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1-06 22:50
[N.Learning] 영웅의 여행 (Hero's Journey)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4,524  

 

2. 영웅의 여행

     경영학자들의 실험대로 조직이던 개인이던 냄비 속의 개구리가 되어 오랫동안 버티기 전략을 구사하다보면 어느 시점에는 자신 삶아 죽어가는 개구리가 되어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되는데 이때는 이미 어떻게 손을 써 볼 수 있는 시점을 지난 것이다. 이미 변화의 시기를 놓쳐서 더 이상 생각대로 몸과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게 된 것이다. 이때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삶아죽는 개구리가 되어 점점 죽음의 정점을 향해 다가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고통스럽게 관조하는 일 뿐이다.

    점진적 죽음의 길로 접어든 조직이나 개인들이 보이는 공통적 특징은 이미 생명의 활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관공서도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20여 년 전 한 중앙부처의 관공서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경험중 하나가 혹시 내가 공동묘지 한 가운데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었다. 왜냐하면 그 관공서에서 일하는 분들은 똑 같이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고 전부 표정도 없고 말도 없었다. 이분들이 너무나 말도 없고 표정도 없지만 움직이는 모습에 놀라 혹시 이분들이 발 없는 유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득 확인해 보기 위해 발로 시선을 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신을 안 차리고 있으면 자신이 공동묘지에서 유령들과 대면하고 있다는 느낌이 그 자체였다. 점진적 죽음을 격고 있는 대표적 조직의 특성이다.

    반면 근원적 변화의 중심에 있는 조직은 활기에 차 있어서 항상 왁자지껄하다. 한 때 한국에도 유행했던 브랜차드 그룹(Lundin, Paul, Christensen, Blanchard, 1995)의 피쉬 (Fish) 운동의 배경인 어시장과 같은 분위기가 그 일반적 특징이다. 이런 조직은 조직을 둘러쌓고 있는 환경에 지속적으로 가치를 공급해 주고 이에 대한 대가로 환경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는 환경과 조직 간의 상호 피드백 루트가 유기적으로 잘 조성되어 있어서 조직의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점진적 죽음의 징후들 


  상당기간 근원적 변화를 향한 딥체이지를 무시하여 점진적 죽음의 행로를 가고 있는 조직이나 개인들은 환경과의 에너지 조율을 책임지고 있는 피드백 루트가 굴절되어 있거나 끊겨 있다. 이처럼 환경으로부터 공급받는 에너지원이 끊겼을 경우 조직이나 개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부절연기제 (inside sealing mechanism)나 자기방호기제 (self defensive routine)를 동원하여 환경과의 교통을 스스로 차단하게 된다. 이와 같은 행동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데 이런 행동은 조직과 개인의 점진적 죽음을 더욱 가속화 시키게 된다.

     우선 개인들은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이 점점 끊긴다는 느낌을 받는다. 부하들이나 후배들이 옛날 잘 나갈 때 한 마디 하면 눈을 반짝이며 경청 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집중해서 듣지도 않은 것 같고 어느 시점까지 피드백을 해주기로 해 놓고도 흐지부지 지연시키거나 무시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을 경험한다면 피드백 루프가 끊어진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자신이 하는 말들이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성이 떨어졌는데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경우이다. 이런 상사들은 흔히 직권으로 부하들에게 피드백을 강요하는데 이런 황당한 상황을 경험한 부하들이 자신들이 당한 황당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모임에서 이 상사에 대한 뒷담화를 늘어놓게 된다. 이처럼 뒷담화는 힘 있는 당사자가 억지로 피드백을 강요할 때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둘째는 자신도 모르게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반복해서 하는 현상인 공 테이프 현상 (Taping)이 발생한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처럼 끊어진 공 테이프 도는 현상은 술에 만취해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면 발생하는데 정상적인 사람들도 환경과 오랜 기간 교감이 끊어져서 새로운 에너지가 투입되지 못하고 기존의 삶의 대본이 업데이트 되지 못하면 필름이 끊긴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은 공 테이프 도는 현상이 생긴다. 작게는 10년 전 좋아했던 18번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면 이것도 일종의 비슷한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장기간 변화하지 못해 환경과의 교감이 끊기게 되면 옛날에 하지 않았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자주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자신만의 세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게 되는데 이런 예측이 점점 어긋나기 시작하고 이 결과가 자신에게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피드백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과의 괴리로 세상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상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실수는 대부분이 작은 것에서 시작하나 결국은 앞으로 오게 될 더 큰 실수를 동반한 점진적 죽음의 시그널에 불과하다. 

    넷째, 피드백 루프를 상실했음에도 계속 복원이 안 될 경우 개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적 기제 (defensive routine)를 작동하게 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갑자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현상이 스스로에게도 보이기 시작하고 더 나아가서는 상대방의 성취를 나서서 폄하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변명과 억지로 일관하거나, 자신의 문제를 남의 문제로 외재화 시키는 현상들이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자기 방어기제의 발동은 세상과 자아와의 관계를 더욱 단절시키게 되고 결국 이것이 정도가 지나치게 된다면 자신의 문제를 SBS의 SOS에 방영되는 노예 할아버지, 노예 며느리, 등에 나오는 케이스와 비슷한 케이스로 전락시키게 된다. 문제는 내재적 절연이나 방어적 기제는 자신들이 이와 같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시키는 기제이기 때문에 이런 기제를 쓰게 되면 정작 본인들이 자신의 문제는 더 잘 모르게 된다는 점이다.

