고 협상 제의를 거절할 것이다. 장난감 가게를 떠나면 부모는 이 협상이 종결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는 아니다. 장난감 가게의 상황은 협상의 시작이었을 뿐이지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아이는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다시 틈을 봐서 장난감 협상을 다시 꺼낸다. 손님 앞에서 무례해 보일 것같아서 부모는 점잖게 유보적 태도를 보인다. 손님이 가면 부모는 협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틈만 나면 부모와 했던 마지막 협상 결과를 연결해 장난감을 획득할 때까지 자신에게 유리하게 협상을 종결시킨다.

부모가 생각하는 협상 시한보다 아이가 생각하는 협상 시한이 더 길다. 실제 세상이 돌아가는 시간의 방식도 아이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세상의 모든 중요한 일은 다 반복적 협상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앞의 협상 결과가 다음 협상의 초기값으로 작용하지 부모처럼 한 번 협상이 끝나고 매번 처음에서 다시 시작하는 협상은 없다. 아이는 이런 시간의 개념을 이용해 Outlast Strategy를 제대로 쓴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에서도 이런 Outlast Strategy에 능한 사람들은 조직 정치로 조직 내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개인적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버티기 전략을 써서 결국 승리한 사람들이다. 단 이들이 급진적 거북이가 아닌 이유는 이들이 설정한 목적이 개인적 이득이지 조직을 위한 선한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갖은 수난과 어려움에도 버티기 전략을 통해서 여성으로 임원도 되고 CEO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토의하게 한다. 이들이 얻어낸 결론은 중간에 어려움을 못 이기고 결국 발을 빼게 되면 지금까지 투자한 모든 것이 Sunk Cost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임원이 되고 CEO가 되면 이들의 지금까지 고난과 어려움은 다 축적되어 Sunk Investment가 된다. 이들이 겪었던 어려움은 이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한 전주곡으로 전환된다. 윤여정씨가 아카데미 조연상을 걸머질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은 죽을 때까지 게임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Sunk Investment를 축적해가며 지금까지 버텨왔기 때문이다. 미나리를 찍기 전 생계를 이유로 배우를 그만두었다면 아카데미 조연배우 윤여정은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임원까지 버티는 것을 넘어서 CEO가 되기까지 버텨야 하는 이유도 토론하게 한다. 두 가지 이득이 있다.

첫째, 조직에 성과를 내서 임원이 되었을 때 자신이 겪었던 유리천장의 문제를 이야기하면 회사는 이 문제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성과를 못내고 있는 사람이 유리천장의 부당성을 이야기하면 회사는 불평불만자로 낙인찍겠지만 이미 성과를 통해 검증된 사람이 제기하는 유리천장의 문제는 사실에 근거한 절절한 간증이 된다. 또한 이런 뛰어난 여성 인재가 탄생하는 것을 회사가 막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여성 임원 때문에 여성 후배들은 이런 문제를 겪지 않고 임원에 오를 수 있는 사다리가 마련된다.

하지만 CEO될 때까지 성공적으로 버틸 수 있다면 또 다른 세상이 찾아온다. CEO는 회사의 운동장을 디자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합법적 설계자이다. CEO가 되면 여성의 문제를 넘어서 자신과 같은 소수 배경을 가진 능력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염두에 두고 이들의 장점과 고유성을 발휘해가며 회사에 인간답게 기여할 수 있는 운동장을 설계할 수 있다. 고통 받는 여성을 넘어서 회사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소수배경을 가진 재능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전문가의 놀이터를 설계할 수 있다. 둘째, 자신의 개인적 영광을 넘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후배 여성이나 능력이 있는 소수가 마음껏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더 높은 곳에 더 평평한 운동장을 설계해 놓고 회사를 은퇴하는 유산남김은 Outlast Strategy를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신성한 이유를 제공해준다.

Outlast Strategy를 성공시키기 위해 학생들에게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토의한다. 자신들이 처음부터 제비뽑기 해서 CEO가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말단에서 시작해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말단에 있을 때 이미 CEO가 된 것처럼 십자군 전쟁이나 자신을 바위에 계란 던지기 하는 방식으로 소모하지 말라는 것이다. 회사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Text를 익히고 자신이 회사의 구성원으로 받아 들여지는 기여를 통해 자신이 꿈꾸는 Text를 끼워 넣을 수 있는 틈을 찾아 자신의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회사에 한 기여의 댓가로 자신의 Text를 회사의 Text에 끼워 넣을 수 있는 태피스트리를 기반으로 사다리를 만드는 작업에서 Outlast Strategy를 발휘한다. 회사는 적어도 회사의 Text를 존중하고 이 Text가 실현되는 것에 기여한 사람에게만 자신의 Text를 끼워넣어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것을 허락한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는 기여에 기반한 최고의 겸손함이 요구된다.

Outlast Strategy의 핵심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사람만이 마지막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달한다는 점이다. 결국 회사는 여성 남성 뿐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목적을 염두에 두고 협업을 통해서 이 목적을 실현시켜야 한다. 싸워서 이기는 방식으로 여성 CEO가 되었을 때 자신이 패배를 선사한 능력있는 남성들을 회사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협업의 파트너로 초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성이라 하더라도 싸우거나 정치력으로 이겨서 회사의 CEO가 된다는 것은 회사를 갈기갈기 분열시킨 것을 의미한다 . 결국 이런 회사는 무너진다. 싸움에서 굴욕을 경험한 사람이 이긴자의 초대에 진심으로 응할 개연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싸움에서 이긴 사람을 CEO로 임명하는 회사는 유능한 인재의 반을 스스로 잘라내는 것이다.

ps: 여담이지만 Outlast Strategy에 몰입하는 여성들을 위해 국가나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사기업에 근무하는 여성들의 돌봄과 양육의 사회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사기업에 근무하는 여성들은 우리 미래를 책임진 전사들이자 파트너들이다. 국가나 정치는 가치 일선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사기업 여성들을 위해 기업에 떠넘기지 말고 공기업이나 공무원에 준하는 돌봄과 양육의 사회화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해줘야 한다. 이것이 국가가 같은 국민인 여성들에게 해줘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고 국가가 앞장 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