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시장의 변호인이었던 정철승 변호사가 자신의 페북에 쓴 글이 논란이 되고 있다. 논쟁은 역시 펜스 룰을 지키자는 것이다.

펜스 룰은 Fence(울타리)와 같이 읽혀져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울타리를 치자"라는 의미로 읽히지만 어원은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펜스(Pence)가 "와이프 이외의 다른 여성과 같이 식사 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라는 룰을 가지고 있다고 공표함에 의해서 유명해졌다. 펜스 룰(Pence Rule)의 원조는 개신교 복음주의 목사였던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이다. 1948년 캘리포니아의 대중 집회에서 그 당시 문제가 되었던 목회자의 성 스캔들 문제를 대응하기 위해 펜스 룰을 제시했었다. 리스크에 스스로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목회자라면 여성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다시 펜스 룰을 들고 나오는 것은 변호사의 직업관을 반영한 것이다. 변호사들의 눈에는 성공한 남성에게 여성과의 성문제는 가장 큰 리스크이다. 변호사들은 성과 관련한 추문은 설사 누명이라도 해도 주로 가해자로 등장하는 남성이 이것이 누명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펜스 룰이 리스크에 대한 남성의 자기방어라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Z 세대 남성들도 펜스 룰을 옹호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심심치 않게 기사화 되고 있다. 요즈음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에 기득권 남성들과 Z 세대 청년들의 연대는 팬스 룰을 통해 만들어졌을지도 추론을 가능케한다. 이들이 펜스 룰을 옹호하는 이유는 다르지만 이들이 겨냥하고 있는 정치적 대상은 여성으로 같다. 성공한 기득권 남성들이 펜스 룰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성공을 지켜나가는데에 대한 리스크 때문이다. Z 세대 청년들의 이유는 다르다. 이들이 같은 또래 여성에게 펜스룰을 적용하는 이유는 일자리 문제로 심각하게 경쟁하는 대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통계적 추이를 보면 Z 세대의 남성과 여성은 이 경쟁에서 만만치 않은 경쟁자이다. 차별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교육이나 시험과 같은 영역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추월하고 있다. 하지만 Z 세대 남성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실력이 입증되어 취업하는 것이지 남성은 여성과 경쟁하고 여성은 남성과 경쟁해서 승리해서 자신의 직장을 얻는 것은 아니다. Z세대에서 여성들에 대한 적개감은 여성을 이런 불안감에 대한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다. 아무튼 기득권 남성과 Z 세대의 남성은 이유는 다르지만 공동의 적을 가지고 연합하고 있는 형국이다. 숫자에 민감한 정치꾼들이 이런 동학을 놓칠리 없다.

미국에서도 학문적으로도 펜스 룰에 대한 오랜 논쟁이 있어왔다. 학문적 논쟁의 시작은 성보다는 인종 특히 흑백 갈등의 문제였다. 흑백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대립가설은 "분리가설"과 "접촉가설"이다.

분리가설은 갈등을 원천에서부터 봉쇄하기 위해서는 흑백이 섞이지 않도록 처음부터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리가설은 펜스 룰의 주장과 같다. 진화심리학자들도 여성과 남성은 철저하게 분업으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분리론자들을 옹호한다. 분리가설에 따라 흑인과 백인들은 다른 학교를 다니고 버스도 분리된 좌석을 할당받았고 거주지역도 분리당했다.

접촉가설은 이런 갈등이 서로 만나지 않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만나는 빈도를 높여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높혀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접촉가설에 따라 흑백 통합학교가 실험되었지만 통합학교에 들어간 흑인과 백인 갈등은 시작 시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갈등을 생산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분리가설과 접촉가설에 대한 실험은 인종 문제에서 성 문제로 확산되었다. 분리가설은 남성과 여성은 다른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주장했고 접촉가설의 옹호론자들은 남녀공학을 주장했다. 인종이나 성이 서로 접촉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대사회에서는 접촉가설이 더 우세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접촉가설이 완전히 승리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이런 논쟁이 벌어지면 펜스 룰이 다시 등장해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정도로 분리가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최근에 출간한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초연결 디지털 시대 성다양성 내러티브>에서 이런 분리가설이나 접촉가설의 고전적 문제의 본질에 대해 다시 질문했다. 또한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제 삼의 대안으로 양성 협업 패러다임을 주장했다. 양성협업이란 남성과 여성이 공동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이 고유하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을 기여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양성 협업에서 공정성은 이렇게 성취한 것을 나누는 것에 대한 투명한 절차상의 합의 문제로 본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연구결과를 보면 남성, 여성, 흑, 백을 떠나 모든 다양성의 사회범주를 서로 섞어 놓으면 성과에는 부정적 결과를 산출한다는 것이 공통된 결론이다. 유일하게 긍정적 성과를 산출하는 경우는 공동의 목적을 놓고 서로 다른 기여를 할 수 있는 협업 패러다임이 가동될 때이다.