    점진적 죽음을 택한 조직도 환경과의 단절로 개인들과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대표적 현상이『우리 것 타령 신드롬 (not invented here syndrome)』이다. 한번 성공을 거둔 조직들은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서 자신들의 것만이 최고인 것으로 믿게 되고 다른 모든 경쟁사의 제품들을 아류로 폄하하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다른 경쟁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혁신의 트렌드를 놓치게 되고 이러는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환경으로부터 오는 피드백에서 멀어지고 업계에서의 순위도 쳐지는 현상이 바로 우리 것 타령 신드롬이다. 한때 최고였다는 회고록이 자신들만의 정서에까지 뿌리를 내렸을 경우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우리 회사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한 마디가 모든 것의 옭고 그름을 결정하는 잣대로 작용하여 기존의 것과 다른 것에서 시작하는 혁신의 싹을 시작부터 자르기 때문이다.

    점진적 죽음의 길에 들어선 조직들에게서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할 일없이 바쁜 현상이다. 이와 같은 조직들은 대개가 비전이 실종되어서 조직이 무엇을 해야 환경에 가치충격을 주고 이를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는지에 대한 방향자체를 잃어버린 경우이다. 이에 대해 구성원 모두가 불안해하고는 있지만 길은 보이지 않고 그럼에도 자신들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선 뭔가 라도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이다. 가는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전거를 돌리거나 세우기보다는 페달을 밟지 않을 경우 자전거가 넘어질 것을 더 우려해서 계속 페달을 밟고 있는 조직이 바로 이런 조직이다. 이런 조직에서 구성원들은 뭔가에 바쁘게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환경과의 피드백이 끊어진 상태여서 바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구성원들은 더 기진맥진해지는 함정에 빠지게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점진적 죽음의 길에 들어선 조직들은 결국 집단사고로 종말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사고는 우수한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평범한 개인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려 결국은 조직을 환경으로부터 더욱 단절시키고 결국은 죽음으로 몰고 가는 현상을 지칭한다. 집단사고는 우수하다는 핑계로 비슷한 배경을 가진 동질적 사람들로 집단을 구성하게 될 때 생기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자신이 우수한 집단이라는 믿음을 가진 동질적인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유대감이 증폭될 경우에 집단 사고의 개연성은 더욱 높아진다. 집단사고에 빠지게 되면 환경에서 들어오는 정보보다는 자신집단이 만들어낸 환경과 괴리된 정보를 더 맹목적으로 신봉하게 된다. 설사 한 구성원이 뭔가 환경에 대한 인식에서 중요한 결함이 있음을 알더라도 이에 대한 견해를 표할 경우 집단적 제재를 당하게 된다. 이런 조직의 구성원들은 소위 잘 나가는데 평지풍파 일으키지 마라 (don't rock the boat) 신드롬으로 환경과의 단절을 정례화하게 된다. 조금만 다른 견해를 표명해도 긁어서 부스럼내지 마라, 왜 불난 집에 자꾸 부채질하느냐? 잘 되고 있는데 너만 왜 그러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등등의 비공식적 공식적 제재가 가해진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조직의 목적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고 조직구성원의 화합이 조직의 암묵적 목적으로 부각한다. 결국 환경과의 내적단절 (inside sealing)은 심화되고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내린 결정이 주변에 크나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때까지도 자신들이 어떻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대우사태나나 엔론사태와 같이 이와 같은 집단사고는 조직에서 가장 힘 있는 집단인 최고경영자 팀과 같은 파워집단에 의해서 주로 주도되어진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이처럼 환경과의 피드백 루프의 단절로 점진적 죽음의 코스에 돌입한 경우의 공통점은 주체들은 자신이 환경과 괴리되어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들만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에게 객관적 피드백을 전달하면 자신들은 문제가 없는데 주변에서 이상하게 더 난리라는 반응을 보인다.


영웅의 여행


    퀸 (Quinn 1996)은 신화학자 캠벨 (Campbell 1949)의 영웅들의 신화분석을 토대로 영웅들은 다 점진적 죽음에 이르고 있는 자기 자신이나 조직의 현실을 먼저 깨닫고 근원적 변화를 주도하여 자신과 조직을 죽음의 나락으로부터 구해낸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근원적 변화를 통해서 자신이나 조직을 죽음의 나락에서 구해 낸 일상적 우리와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의 여정 (Hero's Journey)과 같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음은 캠벨 (Campbell)이 분석한 영웅의 여행에 나오는 공통된 시나리오다 (Campbell 1949, p. 245):

