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푸른 뱀을 뜻하는 을사년이다. 뱀은 전통적으로 다산과 치유를 의미한다. 아마도 다산은 뱀이 알을 많이 낳기 때문일 것이고 치유는 뱀이 허물을 벗어가며 자신의 생명을 키우기 때문일 것이다.

희랍신화에서도 뱀은 치유의 상징이다. 아폴론의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는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은 글라우코스(Glaukos)를 치료하던 중 뱀 한 마리가 방안으로 들어오느 것을 목격한다. 놀라서 지팡이로 뱀을 죽인다. 뱀이 죽자 다른 뱀이 약초를 물고 들어와 죽은 뱀의 입 위에 올려놓자 죽었던 뱀이 살아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뱀이 했던 대로 그 약초를 글라우코스의 입에 갖다대어 그를 살려낸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존경의 의미로 자신의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한 마리의 뱀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으로 추앙된다.

뱀이 다산할 수 있는 능력은 변화한 환경에 맞춰 자신의 허물을 벗겨내는 능력에 기반한다. 뱀이 허물을 못 벗으면 다산은 커녕 죽음에 이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허물을 자복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허물을 벗겨내고 새로운 유연한 가죽으로 몸을 감쌀 수 있는 사람들만 유기적 성장을 경험한다. 과거의 허물에 집착해 허물을 벗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보호기제라는 갑옷을 입고 질식사 할 운명이다. 인간은 학습하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스스로 허물을 벗을 때 온전한 인간으로의 되어감을 경험한다. 인간이 허물을 벗는다는 것은 죄가 남들에게 벗겨져 죽음을 당하기전에 먼저 자복하고 벗겨진 허물 속 상처를 치유하는 행동을 말한다. 인간인 이상 성장하는 과정에 허물이 생기는 것은 필연이다. 죽는지 유기적 성장을 구가하는지의 문제는 이 허물을 스스로 벗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지 고통이 무서워 벗지 못하다 남들에 의해 벗겨짐을 당하는지에 달려있다.

껍질(허물)은 죽음과 생명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환경과의 경계를 유지해가며 정체성을 표현해주는 껍질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문제는 환경이 변화했음에도 자신을 보호해주는 껍질을 벗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게 되고, 변화한 환경에 맞춰 자신의 껍질을 벗는 고통을 감내해 새로운 껍질을 생성하면 생명을 구가한다.

구약의 창세기에도 뱀이 등장한다. 에덴 동산에 살던 아담과 이브는 뱀의 설득으로 지혜의 나무에 달려 있는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나온다. 기독교인들에게 뱀은 사악한 동물로 해석되나 이것은 모든 것을 선과 악의 이원론으로 규정하는 유대 율법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해석이다. 어떤 점에서 뱀은 인간을 지혜의 세상으로 이끌어준 맨토이다. 더는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해가며 에덴 동산에서 살 수 없었던 아담과 이브는 에덴에서 나온다. 에덴에서 나왔을 때는 자그만 무화과 잎으로 자신의 치부만 겨우 앞가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몸과 지혜가 성장할 수록 더 큰 나뭇잎이나 거죽을 마련해 자신의 몸, 마음, 정신의 치부를 가려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치부가 커져감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용기를 가질 때 더 크고 유연한 가림막을 준비해 나름 지혜롭게 앞가림 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허물을 벗는 뱀 덕분에 인간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학습하는 죄인으로 허물을 벗고 더 유연한 거죽을 마련함을 통해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된 셈이다. 뱀은 인간에게 지혜를 가르쳐준 맨토이다 동역자다.

씨앗이 생명을 키워내는 원리도 마찬가지다. 씨앗의 껍질이 묘종을 키워내면 묘종이 만든 새로운 껍질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원리다. 씨앗이 묘종이되고 묘종이 식물을 길러내는 원리는 모두 환경에 맞춰 단계적으로 허물을 벗고 새로운 피부를 마련하는 과정이다. 생물이 성장한다는 것은 과거의 허물을 벗어내고 커진 몸에 맞는 새로운 껍질을 다시 만들어내는 연화작용이다. 땅에 뿌려진 씨앗이 연화작용에 성공해 자신의 껍질을 연화시켜 산소와 물을 이입시켜 씨앗 속 영양을 에너지로 바꾸지 못한다면 씨앗은 말라 비틀어져 죽는다. 성경은 씨앗이 썩으면이라고 표현하지만 씨앗이 썩는 것이 아니라 씨방을 담고 있는 씨앗의 껍질이 물로 부드러워지는 연화작용을 의미한다. 연화작용으로 껍질이 유연해지면 땅속 산소가 이입되어 씨앗이 가진 영향분을 에너지로 바꾸고 이 에너지로 씨방이 뿌리의 형태를 만들도록 돕는다. 뿌리가 형태를 만들면 씨앗의 껍질은 온전하게 허물을 벗는다.

인간도 8년마다 연화작용을 통해 자신의 피부를 완전히 바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화는 몸이 더는 자생적으로 연화작용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조직에서 새로운 환경에 맞춰 낡은 껍질을 벗지 못해 새로운 껍질을 만들지 못하는 현상을 자기방호(Defensive Routine or Self Sealing) 기제가 생겼다고 이야기한다. 잘못된 삼투막처럼 자신이 옳다는 이야기는 일방적으로 쏟아 내지만 밖에서 새로운 정보와 에너지가 이입되지 못해 조직이 정체된 현상을 의미한다.

허물을 벗고 새로운 가죽으로 옷을 만드는 과정은 치유를 통한 근원적 변화를 의미한다. 허물과 자신의 가죽을 벗은 개혁의 과정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이 고통을 이겨내 더 유연한 가죽이 만들어졌을 때 우리는 극단적 희열을 경험한다. 열정(Passion)의 의미는 허물을 벗는 고통을 이겨내어 새로운 가죽으로 더 최적화된 솔루션을 얻어 몸, 마음, 정신이 치유되었을 때 느끼는 희열이다. 누군가가 문제를 고식적으로 해결해 아픔이 생겼고 무서워서 여기에 거적을 덮어놓고 거적 밑에 구더기가 생겼을 때 거적을 들춰내고 공동의 아픔을 직시하고 치유할 수 있을 때 느끼는 집단적 희열이 긍휼(Com + Passion)이다. 자신의 아픔을 직시하고 허물을 걷어낼 수 있는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열정이나 집단적 희열을 체험할 수는 없다. 허물을 걷어내고 상처를 들춰볼 수 있는 용기가 없는 이들에게 치유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대한민국은 집단적으로 느껴온 고통인 한을 온전하게 치유했을 때 신바람이라는 집단적 에너지를 체험했다.

허물을 벗는 뱀인 새해 을사년에는 모두가 자신의 아픔을 감추기 위해 덮어 놓은 거적을 들춰내고 상처를 직시하고 치유하는 용기를 통해 근원적 변화라는 희열을 체험할 수 있었으면 한다. 상처 투성이인 대한민국도 아픔에 대해 진통제나 반창고를 붙여주는 잘못된 치유 행위를 벗어나 거적을 들추어 상처를 직시하고 긍휼의 사랑으로 상처를 집단적으로 해결해 모두가 신바람을 체험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온 국민이 치유의 희열을 경험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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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작년 12월에 발매된 급진거북이(잉걸북스, 신승철)는 개인, 집단의 상처를 긍휼의 사랑으로 직시하고 목적으로부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불로초를 가져와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하여 사부작 사부작 근원적 변화를 완성하는 전략이다. 급진거북이는 진성리더가 치유를 통해 변화를 완성하는 다양한 미시적 전략과 거시적 전략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