성도 여성과 남성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의 문제다. 성범주간 싸움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논쟁에는 사람이 빠져있다. 여성과 남성 관계를 설명하는 욕망이 프로이드가 제기하는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욕망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가족을 이뤄 자신들의 심리적 안정지대인 퀘랜시아를 만들 수 있는 존재적 대상이기도 하고, 더 큰 목적을 세우고 이를 같이 실현하는 일에 협업하는 파트너일 수도 있다. 프로이드의 생각과는 달리 인간에게 늑대는 성적 욕망의 늑대만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욕망의 늑대는 여러마리이고 다양하다. 상대를 존재적 위안의 대상으로 삼고 싶어하는 욕망의 늑대도 존재하고, 더 큰 목적을 위해 협업하는 늑대의 욕망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성적 욕망의 늑대 입장에서 설명할 때 상대는 손과 몸과 발이 잘려나가는 분절의 고통을 경험한다.

여성과 남성간의 관계도 공존, 공생, 공영의 차원이 다르게 존재한다고 본다. 공존의 문제는 자손의 재생산의 문제이고, 공생은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으로 심리적 울타리를 제공하는 문제이고, 공영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파트너로서의 문제이다. 여성과 남성의 문제를 공영의 차원까지 초월해서 볼 수 있다면 지금 벌이고 있는 펜스 논쟁은 무의미한 논쟁이 된다.

기업의 차원에서 이런 성의 문제를 공영의 차원에까지 초월적으로 운영해서 초우량기업의 지위를 성취한 회사가 Southwest Airlines다. 사우스 웨스트 회사의 사명은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다. 회사는 이 사랑을 전파하는 일환으로 사내연예를 장려한다. 또한 자신의 연인을 회사의 직원으로 추천해서 실제 직원으로 채용되면 추천한 사람이 보너스를 받는다. 사우스 웨스트는 펜스 룰을 걱정하지 않는 사랑의 천국이다.

사우스 웨스트 항공사 사랑 스토리의 백미는 설립자인 허브 켈르허 회장과 오랜 동안 켈르허 회장의 비서를 지낸 여비서 콜린 바렛과의 관계다. 켈르허 회장은 자신의 후임으로 바렛을 지정했다. 많은 사람이 우려의 견해를 표했다. 바렛이 비서로서 훌륭하게 일해온 것은 다 알지만 큰 회사의 경영자로서의 전문성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런 논란에 대해 캘르허 회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설득했다. 경영의 전문성에 대한 우려는 나도 동감하지만 회사를 설립해서 지금까지 오는 동안 자신은 바렛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을 수 있어서 어려운 문제를 혁신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 회사는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 목적인 회사다. 이런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에 나대신 바렛이 나서야 할 시점이다. 바렛의 사랑을 나를 넘어 다른 종업원들도 체험하고 특히 고객들도 체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바렛은 CEO가 되었고 사람들의 우려를 넘어서 바렛은 사랑을 전파해서 재임기간 동안 사우스 웨스트에 경이적 실적을 쌓았다.

켈르허 회장은 여성 비서 바렛를 여성 남성을 넘어서 번성의 파트너로 생각했고 이런 의미의 사랑을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의 진정한 사랑으로 규정했다.

2019년 1월 3일 87세의 일기로 세상을 하직한 고 켈르허 회장에게 묻고 싶다. 요즈음 대한민국 정치인들이나 변호사 사이에서 일고 있는 이런 펜스 룰에게 대해서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