신화 속의 영웅은 일상의 터전인 오두막이나 성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는 자발적으로 모험의 문턱에 들어서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어둠의 존재와 마주치게 된다. 영웅은 그 어둠의 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어둠의 왕국(용과의 전투, 마법의 주문 등이 존재하는)으로 들어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통을 이겨낸다. 이러 이러해서 어둠의 왕국 문턱을 통과하면 그는 이제 전혀 생소한 그러나 왠지 친근한 힘이 느껴지는 세상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 힘은 그를 시험에 들게 하여 그의 여행에 대한 의지를 위협한다. 그가 수많은 위험을 뚫고 어둠의 왕국 최종 기착지에 도착했을 때 그 앞에는 최대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다. 그는 여기서 승리하고 드디어 자신이 쟁취하려는 것을 손에 쥐게 된다. 신성한 결혼, 창조주 아버지로부터의 인정, 신으로의 승격 등이 그 쟁취의 내용이다. 또는 만약에 어둠의 힘이 여전히 그에게 적대적인 채로 남아 있다면 그가 마주쳤던 혜택을 훔쳐 나오는 것이 쟁취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가령 프로메데우스의 경우처럼 불 훔치기 등이 그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현실세계로 귀환해야 하는 일이다. 만약 어둠의 힘이 그를 축복한다면 그는 특사가 되어 그 힘의 보호아래 앞으로 나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는 쫓기게 되고 변신비행, 장해물 비행 등 탈출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초월적인 힘은 귀환의 문턱 뒤에 남겨지고 이제 영웅은 두려움의 왕국으로부터 당당하게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그가 가져온 혜택은 세상을 구제한다. (불, 불로장생의 영약).

    캠벨과 퀸의 분석을 차지하고라도 이와 같은 영웅의 이야기가 적어도 20 세기까지만 해도 진짜 몇몇 영웅의 이야기였는지 모른다. 누구 누가 어떻게 해서 억만장자가 되었다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느니 등등의 영웅의 여행은 진짜 몇몇 영웅들에 의해서 독점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영웅의 여행은 점진적 죽음의 나락에서 자신을 구원해 일류로 거듭나려 혼신의 힘을 다 바치는 우리 자신 모두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현대적 의미의 영웅들의 이야기는 자기 자신을 근원적으로 변화시켜 주어진 범위에서 세상에 신성한 차이를 남기려는 우리와 같은 소영웅들이 써나가는 이야기이다.  또한 21세기에서 영웅의 여행은 누구나 일류가 되기를 열망하는 조직 혹은 개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되는 전제조건이다. 역으로 스스로가 이와 같은 영웅의 여행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필연코 자기 자신은 이류의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선택한 것이 될 것이다. 

자신에 대한 근원적 변화와 조직의 근원적 변화와의 관계

    21세기 영웅의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바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꺼려하고 회피하고 있는 자신과 조직을 점진적 죽음의 나락에서 성공적으로 구해내는 일이 영웅의 여행에 버금가는 일이란 점이다. 문제는 조직에 대한 근원적 변화와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리더자신에 대한 근원적 변화가 서로 우선순위에서 서로 상충할 때인데 이런 경우 리더 자신에 대한 근원적 변화가 조직에 대한 변화에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구해내서 변화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지 못한 사람들이 조직의 근원적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구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자신에게 부여된 리더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구성원에게 변화를 외칠 경우 구성원들은 이 리더의 말에 대해서 신뢰하기 보다는 이를 사기행각으로 규정할 가능성이 높다.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의 변화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해낼 수 있다고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근원적 변화를 향한 영웅의 여행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최대 장애는 전통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거나 판단해야 할 때 소위 기존의 패러다임과 주변사람들의 대본인 팬시톸 (fancy talk)에 너무 의지한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까지 팬시톹을 구성하고 있는 대분이 우리의 삶을 조직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고전적 영웅들이 살았던 때와는 달리 우리가 처해있는 지금의 환경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은 변화무쌍한데 자신은 과거의 신화만을 기반으로 행동한다면 자신을 처음부터 이류의 나락에 떨어지도록 선택하는 것이 된다. 조직의 차원에서도 소위 세계적 일류라고 자칭하던 대부분의 기업들이 단지 중견기업에 불과한 기업보다 더 쉽게 망하고 일류자리를 추월당하는 것도 이같이 자신의 과거에 뿌리를 둔 고루한 일류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열쇠를 자신이 과거에 이루어 놓은 것에서, 기득권에서, 남들에게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려받아, 자신만의 패러다임, 자신만의 변화, 자신만의 대본 그리고 자신만의 틀을 재창조하는 영웅의 여행만이 자신을 이류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미래의 일류는 이미 성공한 남들이 설정해서 우리에게 강요한 고루한 일류의식에 기반을 둔 대본을 벗어 던지고 불확실성의 망망대해에 자신 있게 자신의 몸을 던져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과 조직의 몫이다. 한국이 미래에 진정 일류국가가 될 수 있는지는 자신만의 영웅여행의 시나리오를 짜고 이를 기반으로 불확실성의 망망대해에 자신 있게 몸을 던지는 사람과 조직이 앞으로 얼마나 많이 생길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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