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18 20:34
[N.Learning] 더 높은 곳에 세워진 평평한 운동장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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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곳에 세워진 평평한 운동장
화성인, 금성인, 지구인?
존 그레이가 <여성은 금성에서 남성은 화성에서>란 책을 출간한지 27년이 흘렀다. 책의 핵심은 원래 여성은 금성에서 남성은 화성에서 온 사람들인데 화성에 있던 남성들이 금성의 여성을 발견하고 이주해서 같이 어울려 살 때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살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아름다운 지구를 발견하고 지구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대기권에 진입할 때 충격으로 남성들은 금성에서 온 사람들이고 여성들은 화성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것이다. 기억상실증으로 자신들이 다른 별에서 왔다는 것을 망각하는 순간 남성과 여성이 서로 반목하고 편견으로 싸우는 현상이 극대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레이는 2018년 개정판을 냈다. 여기서는 남성과 여성을 넘어선 우리를 더욱 강조하고 기존의 성 내러티브를 현대에 맞게 다시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과 여성이 다른 범주의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갈등과 반목과 편견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범주적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말자는 주장이다.
나는 이 책이 주장하는 논조에 100% 동조하지는 않는다. 아니 이 책이 주장하는 논조에 마음이 불편하다.
결정적으로 이 책의 주요한 논거는 여성과 남성 간 생물학적 혹은 진화심리학적 차이이다. 물론 이런 생물학적 차이와 심리학적 차이를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생물학적 진화적 범주적 차이로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때 결국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성분업을 고착화 시키는 일이다. 성분업은 생식과 자손의 번성을 위해 성간의 협동을 옹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과 여성 간 넘을 수 없는 생물학적 진화론적 차이를 절대화시켜 결국 이 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계곡을 만드는 일에 공헌한다.
우리는 화성이나 금성 각자의 별로 돌아가서 생존할 수도 없고 한 때 같이 어울려 강강수월래를 부르던 금성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범주라는 이분법을 넘어 개별적 인간으로 존중해가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협업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장을 건설하는 일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차별이 따라올 수 없는 더 높은 곳에 세워진 운동장이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야 할 운동장이다. 이 운동장에서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대문자 성에 붙은 범주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여성과 남성이 그냥 인간으로서 존재우위를 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는 운동장이다. 세월이 흘러 이 운동장이 단단해지고 평평해지고 당연시 받아들여졌을 때 세상을 위해 많이 기여한 전문가의 범주에 여성과 남성의 숫자를 우연히 세봤더니 우연히도 50대 50이 된 세상이 성 다양성이 구현된 세상이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충분한 애도가 끝나면 이번에 논란이 된 사건에 대한 진실이 이런 운동장을 만드는 차원에서 제대로 규명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운동장이 만들어지지 못해 지금까지 피해를 봤거나 피해자체를 숨겨왔던 여성들에게 이런 운동장이 가능하다는 비전을 보여줌으로 이들의 느꼈던 고통의 문제도 환대하고 용서받아야 한다.
이번 사건이 제대로된 대문자 남성과 대문자 여성을 넘어 소수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물꼬가 되었으면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문자 남성들이 성에 대해 보이지 않는 건널 수 없는 계곡을 다시 만드는 팬스룰을 정당화시키는 쪽으로 사건을 왜곡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문자 여성 정치가들도 비난을 앞세워 세상을 다시 대문자 여성과 남성으로 갈라세워가며 서로 건널 수 없는 계곡을 만드는 싸움터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충분한 애도가 끝났다면 진실에 대해서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할 시간이다.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재현되지 않는 진실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다. 여성 남성 소수자 모두가 연대해 더 높은 곳에 건설해야 할 운동장에 대해 차분하게 논의할 시점이다.
여성과 남성 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해낸 모든 소수에 대한 범주적 차이가 우리 삶에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 평평한 운동장만이 우리가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기여해왔던 차별의 죗가에 대해 제대로 속죄하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범주적 차이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 세상이 다양성이 최고로 성숙한 세상이다. 대문자 여성과 대문자 남성에 대한 내러티브가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치부되는 세상이 성이 민주화된 세상이다. 사람이 범주적 구속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다양성이 최고로 성숙된 세상이다.
이번의 피해자가 절규했듯이 "저에게 왜 그러셨어요"라고 인간답게 되묻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일 수 있는 사회가 다양성 사회다. 무슨 범주이든 범주가 감히 개인의 존엄성을 구속할 수 없는 세상이 다양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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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Facebook HR은 진화심리학자들이나 지배적 젠더를 주장하는 경향이 성을 정치적으로 범주화 해가며 협곡을 만든다고 보고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Facebook은 직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성 범주를 2개가 아닌 50개 이상 제공하고 있다. 직원들은 원한다면 누구든지 자신의 성 정체성을 2개 이상 선택할 수 있다.
Nam Sup Ahn, Hyunsim Yu, 외 4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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