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등장하는 스크루지 영감, 구약 열왕기상 하편에 등장하는 히스기야, 하이데거의 죽음에 대한 저서 <시간과 존재>에는 <유예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죽음에 대한 경험이다. 스쿠리지 영감은 미래의 유령을 통해 죽은 후에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미래를 보게된다.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들자 하나님께 열렬히 기도하여 15년간의 삶을 더 살수 있도록 시간을 유예받는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사람들은 죽음과 직면해서만 자신의 텅 빈 존재에 대해서 각성을 한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하이데거는 죽음과의 일대일 대면이 존재를 다시 소생시키는 원천이라고 보았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아무나 미리 자신의 죽음을 만나는 행운을 얻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기도하거나 죽을 각오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만 자신이 마지막 순간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비참하고 허망하게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깨달는다. 비참하게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게 되는 비전을 경험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 할 것이라는 것조차도 깨달치도 못한다. 죽음의 유예기간은 선택적으로 찾아온다. 오직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선택적으로 먼저 와서 죽음 이후의 미래를 비전으로 보여준다.

죽음을 맞이해서 아무 것도 남길 것이 없다는 것을 미리 깨달는 순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죽음 이후에 자신의 이름으로 남겨줄 삶의 유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각성한다. 또한 이들은 자신에게 유예된 죽음의 시간을 이용해 유산의 씨앗을 현재로 가져와서 현재의 삶 속에 배태시킨다.

열심히 산 댓가로 죽음 앞에 먼저가서 죽음과 조우한 현재 순간과 지금부터 물리적으로 죽을 날 까지의 차이가 죽음의 유예기간이다. 히스기야는 해시계를 거꾸로 돌려 마지막 죽기까지 15년간의 시간을 유예받았다. 스크루지 영감은 미래의 유령을 따라 자신의 죽은 모습에 대한 꿈에서 깨어난 시간과 실제로 죽은 시간이 유예기간이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죽음과 직면해 남겨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현재의 시간과 물리적 죽음을 만나는 시간이 유예기간이다. 더 열심히 산 사람들이 이 유예기간이 있음을 먼저 깨달고 더 긴 유예기간을 얻어낸다.

스크루지 영감은 죽음 이후의 자신의 비참한 삶을 반성하고 현재의 자신의 삶에 근원적 변화를 시도했다. 하이데거도 죽음과 직면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각성하고 이것을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을 때 존재를 채워가는 근원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근원적 변화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이 유예기간을 이용해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히스기야는 죽음에 대해서 15년간의 비교적 긴 시간을 유예받았음에도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들인지 즉 자신의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는데 15년의 유예기간 동안 세월을 허송했다. 이방의 신을 숭배하는 바벨론과의 동맹으로 자신이 살아 있던 15년 동안에는 편안하게 노후를 보냈는지 모르나 결국 유예기간동안 하나님이 선포하는 미래를 만들지 못해 이스라엘이 종말을 가져오게 한 장본인이 되었다.

죽음의 유예기간이라는 측면에서 젊었을 때 향유한 성공은 자신을 두번 죽이는 행위에 가깝다. 남들보다 젊어서 성공했다는 것은 머리좋고 외모가 준수하고 예술적 재능을 가진 부모에게 태어난 유전자 복권당첨금의 결과이지 오로지 자신만의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여기에 이런 재능을 훈련시킬 수 있는 재력도 있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면 신은 이 사람에게 이중 삼중의 복권당첨금을 타게 한 것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복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유예기간은 먼저 찾아와 더 긴 시간이 주어지지만 부모의 유전자 복권을 타서 젊어서 승승장구한 삶을 산 사람들은 이 복권 당첨금을 다 썼을 나이인 오십 중반즈음 죽음의 유예기간에 대한 기회가 찾아온다.

유전자 복권을 타서 젊었을 때 승승장구한 사람들은 대부분 히스가야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던지 자신이 탄 복권당첨금이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깨달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이 자신에게 왜 이런 엄청난 복권의 행운을 주었는지를 깨달는 사람들만 죽음의 유예기간을 덤으로 선물받는다. 신으로부터 죽음의 유예기간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들만 부모가 물려준 삶의 아바타로 흔적없이 죽는 삶에서 자신의 삶을 산 사람으로 부활한다. 이들은 죽음의 유예기간을 통해 세상과 하직하기 전 세상에 남길 목적을 찾고 이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서 자신의 일과 비즈니스에 뿌리를 내리게 해서 세상을 공진화 시키는데 마지막으로 기여한다.

누구나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와 부모가 물려준 재산의 후광이 빠지는 나이인 50 중반을 넘는다면 이 유예된 15년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간이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영광된 과거를 선전하고 자랑하고 마지막 노후를 편안히 즐기다가 결국 미래를 남기지 못하고 파국을 당했다. 히스기야는 죽는 순간에 미래를 구성하는 후세에게 넘겨줄 유산에 대한 메모리가 있어야 새로운 미래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죽는 순간에도 알지 못했다.

50대 중반이 넘었다면 이 시점은 지금 당장 세상을 하직해도 남겨줄 있는 유산을 재정비하고 마무리하는 기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유예된 15년간 후세에게 삶의 기억으로 넘겨줄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하는 삶을 살 것인지가 결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