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던 환대가 다시 이슈로 등장했다. 이번에는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 문제이다. 의협은 법 개정안을 강행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향후 코로나백신 접종을 염두에 둔 반응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 경기지사는 국민의 고통과 생명을 불모로 잡는 이런 파업이 근절되게 하기 위해 간호사들에게도 기본적인 의료행위를 하게 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병원(Hospital)의 존재 이유는 환대(Hospitality)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인기 드라마가 된 이유는 의사들에 대한 칭송이 아니라 이런 환대를 못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에 대한 경고 때문이다.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병원에서 가장 먼저 환대가 고갈되기 시작했다는 문제를 고발한 것이다. 이런 문제가 극복된 병원의 이상적 사례를 통해 환대를 다시 복원하는 이야기를 솔루션으로 보여준 것이다.

요즈음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소크라테스 클럽에서 도반들과 같이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을 읽고 있는데 레비나스는 세상이 전쟁터로 변모한 이유를 타인에 대한 고통을 물건 취급하는 일상에서 찾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환대가 사라진 것이 전쟁의 발단이라고 고발한다. 일방적으로 물건 취급 당한 타인이 물건 취급한 주체에게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해지면 보복으로 싸움을 걸고 이 싸움이 번져 사회를 지금과 같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를 만들었다고 규정한다.

의료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우리는 환대는 고사하고 등급으로 분류된 물건 취급을 받는다. 등급은 동일성을 전제로 한다. 동질성의 잣대로 측정해서 평균을 내고 평균을 중심으로 상 중 하의 범주를 분류해낸다. 병원을 가도 우리는 범주로 분류된 고장 난 기계일 뿐이지 고통받는 인간은 아니다. 고장 난 기계도 등급을 평가해 치료의 순서나 질이 결정된다.

환자 체험이라는 고상한 말은 병원의 마케팅 전략일 뿐이다. 백화점에서 아무리 VVIP 등급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는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환대받지 못한다. 이들은 우리에게 환대를 흉내 내 한정적으로 체험시켜 준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 돈을 내지 못하면 내 환대 등급은 VVIP를 유지하지 못한다. 결국 내가 인간으로 존엄성을 인정받았던 것이 아니라 내가 낼 수 있는 돈으로 환대를 조건적으로 샀을 뿐이다.

진정한 환대는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 국회의원, 재벌 등 가진 사람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 혹은 사회의 상위 1%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못 가진 미망인과 고아로 상징되는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행해질 때만 실현된다. 특권계층이 이 특권의 범주를 튀쳐나와 소수를 위해 보여 주는 환대가 진실된 환대이다. 사회적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사회적 소수도 나와 같은 고통을 가진 인간으로 생각하고 이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손을 맞잡는 긍휼감이 전제된 환대가 진정한 환대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우리는 가족을 제외한 누구로부터도 진정으로 환대를 받은 경험이 없다. 환대를 받는 사람들은 환대를 돈으로 살 수 있는 VVIP 특권층들 뿐이었다. 환대의 사회화와는 거리가 먼 대한민국에서 모두가 힘들게 투쟁하고 있다.

다양성은 힘 있는 다수가 소수에게 자신의 범주적 차이를 스스로 소멸시키고 상대를 더 나은 차이를 위한 협업에 초대하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범주적 차이를 소멸시키고 공동체를 위한 더 나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 다양성의 원리가 제대로 복원되지 못한다면 환대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범주적 차이로 상대를 대상화하지 않고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환대하는 행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이런 진실한 환대는 가진 사람들 특권층의 사람들이 다른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아픈 사람과 손을 잡고 공동체가 되어 아픔의 문제를 해결해가려는 성향인 긍휼감(compassion)이 환대의 기저에 깔려 있을 때 가능해진다. 또한 이런 환대는 가족간 초대라는 혈연적 경계를 넘어서 목적과 가치의 새로운 울타리를 마련하고 이 넓어진 울타리에 상대를 초대해 미래를 같이 만들 수 있을 때 완성된다. 진실된 환대의 시작은 긍휼감이고 이 환대의 완성은 더 나은 미래이다.

가진 사람들 특히 특권층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편견의 원천인 사회 범주적 차이가 극복되고 평평하고 균열이 사라진 운동장이 세워지고 이를 통해 나은 차이가 만들어지는 미래를 경험할 때 제대된 환대가 완성된다.

지금 의료계는 국민을 대상으로 환대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싸움에서 의료계가 이긴다면 대한민국의 정의는 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